악질 채무자에 대한 형사처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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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공화당 정책위원회는 자력이 있으면서도 민사책임을 이행하지 않는 자에게 형사처벌을 가할 것을 골자로 하는 형법개정안을 준비중이라 한다. 민사책임의 형사화 구상은 채권자의 채권확보를 위하여서는 바람직한 제도이나 민·형사책임의 분화라는 법원칙에서 본다면 법체계상의 후퇴라고도 볼 수 있다.
공화당 정책위가 「민사책임의 형사화」구상을 하게 된 것은 오늘날 민사재판으로써는 신속한 채권확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형사화 함으로써 채무자의 채무변제를 강요하기 위한 것이다. 오늘날 민사소송은 지나치게 오래 끌어 「인플레」가 심한 경제여건 하에서는 승소해봤자 별 소득이 없으며, 또 승소한 경우에도 채무자가 임의변제를 하지 않기 때문에 강제집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막상 강제집행을 하려면 채무자의 재산은 처나 친척 등의 재산으로 명의이전 되어버려 강제집행조차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채권자들은 자력이 있는 채무자가 채무를 변제하지 않는 경우에는 사기 등 죄목으로 형사사건화 하려고 한다. 채무자가 형사사건으로 입건되어 구속되기만 하면, 채무자의 가족이나 친지들이 곧 채무변제를 하여 고소를 취하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다. 그러나 채무불이행만으로 사기죄 등으로 처리하기는 어려운 점도 있으므로 검찰은 민사문제의 형사화는 이제까지 적극적으로 회피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형법은 『강제집행을 면할 목적으로 재산을 은닉·손괴·허위양도, 또는 허위의 채무를 부담하여 채권자를 해한 자』를 엄중히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강제집행면탈죄의 규정이나 권리행사 방해죄의 규정 등도 채권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다.
공화당 정책위의 형법개정 초안이 어떤 조항을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 아직은 미상이나 형법 제37장의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죄』의 하나로 규정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강제집행을 면탈하거나, 타인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또는 자력이 있으면서도 변제하지 앉고 채무변제의 시간적 여유를 얻기 위하여 남소하는 자 등은 악질적인 자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형사적 처벌의 대상이 됨직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민사책임을 다하지 않아 타인의 권리를 침해한 자를 형사처벌 하는데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하고 싶다.
그러나 이에 앞서 민사소송을 보다 신속히 처리하며 강제집행의 가집행을 모든 채무자에 대하여 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것이 더욱 급선무라 생각되기도 한다. 공화당 정책위는 민사소송에 있어서의 남소나 남항소·남상고를 막기 위하여 직권으로 소송비용인지를 10배까지 첨부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어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남항소나 남상고는 어느 정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러나 변호사 비용을 소송비용으로 인정하지 않고 승소자나 패소자 할 것 없이 다 자기의 변호사 비용을 물게 하고 있으니 승소하더라도 대부분의 돈이 소송비용으로 되어 소송의 실익이 없으므로 이는 사법적 정의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하겠다.
무릇 모든 사법제도 개혁시도에 있어서는 지나치게 자질구레한 문제만 다루지 말고, 다음과 같이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는 안목이 절실할 것이다.
그 첫째로는 변호사 없는 항소나 상고를 금하고 변호사 비용을 소송비용에 포함시켜 패소자에게 부담시켜야 할 것이다.
둘째로는 현재 민법상의 법정 금리 5%를 채무불이행자에게는 이자제한법상의 최상한인 40%까지 올리도록 함이 옮을 것이다.
셋째로는 소액사건을 전담하는 간이법원을 조속히 신설하여 민사소액사건과 즉결심판사건 및 구속영장 발부 등을 전담하게 하여야 할 것이다.
공화당 정책위가 구상하고 있는 민사사건의 형사화는 원칙적으로는 반대할 이유가 없으나 현재만 해도 민사사건을 형사화하는 악례가 많은지라 이의 남용을 막기 위한 예방조치도 철저히 강구해 주어야 할 것이다. 검찰은 강제집행 면탈자들을 인지하면 즉각 구속기소하고 법원은 이를 엄벌에 처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이로써 민사책임의 형사화 방안은 실효를 거둘 수 있겠기 때문이다. 여당의 현명한 재고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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