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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의문화 「심포지엄」(43)-청소년을 위한 도덕적 환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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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청소년문제가 논의될 적마다 기성사회의 책임을 묻는 비판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미 이루어진 혹은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적 환경이 청소년들에게 끼치는 결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요인이 겹친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말미암아 속수무책인 순환론에 떨어지기가 일수이다.
무엇보다도 근원적인 문제제기로서 청소년의 도덕적 환경에 대한 현실진단이 필요할 것이다.

<청소년 문제의 특수성>
먼저 우리사회에 있어서의 청소년문제의 특수성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혼이 습관화했던 전통사회에서는 소년기로부터 대뜸 성년기로 뛰어들었기 때문에 어린이도 어른도 아닌 중간연령층인 청소년문제가 하나의 사회적 관심사로 제기되지 않았다. 이른바 사춘기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서구문명이 앞서서 체험해온 것으로서 동양의 여러 나라도 서구의 체험을 답습하고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 사회의 경우 문제를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은 서구문화의 무분별한 수용 내지는 수용태도가 자아의 전통 경시와 겹쳐서 가치관과 행동 양식의 혼란을 더욱 가져오고 있다는 점이다.
그릇 도입된 서구문화의 여러 형태는 우리 사회가 지닌 내적인 필요성과 아무런 상관이 없이 모방과 유행을 낳게 했을 뿐, 토착화의 과정을 제대로 밟지 못했다.
반면 서구문화에 대한 물신적 숭배는 고유한 것, 전통적인 것을 무작정 낡은 것으로, 또 무가치한 것으로 경시하는 경향을 빚어 왔으므로, 사고방식·가치관을 둘러싼 심한 마찰과 갈등이 격화되어 기성사회의 누군들 자신 있게 자신의 신조를 고집 할 수 없는 「아나키」상태 속에 말려들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권위와 존경의 실추>
바람직한 것이, 그렇지 못한 청소년문제의 목적은 새 세대를 그 사회 속에 적용 동화시키기 위한 것이지만, 보다 건전한 사회로의 발전을 기약하는 공동의 노력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청소년 문제는 따로 떨어진 특정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전반의 책임으로 대처해야할 문제인 것이다.
오늘의 현황 진단에 있어서 뼈아프게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권위와 존경의 실추이다. 봉건적인 가치기준이지만 군사부일체란 말이 있었다. 군은 오늘날의 정치적·사회적 권위를 의미할 수 있을 것이고, 사는 학교 교육, 부는 가족관계로 넓게 생각할 수가 있다.
이 권위란, 말로 가르치거나 강요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른들의 행동양식과 사고방식, 생활태도 전체 속에서 스스로 우러나오는 것이며, 청소년은 권위에 대한 존경을 통하여 방향감각을 기르고 지도의 구심점을 찾게된다.

<가정교육의 빈약도 큰일>
군·사·부 세 가지 대상에 대한 실망이 크면 클수록 사회일반·학교 그리고 가정이란 인격형성의 장이 성립되지 못한다.
때문에 가정에서는 어버이가 존경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학교에서는 스승부재, 사회적으로는 냉소·반항·불만 등의 형태로 표출되기가 일쑤이다.
부모들 스스로가 사리의 취사선택에 대한 분별력을 잃고있기 때문에 가정교육의 장이 공백 상태로 방치된다.
교육기관에 있어서의 도덕적 환경도 스승부재라는 말이 단적으로 표현하듯이 정상적인 사제관계와는 거리가 멀다. 학교란 자질과 교양을 축적해서 인격을 형성시키는 과정이라고 들수 있는데 청소년들은 그 바탕이 돼야할 가정교육 없이 입학하는 것이 현장에서 절실히 느끼는 일반적인 경향이다. 대학에서는 중·고등교육의 부실을, 중·고교에선 의무교육과정의 부실을, 그리고 국민학교에서는 가정교육의 부재를 탓하는 것이다.

