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사실상 도산·폐업 직면해야 해고 가능해질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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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양의 모 병원은 지난해 비정규직 근로자 14명에게 상여금을 주지 않았다. 법정 공휴일에 일해도 휴일근무 수당을 별도로 계산하지 않고 평일 기준으로 임금을 지급했다. 토지주택공사 대전충남본부는 비정규직 5명의 출장비를 지급하지 않다가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 때 지적돼 총 1086만원을 일시에 줬다.

 올해 9월 23일부터는 이런 차별을 못 하게 됐다. 비정규직 근로자에게도 상여금과 복리후생, 경영성과급을 정규직과 똑같이 줘야 한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과 ‘파견 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 개정, 시행됐다. 이전에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불리하게 처우하지 못한다’고 모호하게 규정해 기업들이 성과급이나 수당을 아예 주지 않거나 주더라도 정규직보다 훨씬 적은 돈을 줬다.

 새누리당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가 차별행위가 고의적이고 반복적일 경우에는 손해액의 10배를 징벌적으로 보상토록 하는 법안(이한구 의원)까지 제출해놓고 있다. 기간제 근로자의 고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해 1년이 지나면 무조건 정규직으로 고용토록 하는 법안(심상정 의원·정의당)도 국회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경계를 허무는 법안들이다.

비정규직 상여금·복리후생 등 차별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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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내하도급 근로자에 대한 원청업체의 책임은 한층 강화된다. 방하남 고용부 장관은 지난 6월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는 새 정부 핵심 과제”라고 했다. 정부의 정책 방향은 협력업체의 정규 직원이지만 앞으로는 원청업체의 정규 직원처럼 대접받도록 하는 쪽이다. 이와 관련, 새누리당이 관련 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놓은 상태다. 사내하도급 근로자가 사업장 안에서 원청업체 직원과 같은 일 또는 유사한 일을 하면 원청업체와 도급업체가 원청 직원과 동등한 처우를 하도록 하고 고의적·반복적인 차별 행위가 벌어지면 10배의 징벌적 보상을 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새누리당은 이 법안을 민생법안으로 선정해 반드시 처리키로 했다. 이와 관련, 한국경제연구원은 “사실상 사내하도급 근로자를 원청업체 정규직원으로 채용하는 효과를 내는 법안이며 연간 5조4169억원의 추가 비용을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차별 행위가 발생했을 때 지금은 개별적으로 시정을 요구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노조가 나서 차별시정신청권을 행사할 수 있을 전망이다. 여야가 이런 법안을 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이형준 노동정책본부장은 “노사 간의 갈등이 상시화할 수 있다”며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집단적 문제로 삼아 분쟁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협력사 직원, 원청업체와 같은 대우

 최근 영업실적 악화로 금융권에 구조조정 바람이 불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바람도 잦아들 것으로 보인다. 경영상 해고 조항이 까다로워질 전망이어서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때 공약한 것이다.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경영상 해고 조항 개정안은 경영 악화로 사업을 계속할 수 없을 경우에 한정하는 방향으로 모아지고 있다. 사실상 도산이나 폐업에 직면하지 않으면 해고를 못 한다는 얘기다.

또 해고하기 전에 자산을 매각하고 사무실을 축소하는 등의 해고 회피 노력 사항을 구체적으로 열거해 모두 이행토록 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정일 연구위원은 “정리해고는 회사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한 것인데 폐업에 몰려야 해고할 수 있다면 기업과 근로자가 공멸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고를 통지할 경우에는 재고용 우선권을 부여하고 노조와 성실하게 협의하지 않으면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해고로 간주한다는 조항도 개정안에 포함됐다. 이런 법률이 현실화되면 정년 60세 의무화에 따라 근로자들은 60세까지 해고 불안에 시달리지 않고 일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삼성그룹은 정년 60세 의무화에 따라 인건비로 연 14조원이 더 소요될 것으로 추정했다.

“정리해고 못 하면 기업·근로자 공멸”

 이외에도 임신·출산·육아 등의 이유로 직장을 그만둔 여성의 취업기회 확대를 위해 엄마가산점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아이를 둔 여성이 공공부문에 응시하면 2% 범위 안에서 가산점을 주는 제도다. 2016년까지 특별법에 따라 시행하는 공공부문 청년채용 할당제를 민간부문으로 확대해 한시적으로 300인 이상 기업에 채용규모의 3~5%를 청년에게 배정하는 법안도 여야 국회의원들이 공동 발의한 상태다.

김기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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