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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 조직 내 주연이 돼야”“올드 보이 네트워크 대처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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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호 05면

제 10회 WIN 콘퍼런스에서 만난 손병옥 WIN 회장(왼쪽)과 우치나가 유카코 J-WIN 회장. 조용철 기자

한국과 일본의 대표 여성경영인이 얼굴을 맞댔다. 손병옥(61) 푸르덴셜생명 사장과 우치나가 유카코(67) 벌리츠 인터내셔널 전 CEO(현 인재경영 컨설팅 회사 GRI CEO)가 그 주인공이다. 한국과 일본의 여성기업임원모임인 WIN과 J-WIN에서 각각 회장을 맡고 있다. 두 사람은 21일 서울에서 열린 제10회 WIN 콘퍼런스에서 만나게 됐다. ‘여성 최초’ ‘여성 유일’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닌 점에선 같았지만 둘의 리더십 스타일은 다르다. 손 회장이 포용과 배려의 ‘서번트(봉사자) 리더십’을 보여줬다면 우치나가 회장은 목표지향적인 ‘카리스마 리더십’에 가까웠다.

한·일 여성 CEO, 유리천장·리더십을 말하다

두 딸을 키운 엄마이자 아내였던 손 회장은 “여성은 남을 잘 배려하며 유연한 포용적 리더십을 보이는 데 유리하다. 이게 지금 시대와 맞다”고 말했다. 반면 물리학을 전공했다는 우치나가 회장은 “내 접근 방식은 감정적이지 않고 논리적이다. 항상 더 높은 목표를 정하고 일단 목표를 정하면 계획을 세워 강력하게 밀어붙인다”고 말했다. 두 여성리더가 자신이 경험한 ‘유리천장’에 대해 대담을 나눴다.

-WIN의 이번 주제 ‘브랜드 유어셀프’(스스로를 브랜딩하라)는 무슨 뜻인가.

▶손병옥=지금까지는 여성들의 전문성과 커리어 개발에 집중해왔다. 그걸 넘어서 조직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조연 아닌 주연으로 여성들이 나섰으면 좋겠다는 취지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를 보면 ‘최고 경영자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여성은 22.5%, 남성은 46.2%가 그렇다고 답했다고 한다. 차이가 엄청나다. 여성 스스로 직업에 대한 태도가 확고해져야 유리천장이 깨질 수 있다.

▶우치나가=J-WIN의 슬로건인 ‘위민 투 더 톱’(최고를 지향하는 여성들)도 뜻은 비슷하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우리의 목표는 각자의 커리어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다.

-유리천장을 느낀 적이 있나.

▶손병옥=입사 때부터 지금까지 외국계 금융 기업에 있었다. 상대적으로 여성에게 기회가 많고 공정한 평가를 하는 조직에 있었다고 여겨지는데도 내가 첫 여성 CEO였고 유일한 여성 CEO다. 우선 여성들 스스로에게도 책임이 있다. 매니저팀장이 되면 스스로 덜 담금질하면서 ‘이 정도면 됐어’라며 뒤로 물러나는 경우가 있는데 그래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과 똑같은 대우를 받으려면 양이든 질이든 20%를 더 많이 일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우치나가=IBM에서 37년간 근무하고 벌리츠 인터내셔널 CEO를 지내면서 느낀 유리천장은 ‘올드 보이 네트워크’(old-boy network)였다. 이건 문화적인 것이고 보이지도 않는다. 조직 내에서 성공한 남성들끼리는 그들만의 카르텔이 있는데 나는 그걸 몰랐다. 그런데 당사자인 남성들도 대개 자신이 거기 속해 있는지 몰랐다. 나는 그들의 행동과 문화를 이해할 수 없었고 그들도 나를 불편해했다.

-어떻게 극복했나.

▶우치나가=어느 날 IBM의 여성 경영진 모임에 갔는데 나의 멘토이자 동료였던 버지니아 로메티(현 IBM CEO)가 올드 보이 네트워크의 존재를 알려줬다. 그 후 남성들의 회의 방식과 협상 태도를 자세히 관찰했다. 같은 얘기를 할 때도 남녀의 접근 방식이 다르다는 걸 발견했다. 예전에는 “너의 의견에 반대야. 내 의견은 이래”라고 말하던 것을 “너의 의견은 훌륭해. 그런데 이렇게 접근해보면 어떨까”라고 말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같은 주장을 해도 예전엔 내 의견을 무시하던 사람들이 나의 의견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남성과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생활의 태도와 방식을 몰랐던 거다. 그 뒤 옷 입는 방식과 반대 의견을 말하는 방식을 바꿨다. 남성들은 사회에 나가면 수많은 동료와 상사가 그런 내용을 조언해준다. 그러나 여성들은 그렇지 않다. 그런 장벽(old-boy network)이 있다는 것만 알아도 많은 것들을 바꿀 수 있다.

▶손병옥=아직까지 사회적으로 남성 지배 문화가 강하기 때문에 유리천장은 어디에나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매년 발표하는 ‘성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가 137개국 중 111위다. 지난해 108위, 2011년 107위, 2010년 104위 등 갈수록 순위가 떨어지고 있다.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 여성이 늘고 있지만 기업에서는 여성 임원이 전체의 5%가 안 된다. 조직문화가 있는 곳에선 여성의 고위직 진출이 느린 거다. 남성보다 네트워킹에서 부족하기 때문인 것 같다. 여성들 간에 멘토링을 해주는 WIN 콘퍼런스가 꼭 필요하다는 걸 다시 느낀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직장 여성들에게 최대의 벽이다.

▶손병옥=나도 육아·가사 때문에 총 4년간 경력단절을 겪었는데 30년이 지난 지금 두 딸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똑 떨어지는 해법은 없다. 우선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직장 여성들은 ‘평생 일을 하겠다’는 걸 전재로 그 방법을 고민하며 일과 가정에 관심을 배분하고 기업은 여성 직원의 육아휴직을 ‘투자’로 여기며 유연근무제를 장려해야 한다. 내 딸이 출산 7개월 뒤 서울시 육아시설에 탁아를 신청했는데 대기번호 600번대를 받았다. 2년 뒤인 지금 아직도 400번대다. 여성 대통령을 맞이한 우리나라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대대손손 어마어마한 성과를 내는 것이다.

▶우치나가=나는 출산 경험은 없지만 기업과 정부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유연성을 키우는 것이다. 꼭 사무실에서 일할 필요는 없다. 여성들이 일하는 시간과 장소를 자유롭게 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여성 리더십이 남성 리더십과 다른가.

▶우치나가=나는 전형적인 여성 리더라고 하기 어렵고 손 회장이 잘 아실 것 같다.(웃음) 나는 매우 목표지향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사람이다. 나의 멘토는 항상 목표를 더 높게 잡고 일단 정한 목표는 종이에 적어 갖고 다니라고 한다. 그래야 기억하고 지킬 수 있다는 거다.

▶손병옥=우치나가 회장과 저는 굉장히 대조적인 여성 리더십의 사례를 보이는 것 같다.(웃음) 우리 회사에 매니저가 400명인데 그들의 생일 때마다 가족들 이름을 하나하나 담아서 손으로 편지를 쓴다. 개인 프로필을 보면서 올해 목표에 대한 조언도 적는다. 3년째 이렇게 해왔는데 반응이 아주 좋다. 이런 건 남성 CEO는 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단점이라면 여성들이 흔히 얘기하는 결단력이나 추진력이 좀 부족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걸 깨달으면 극복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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