<공허하게 들리는 훈화>
학교의 운영방식이나 교사들의 의식 내용도 문제다. 배금주의·영리위주의 풍조가 널리 퍼져있는 분위기 속에서 교사들의 사고방식도 차차 공리주의적인 쪽으로 쏠려 교육을 지식의 매매행위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사태를 더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 교육의 양산이다. 이 두 가지 요인이 한데 읽혀서 교사와 학생간의 인간적인 교류를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도의문제에 대한 훈화 같은 것도 매우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동시에 교육제도에도 문제가 많다. 물질적 환경에 있어서도 균일적·기계적 방식으로 흐르지 않을 수 없는 여건인 것이다. 청소년들은 무엇인가 알맹이가 있는 산실을 찾으려하지만 이 같은 기계적인 교육 속에서는 정의·진실·보람과 같은 순수한 욕구를 충족시켜줄 도리가 없다. 교육제도와 방식의 문제는 경제·사회적조건의 제약으로 말미암아 하루아침에 개선될 수는 없으나 급속한 사회 변동에 대응할만한 준비가 국가 정책면과 행정면을 포함하는 국민적인 관심사로서 마련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가정이나 학교를 가릴 것 없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교육이 지닌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을 향할 것인가」만을 가르치고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윤리적 결함을 들 수 있다.
일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일이지만 공리적·타산적 성격은 기성 층보다 젊은 층이 오히려 두드러진 것 같다. 이것을 사회에의 적응성이라고 하면 그만이겠으나 아무리 훌륭한 목적이라도 올바른 방법에 의하지 않고는 정상화 될 수 없다는 뚜렷한 가치관을 정립시키지 않으면 안되겠다.

<입시경쟁이 파생한 병폐>
가령 선행을 하려도 남이 모르는 숨은 선행이 더욱 높은 존경을 받아야 하겠는데 그 반대로 남에게 두루 알려져야 비로소 만족해하고 또 평가를 받는 실정이다.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을 좀 먹는 가장 큰 병폐는 입시경쟁에서 파생되는 갖가지 현상일 것이다.

<책임의 포기와 게으름>
입시를 위한 교육은 가정교육의 파괴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문제로 단편적인 지식만 축적한 학생들은 종합적인 판단능력을 제대로 기르기 어렵다.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좋은 학교에 들어가기만 하면 교육의 목적이 성취될 것으로 알고 그렇게 청소년들을 몰고 있는 셈이다.
하기야 사회전체가 일종의 입시경쟁주의로 치닫고 있다고 하겠으며 겉으로 그 폐해를 심각하게 우려하면서도 개개인의 실제 면에서는 아무도 「이질적」인 행동을 취할 수가 없다.
여기에 책임의 포기와 문제해결에 대한 게으름이 깔려있다. 비유하자면 더욱 심해지고 있는 공기오염 속에 교육환경이 점점 끌려 들어가고 있다고 할까.
부모가 아무리 성의를 가지고 자식들을 가르치고 또 학교교육이 보다 건전하게 향상될 수 있다 하더라도 개방된 현대사회에서 보여줄 것과 보이지 않을 것, 또한 알려 줄 것과 알려주지 않을 것을 가려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회전반의 도덕적 관념과 「모럴」의 의식수준인데, 예를 들어 한달 5만원의 수입 밖에 없는 가정에서 몇 배를 넘는 소비생활을 누리고 있을 때, 자녀들은 자기의 가정을 통해서 사회를 보며 모순과 의문을 갖게 된다.
어느 정도의 관찰력과 판단력을 지니게 되면 그 모순에 순응하거나 부정의 반발로 나온다. 혹은 그 갈등 속에서 고민한다. 부모가 위선자로 비칠 수도 있겠고 다른 부모들보다 훌륭한 사람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것이지만, 도덕적 가치기준의 불안정한 환경에서는 청소년들의 올바른 인격형성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가정 통해 보는 「사회」>
방대한 지식과 정보를 공급하는 「매스·미디어」의 무서운 영향도 마찬가지이다. 모방과 학습을 통해서 배우기 마련인 청소년들에게 언어·거동·예의범절 등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모든 행동양식이 끼치는 효과는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침이 없다.
정치·사회적 사건의 성격이나 내용도 역시 성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이상으로 심각한 영향을 준다. 갖가지 복잡한 사건이나 현상을 청소년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속단하면 잘못이다. 도리어 문제를 단순화시켜서 직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기성질서의 허위와 가식을 폭로하기도 한다.
뒤집어 말하면, 제아무리 학교교육의 내실이 갖추어진다 하더라도 사회로 진출한 다음 좌절과 실의에 빠져버린다면 허사이다. 단순히 무로 돌아가는데 그치지 않고 자포자기의 심리 속에서 반도덕적인 반작용을 일으키기 쉬운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은 어느 과정에선가 반드시 단절되지 않으면 안 된다. 여러 가지 복잡한 원인이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교육자체에 큰 허점이 있다고 본다.

