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선수 김병수 지도자 돼 큰 웃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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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

‘비운의 천재’ 김병수(43)가 지도자로 변신해 성공신화를 쓰고 있다. 그는 해체 위기의 영남대를 5년 만에 대학 무대 정상에 올려놨다.

 영남대는 지난 22일 영남대 운동장에서 열린 홍익대와의 2013 U리그(대학축구) 왕중왕전에서 2-0으로 승리했다. 전국 76개 대학이 참가한 U리그에서 영남대(경북 경산)는 비수도권 대학으로는 처음으로 U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미드필더였던 김 감독은 경신중·고 시절부터 ‘축구 천재’로 주목받았다. 고2 때 발목을 다쳤지만 완치되기 전에 다시 그라운드에 서면서 부상은 고질이 됐다. 끝없이 덮쳐오는 부상으로 프로 무대에선 빛을 보지 못했다. 천재라는 별명 앞에 ‘비운’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결국 그는 일본 실업팀을 전전하다 1998년 지도자로 변신했다. 고려대·포철공고·포항 스틸러스 등에서 코치를 역임한 뒤 2008년 영남대 감독이 됐다.

 영남대 상황은 암울했다. 선수 16명 중 6명의 몸무게가 90㎏이 넘었고, 그중 한 명은 120㎏가 넘는 거구였다. 체격만 보면 씨름부 같았다. 김 감독은 “그만두겠다고 하니 학교에서 ‘그럼 축구부는 없어진다’고 했다. 마음 잡고 팀을 지도했다”고 회상했다. 그가 팀을 맡은 후 영남대는 서서히 강호로 탈바꿈했다. 2009년 전국대회 8강에 올랐고, 2010년 춘계, 2012년 추계연맹전에서 우승했다. 김 감독은 “현역 때 나는 모든 경기를 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지금은 제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장점을 살리게 도와준다”고 지도 철학을 밝혔다.

 국가대표도 키워냈다. 2011년까지 영남대에서 뛰었던 이명주(23·포항)는 올해 태극마크를 달았다. 김 감독의 제안으로 수비수에서 미드필더로 바꾼 뒤 승승장구했다. 김승대와 김준수(이상 22)도 영남대를 거쳐 포항에 입단해 활약하고 있다. 포항의 젊은 선수를 기르는 사관학교 역할을 한 셈이다.

 “비운? 난 운이 없지 않다”고 말한 김 감독은 “제자의 성공을 보는 게 기쁘다. 아마추어는 우승보다 훌륭한 선수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며 활짝 웃었다. 그는 “언젠가 프로 무대에서 지도자로 선수 때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고 싶다”는 각오를 전했다.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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