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보수세력의 야합|미·소 정상회담의 사적 의의|빅터·조르자기【워싱턴·포스트=본사특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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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소 지도자들의 「모스크바」정상회담을 앞두고 「우크라이나」공산당 제1서기 자리에서 실각한 「셀레스트」의 경우는 미국과 소련의 국내문제가 양국관계와 얼마만큼 긴밀히 얽혀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셀레스트」를 필두로 한 소련공산당 정치국내의 보수파세력이 쌍방의 양보를 요하는 정상회담의 일부 안건에 대해 반대의사를 갖고 있다는 점은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크렘린」내의 반대세력이 개혁세력에 대항해서 소련정권의 보수적 성격을 고수하려 애쓰고 있다는 점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따라서 「셀레스트」의 강등조처는 비록 간접적이고 은밀하기는 하나 「닉슨」의 소련방문이 소련 권력 내에 민주화의 경향을 유발시켰음을 보여주었다. 물론 「브레즈네프」 「코시긴」 지도체제는 그런 변화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고 부인할 것이다.
이들은 「흐루시초프」실각 이후 국내의 개혁운동을 억제한 사실을 자신의 공적으로 치고 있는데 이는 「닉슨」이 미국 내에서 개혁운동을 억압하고 있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모스크바」의 정상회담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보수세력의 만남을 뭇하며 이들의 공통된 목표는 새로운 사회세력의 도전에 대항해서 자신의 권력을 지키는데 있다
비밀경찰에 의해 억압당하고 「크렘린」에 의해 서구자본주의의 대변자라고 욕을 먹어 온 소련내의 민주세력은 이제 서구의 가장 강대한 나라가 소련정부와 함께 공존을 위한 교섭을 벌이는 것을 방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전략무기경쟁의 중단과 통상·기술분야의 상호교환은 미국과 소련에 다같이 더 많은 빵과 여가를 가져다주고 국민 총 생산고를 높여주는 한편 대중들이 『삶의 질적 가치』에 새로운 관심을 쏟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양국에는 다같이 삶의 질적 가치를 사회 전체가 갖고있는 물질적 기준으로 평가하기를 거부하는 세력이 있다. 이들은 다같이 기존질서에 대해 반기를 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반발적이나 창조적인 소수세력의 눈으로 볼 때 양국의 기존세력이 협력한다는 것은 사회적·정치적 진보의 길을 막는 것으로 비칠 것이다.
1세기 전 「빈」회의는 「유럽」에 평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 회의에 참가한 주요국가들은 기존사회질서에 대한 힘의 도전방지라는 좀더 중요한 목적을 갖고있었다. 「닉슨」 미대통령이 거듭 언급해왔고, 「키신저」가 그렇듯 열렬히 추구해온바 있는 새로운 힘의 균형은 「빈」회의와 매우 흡사한 점을 가지고있다.
현재 미·소 양국 지도자들의 생각도 단순한 평화유지 뿐 아니라 보수주의자들이 옹호하는 기존사회질서라는 것과 별 다를 것이 없다.
평화의 세대를 위해서 이들의 생각은 높이 평가될 수도 있으나, 사실 이것은 정치지도자들이 제2차 대전을 겪고 난 후 그들 머리 속에 새겨진 최우선과업이다.
핵전쟁위협과 월남전이 끝나도 또 다른 형태의 전쟁이 계속될지도 모른다는 위협 속에서 성장한 많은 오늘의 젊은이들은 그러나 이러한 전망이 장래를 크게 어지럽힐 요소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이들은 소련이나 미국을 막론하고 그들의 지도자들이 추구하는 사회적 평화를 원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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