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6)<제자 윤석오>|<제26화>내가 아는 이 박사 경무대 사계 여록 (113)-국무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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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무회의는 한주일에 두번 열렸다. 이 박사가 주재하는 경무대국무회의와 총리나 수석장관이 주재하는 중앙청국부회의로 구별된다.
경무대국무회의는 본관 대접견실에서 열렸다. 회의는 이 박사가 들어와 안락의자에 앉으면 시작됐다. 장관들은 서류가방을 들고 스테인리스 의자에 줄지어 앉아 회의를 진행했다.
경무대국무회의는 주로 이 박사의 지시와 지시사항에 대한처리결과 보고였다. 지시와 보고로 끝나는 것이 상례였기 때문에 엄격히 말해서 회의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반면에 중앙청국무회의는 각종 의안의 처리와 이박사의 지시사항에 대한 처리방안을 협의했다.
경무대에서 열리는 국무회의는 이 박사가 『오늘은 그만하지』하고 자리를 뜨면 그걸로 끝났다고 이 박사는 그리고는 곧장 2층 집무실로 올라가는데 그때 장관들은 결재서류의 사인을 받았다.
국무회의 도중 이 박사는 화가 나면 손을 입에 대고 후후 불고 얼굴이 경련을 일으키며 그냥 자리를 떴다. 그래서 장관들은 이 박사가 손을 입에 대고 후후 불면 긴장하기 마련이었고 어떤 장관은 결재서류의 사인도 받지 않고 그냥 돌아가기도 했다.
경무대에 국무회의가 열릴 때 장관들은 거의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이 박사가 담배연기를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이 박사는 경무대 국무회의에서 중요한 정책에 대한 방향지시를 주로 했지만 기회있을 대마다 외교정책에 대한 얘기가 많았었다.
어떤 경우는 이 박사의 지시가 상당히 추상적일 경우가 있다. 장관들은 이 박사지시의 진의가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잘 알지 못해 유시해석회의를 별도로 열기도 했다.
이 박사는 회의 도중 관계장관의 보고가 시원치 않으면 『그게 무슨 소리야』하며 꼬치 꼬치 묻기도 해서 장관들은 당황할 때가 많았다.
이렇게 난처한 경우에는 신념이 두터운 한두 장관이 가로 맡아나서 이 박사가 잘 알아들을 수 있게 보충설명을 해야했다.
이 박사는 국무회의에서 대일 외교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일이 많았다. 민족감정보다는 국가장래를 걱정하는 뭇에서 일본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항상 신중과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박사가 일본을 경계하고 또한 싫어하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국무회의에서 장관들이 일본식 단어를 쓰면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말에 그런 것이 어디 있어』하며 고쳐 주었다.
6·25동난 후 고무가 모자랐다. 한번은 국무회의에서 외환 얘기를 하다가 재무부장관이 『생고무 값이 올라서…』하며 설명을 했다.
이 박사는 『생고무가 뭐냐』라면서 핀잔을 주었다. 장관은 『로·러버(raw-rubner)라고 합니다. 일본 사람들이 호모라고 쓰고 고무(gom)라고 읽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 박사는 『일인들이 검(gom)을 고무라고 한 것을 우리가 근대로 잘못 쓰고 있는게 아닌가. 로·러버와 검은 다르지 않다』고 시정해 주었다.
또 한번은 국무회의 도중 어떤 장관이 차압이란 말을 썼다.
이 박사는 『차압을 어떻게 써, 차자는 뭣하는 글자야』하면서 언성을 높였다. 차자는 일어에서는 접두사로 사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못마땅하게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는 이 박사는 『거 왜, 우리 말에 압류란 말이 있지. 앞으로는 그렇게 쓰드록 해』하고 교정했다.
이 박사는 영어단어를 많이 쓰는 것드 싫어했지만 시체말이나 신어를 잘 모르기 때문에 대충자금의 경우는 항상 카운터파트·펀드(Counterpart Fund)라고 얘기했다.
55년쯤으로 기억되는데 6·25로 시설이 많이 파괴돼 전화사정이 나빴었다.
강인택 체신장관이 『기계가 파괴되고 노후해서 일본에게 새로 사와야 전화사정이 나아지겠다』고 보고했다.
이 박사는 일본이란 말이 나오자 『그러려면 체신장관이 다 두들겨 부숴 버려』라면서 호통을 쳤다. 일본이 미워서라기보다는 일본이 경제적으로 부흥하는 것이 싫어서 그랬던 것이다.
이 박사는 경제문제에 많은 관심을 표시했는데 특히 물가, 화폐발행고, 환율문제에 신경을 많이 썼다.
화폐발행고 얘기가 나오면 이 박사는 『거 또 돈 찍어 내야한다는 거야』고 화를 내면서『돈 찍어내는 기계 다 때려부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 박사는 화폐발행고가 자꾸 불어나 물가가 오르는데 무척 걱정이었다.
이 박사는 달러를 무척아꼈는데 지금 경제기획원이 들어있는 건물과 그 옆에 있는 유세이드 건물을 지을 때의 일이다.
이 두개의 건물을 미국이 우리나라에 제공한 원조자금으로 짓기로 했는데 이 박사는 미국측에서 사용할 유세이드 건물은 별도의 미국 자금을 새로 가져와 지으라고 반대한 일도 있다. 또 기획원 건물의 지붕과 양식을 한국식으로 하자고 까지 한일도 있었다.

<편집자주>
다음은 외무장관을 자낸 임병직씨의 외교문제와 관련한 얘기를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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