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논쟁

한·중·일이 함께 미래를 그릴 토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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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갈등과 불신의 근원인 역사 문제의 벽을 허물기 위해 동북아 국가 공동의 역사교과서를 발간하자고 제안했다. 이 제안을 두고 “대화와 협력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시각과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반론이 팽팽하게 엇갈리고 있다. 두 갈래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오병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지난 14일 대통령이 제안한 ‘동북아 공동 역사교과서 제작’론이 관심을 끌고 있다. “동북아 평화협력을 위해 먼저 역내 국가들이 동북아 미래에 대한 인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으며, “독일과 프랑스, 독일과 폴란드가 했던 것처럼 동북아 공동의 역사교과서를 발간함으로써 동·서 유럽과 같이 협력과 대화의 관행을 쌓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취지였다. 공동의 역사 인식을 통해 동북아의 바람직한 미래를 끌어내자는 것이니 ‘역사 대화’를 통해 현재 교착상태에 있는 동북아 국제관계를 주도적으로 해결하려는 뜻으로 풀이된다.

 혹자는 이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역사 문제를 외교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동아시아 공동의 역사교과서’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상식 때문이다. 전후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위치가 독일·유럽 간의 관계와 맥락이 달랐고, 동아시아라는 공간 범주와 지역으로서 정체성조차 명료하지 않다. 당장 공동의 교과서를 서술할 수 있는 국제적인 여건이 성숙되어 있는지도 돌아보게 된다. 교과서를 ‘교실 수업에 사용하기 위해 정부의 승인을 받은 교재’로 이해한다면 과연 동북아 3국의 교육과정과 개별 국가 사회의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는 교재를 제작할 수 있을까. 또 독·프랑스, 독·폴란드 교과서는 50년, 30년의 긴 역사 대화를 거쳐서 이루어졌고, 그것도 부교재로 개발된 것이었다. 한·일, 중·일 간의 역사 대화는 이제 갓 10년밖에 되지 않았다. 공동 교과서를 운위하는 것 자체가 시기상조가 아닐까 하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

 역사의 의의는 단순한 과거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바람직한 미래를 전망하는 데 있다. 동아시아 공동 역사는 동아시아가 공동으로 꿈꾸는 미래를 전망하기 위한 기초다. 이런 점에서 현재 우리가 이를 제기해야 하는 현실적 사정도 있다. 역내 국가 간 역사관의 괴리로 인한 불신과 일부 영토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충돌의 소지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제국적 관성을 동반한 중국의 ‘대국굴기’나 한반도를 직접적으로 겨냥하는 일본의 ‘집단 자위권’ 논의 등은 우리가 미래를 전망할 때 고려해야 할 상수가 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문제의 배후에 자국 중심의 역사인식이 내재해 있다. 이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자존과 생존을 모색해야 한다. 근대 이래 각국이 추구해온 이른바 ‘강국몽(强國夢)’에 강박된 제국적·국가적 폭력을 반성하고 성찰할 수 있는 새로운 역사 인식이 필요한 이유다. 그것은 실현되기 어려운 만큼 절실한 당위인 것이다.

 일찍이 한국은 동아시아 주변 국가를 침략한 적이 없으며, 동아시아에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전제할 때에만 지역적인 평화가 가능했다는 것은 역사적 교훈이다. ‘주변’의 시각으로 ‘중심’을 상대화하고, ‘주변’의 입장에서 ‘주변’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각도 우리만의 잠재적 자산이다. 이미 우리는 지역평화를 위한 역사연구기관으로 동북아역사재단을 두고 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장기적인 시간을 두고 경험과 유산을 살려서, 관계 부처와 학계, 연구기관의 협력을 통해 주변국을 설득하는 작업에 착수하는 것이다. “유라시아와 태평양 지역의 연계할 수 있는 동북아 평화협력지대의 구성”은 우리의 꿈이자 생존전략이기 때문이다.

오병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