<언행일치 보여줄 필요>
그것은 인간교육의 부재이다. 또한 인간본질의 망각이다. 만일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도덕적인 수준이 낮고 또 실지로 반사회적인 범죄나 행동을 하는 것이라면 큰 문제이다.
가정·학교·사회일반 등 삼자가 서로 문제해결의 책임을 전가한다거나 거꾸로 한군데서 도맡는다고 해봤자 의미도 없고 효과도 없을 것이다.
청소년들은 사회적 모순에 눈을 떴을 때 정신적 고아처럼 느끼게 된다.
어른들 세계의 올바른 생활태도와 언행일치만이 무해의 교훈이 될 수 있다.

<종교적 감화의 문제>
청소년의 도덕적 환경을 개선하는 방안으로 종교 내지는 종교적 감화의 문제도 생각할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있어서의 종교의 실태 기성 교단이 사회적 연계를 강화시키지 못하고 있는데 반해서 많은 종류의 신흥종교가 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개 신흥종교의 특질은 현실이익 추구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불건전한 정신적 풍토가 곧 신흥종교가 성행하는 소지로 된다.
이것은 교단의 책임도 물어야 할 문제지만 도덕적 무관심과 윤리적 퇴폐는 신앙의 타락과도 무관한 것이 아니다. 종교교육의 필요성 같은 것도 기독교의 오랜 전통 속에 성장해 온 서구의 경우와 동질적으로 다루기는 힘들 것이다.
청소년의 교육을 정상화시켜 올바른 가치관을 신조로 삼는 전인격의 형성을 기대하기 위해서 생각할 수 있는 구체적인 문제를 나열하자면 거의 한이 없을 정도이다. 이와 관련을 맺지 않고 있는 일이라곤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적인 문제로 좁혀서 환경개선을 위한 노력을 쏟지 않으면 안 된다. 교육제도와 방식의 재검토도 물론 포함된다. 입시주의 교육의 폐단을 극소화 할 수 있는 대증요법도 필요할 것이다. 도덕적 감각을 길러 줄 수 있는 정서교육과 윤리교육의 방향선정도 아쉬운 일이다.

<어른들의 수범을 전제로>
가정에 있어서는 어른들이 「수범」으로서 가르쳐야하며 가치판단의 혼란 속에서 지표를 제시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
사회 일반에 있어서는 정치·경제·문화 모든 분야의 지도적인 활동이 사회정의와 공평, 그리고 진실을 토대로 한 양식으로서 국민의 신임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권위와 존경이 생기고 윤리적 규범이 합의를 이루게 될 것이며 비로소 정신풍토의 참된 질서가 유지된다.
물신숭배·이기주의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모럴」감각의 마비…이 모든 폐풍이 곧 청소년의 성장조건을 저해하고 비뚤어지게 하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기성세대는 청소년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이래야만 된다, 저래야만 된다』고 목청을 돋우기 전에 자신에게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실행해야할 일이 너무도 많다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주제 『청소년을 위한 도덕적 환경』
일시 1972년5월8일 하오3시
장소 중앙일보사 회의실
참석자(무순)
고황경 <서울여대 학장>
홍정식 <동국대 교수>
김재숙 <성심여자중고 교장>
정용하 <배재고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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