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찾는 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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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배 안에 쥐방울처럼 똘똘한 어린이가 있었다. 몹시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지만 아주 명랑한 태도로 배 안의 외국인 선객들 시중을 들어주었다.
그를 귀여워한 선객들은 심부름값 을 잘 주었다. 소년이 어느 선실 앞을 지날 때 문득 귀에 거슬리는 얘기가 들렸다. 「이탈리아」는 거지들 천지이고, 너무 더러워서….』소년은 단숨에 방안에 뛰어들어갔다. 그리고 그동안 그들 선객들로부터 심부름 값으로 받은 동전들을 마룻바닥에 내던졌다. 그 소년은 「이탈리아」의 어린이였던 것이다. 도시 이 소년으로 하여금 「이탈리아」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학교에서 「이탈리아」를 사랑하라는 얘기만 듣고, 「이탈리아」의 역사가 얼마나 훌륭한가를 미처 배우지도 못한 소년이었다.
물론 이 소년은 작가 「데·아미치스」의 「사랑의 학교」에 나오는 가공의 인물이다. 또한 「이탈리아」의 어린이들에게 통일 「이탈리아」에 대한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꾸며진 얘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만일에 애써 번 돈을 내던진 이 소년이 오히려 어리석다고 보는 눈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이 얘기는 그처럼 깊은 감동을 「이탈리아」 어린이들에게 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최근에 문교부에서는 국적 있는 교육을 되찾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했다. 초점은 애국심을 고취시키자는데 있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 나라의 자랑거리를 귀가 따갑도록 더욱 듣게 될 모양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꼭 누구 나가 국적을 의식하고, 또 국적에 자랑을 갖게 될 수 있겠는지. 또는 교단에서만 국사교육을 강화한다고 국적을 되찾게 되는 것인지.
새로 나온 「청자」담뱃갑의 의장을 본다. 한복만에 영어로 「청자」라고 큼지막하게 적혀있다. 한글로는 그 위에 절반 짜리 크기의 활자로 적혀 있다.
국적이 분명치 않은 담배를 온 국민이 피우기를 권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글보다 머 크게 영어로 「청자」라 적어야할까
닭은 조금도 없는 것이다. 일전에는 또 야간통금규제를 외국인 관광객만이 아니라 그들이 동반한 한국인 여성에게도 원해주기로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관광수입을 올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국적의식의 상실을 권장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편에서는 국적을 강조하고, 또 한편으로는 국적의 상실이 조장되자‥. 이런 역리 속에서 우리는 언제까지나 맴돌아야 할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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