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숙종 때 암행어사 박만정의 행적|이봉래 역(제자는 『해서암행일기』의 표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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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4월14일 계속> 노승은 가까이 다가와서 합장하며 나에게 절을 넓죽이 했다. 나는 인사를 겸하여 그에게 말을 건넸다.
『스님은 어느 절에 계신데 그리도 부지런히 가십니까?』
『소승은 해주 수양산의 암자에 있습니다 만, 백천·연안 쪽으로 가서 동냥할까하고 간답니다.』

<상좌를 잃은 노승>
『노스님은 상좌중이 없으신가요. 이렇게 손수 걸식행각을 하시다니요.』
『상좌가 없기야 하겠소 만 몇 사람씩 됐었으나 모두 먹을게 없는 탓으로 뿔뿔이 흩어져 떠나 버렸군요. 그래 부득이 나는 나대로 나선 것이지요.』
상좌들이 노승을 남겨두고 다 떠났다는 말에 나는 웃으며 다소 농조로 물었다. 『고승들은 흔히 낱알을 자시지 않는다고 하는데 노스님은 그렇게 못하시나요?』
그러나 노승은 변함없이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소승은 대단히 용렬한 사람이라 감히 설곡(곡식을 먹지 않는 것)을 하지 못하옵니다. 배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고 목마르면 물을 마시며 더우면 갈포를 입고 추우면 털옷을 입어야지요. 그게 인간의 상리인데 어찌 불자와 승려가 다를 바 있겠습니까.』
『노스님은 반드시 그러신 것만 같지는 않은데요』
『공기와 영락이나 그런 것만 먹고, 음식을 생식하는 것은 소위 신선의 황당하고 허망한 말이지 그걸 어떻게 믿겠습니까.』 노승의 언사를 듣고 보니 결코 범상한 스님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불가에서 말하는 허무적멸의 도는 어느 경지를 가리키는 것이냐고 말했다. 노승은 몇 번이나 머리를 조아리며 합창하고 대답했다.
『소승이 어찌 그러한 경지를 알겠습니까. 다만 중생을 넓게 구제하는 것이 삼계의 지대한 업이요, 마찬가지로 인간세계의 일은 대인이나 군자 되시는 분들이 처리 하노라는 말을 들었을 따름이옵니다. 원하옵기는 생원계서도 소승과 같은 무리들로 하여금 그 은택을 입도록 꽤해 주신다면 천만번 고마운 일이겠습니다.』 그리고 노승은 미처 응할 겨를도 주지 않고 스스로 빨리 가기를 청하였다. 『오늘이 장날이라 장보는 일이 매우 긴요한데 해가 벌써 기울었군요』
얼마 뒤에 김 서리를 찾으러 갔던 하인이 그와 함께 왔다. 언덕 위에서 잠시 얘기를 나누고 모두 함께 출발, 우현을 거쳐 저녁 무렵 백삼면 남쪽 전암리에 이르러 쉬었다.
4월15일 비가 오다. 새벽에 백천 관아로 부지런히 들어가 객사에 앉아 모든 문서를 낱낱이 들추었다. 당시 군수 이동순은 백성들에게서 많은 원성을 듣고 있었으므로 매우 자세히 검토하였는데 과연 불법한 사실이 많이 드러났다. 그래서 인신과 병부를 몰수하고 봉고 했다.

<망동 일삼는 군수>
백천 군수 이동순은 부임 초에 그럭저럭 잘 다스린다는 말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근자에 나타난 사실은 선정의 증거랄 것이 전혀 없다, 지난가을 곡식을 거둬들일 때는 군내 16방의 부민 3백 여인을 골라 소를 잡고 술자리를 마련하였다.
그 자리에서 군수 자신이 술잔을 잡고 몇 순배를 돌린 뒤 모인 사람들에게 내어놓을 수 있는 곡물의 수량을 각기 적어 내도록 명했다. 그중 기재량이 많은 것을 기준으로 삼고, 반면에 한 섬도 못되게 적어 낸 사람들에 대해선 아예 받지 않겠으니 물러가라고 하였다.
이 군수는 다시 별도의 주안상 10여 개를 마련하여 놓고 『이것을 먹고자 하는 사람은 내가 대좌하여 주겠다』고 선언, 그들을 마루로 오르게 하여 평교간처럼 술을 들며 그들이 적었던 국물수량의 2배씩을 납부하라고 명했다.

<주도서 뇌물 흥정>
한 고을의 우두머리로 상한 배들과 함께 어울려 이같이 수작함은 실로 체통에 관계되는 해괴한 망동이다. 뿐만 아니라 곡물을 강징한 방법이나 소 잡아 성대한 주석을 베푸는 등 결코 합당한 처사가 못된다.
이것은 민원의 조성밖에 못된다. 특히 그는 부민들한테 돈을 강제로 주어 곡물을 사들이도록 하였는데 장터에서 산 곡식을 관가에 납품할 때 자연 감소량을 판상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제는 농사철이라 들에 씨를 뿌려야 할 시기이다. 백성들에게는 씨앗조차 없음에도 관에서는 그것을 전혀 분급치 않았다. 그리고 부민들에게 서로서로 나누어주기를 명하면서 이 명령을 어기는 자에 대해선 처벌했다..

<협박으로 종자수탈>
비록 넉넉한 사람이라 할 지라도 초기에 이미 많은 쌀을 상세로 바친 터인데 이제 와서 또 강제로 수량을 배정해 곡식을 사서 바치게 하고 끝내는 종자마저 내 놓으라 위엄으로 협박하는 등 3차에 걸친 침탈을 당했다. 이로써 원망하는 소리가 한층 들끓었다.
또 소는 함부로 잡지 못하는 점을 기화로 각방 백정들을 잡아들여 힐문하고 중형을 가했다.
백정들은 그 위령에 겁을 먹고 횡설수설했으며 일률적으로 10양씩 바치게 했다. 16방에서 받아들인 이 속전은 1백여 양에 이르렀다. 민간에게는 이토록 금단을 엄격히 하면서 막상 관가에서 쓰는 고기는 전날과 다름없이 낭자하였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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