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 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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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아름다운 말」과 「아름답지 못한 말」을 30개씩 적으시오.』 이런 「앙케트」에 요즘의 아이들이 답한 것은 흥미 있다. 우선 「아름다운 말」의 빈도 수는 4천6백33개로 나타났다. 그 반면에 「아름답지 못한 말」은 1만4천6백66개를 기록하고 있다. 「아름다운 말」의 3·4배에 해당한다. 이것은 최근 K대학의 한 사회 조사에서 밝혀진 사실이다. 「비어 시대」를 실감 할 수 있게 한다.
비어 중엔 신체 결함에 관한 왜곡어 들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병신』『등신』등이 그런 예이다. 그러나 은어들도 적지 않아, 자못 언어 생활의 암흑을 느끼게 한다. 『꼰대』 (어른), 『보안관』 (가정 교사), 『통뼈』 (뻔뻔한 사람) 등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이른바 「프티 세대」의 귀여운 호기심을 넘어 세태의 암영을 보여주는 우울한 언어들이다.
사춘기 이전의 세대들이 이미 성에 대한 갖가지 저속어에 능한 것도 놀랍다. 국민교 5년생들에게서 가장 높은 빈도를 보여준다. 오히려 고학년들은 덜 한편이다. 「아름답지 못한 말」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저주와 야유의 말들이 거침없이 오고 간다. 『싹 꺼져 버려!』『웃기네』『쥐약 먹었니』『망할 놈』『날 잡아 먹어』『때려 ×여』 따위는 비록 악의와는 거리가 있을지라도 엄연한 현실어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말들을 나쁜 줄 알면서도 쓴다고 고백하는 아이들은 불과 48·5%이다. 나머지는 『나도 모르게』『그저 예사로』 그렇게 한다고 말한다. 언어 감각의 마비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언어는 그 사회의 세태를 비쳐주는 거울이나 다름없다. 「러시아」인들이 물가고에 시달릴 때, 그들의 일상어의 태반은 밀가루 값에 관한 화제뿐이었다는 어느 작가의 서술도 있었다. 사회의 분위기가 비인간적이고 음성적일 때, 그들의 언어 생활도 그렇게 되기 마련이다. 신약 성서를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았읍니다. 깨닫는 것도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생각하는 것도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습니다』 (『고린도 전서』.)
요즘의 아이들은 성자의 그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에 있다. 실로 이들이 자라면 어떻게 될는지 걱정스럽고 무섭다.
결국 이들을 「비어 세대」로 만든 것은 활자와 전자「미디어」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
성인들의 오늘 온갖 고초에 직면하고 또 그것과 싸우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후세들에게 오로지 「아름다운 생활」을 남겨주기 위해서이다.
『아름답지 못한 것들』을 더 많이 가르쳐 주는 성인 세대는 스스로 후세의 두려움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아이들에 필요한 것은 비판과 꾸중보다는 우리의 모범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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