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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옆 경로당, 부모협동 육아 … 진화하는 실험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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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9일 오후 대전 유성구 ‘뿌리와 새싹’ 어린이집 정현(5)양이 옆 건물 경로당의 박용수(78·앞쪽 오른편) 할아버지와 노끈으로 바구니를 만들고 있다. 할아버지들은 매주 두 차례 애들과 텃밭 농사를 짓고 제기차기·윷놀이 등의 전통놀이를 한다. 어린이집이 마을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한다. [프리랜서 김성태]

‘안심보육’을 위해 부모들이 뜻을 모아 함께하는 곳이 있다. 대전 대덕구의 뿌리와 새싹 어린이집은 지역 공동체 허브 역할을 톡톡히 한다. 단순히 아이들을 시설에 맡기는 것뿐 아니라 부모끼리 친목 모임을 만들어 수시로 의견을 주고받는다. 부모가 직접 출자해 설립하고 운영 전반을 관리하는 협동조합 어린이집도 있다. 엄마끼리 돌아가며 아이를 돌보는 공동육아 현장도 찾아가봤다.

19일 오후 4시 대전 유성구 ‘뿌리와 새싹’ 어린이집 2층 교실에 특별한 강사가 찾았다. 옆 건물 경로당의 할아버지들이다. 10여 명의 아이들이 3명의 할아버지 사이사이에 자리를 잡는다.

 “할아버지 노끈이 뭐예요. 아, 바구니 만드는 재료지. 바로 이 바구니도 노끈으로 만든 거예요?”

 “허, 허. 고놈 참 똑똑하게 생겼다.”

 40여 분이 지나자 바구니가 완성됐다. 한 아이가 “할아버지 여기 가위 있어요. 이제는 제 것도 만들어 주세요”라고 조른다. 최진성(72) 할아버지는 “아이들과 텃밭에서 고구마·감자를 심어서 캐고, 이보다 더 보람 있고 즐거운 일이 있으랴”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할아버지가 만든 딱지가 가장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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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어린이집은 2008년 문을 열 때 경로당과 공존하는 모델이었다. 매주 두 차례 할아버지들이 돌아가며 4명씩 아이들과 야외수업을 나간다. 15일에는 텃밭에 심은 무를 수확했다. 봄·여름에는 관평천에 나가 물놀이를 하고 다슬기를 잡는다. 윷놀이·제기차기·딱지치기·비석치기 등 전통놀이도 빠지지 않는다. 정수윤(5)군은 “할아버지가 만들어주신 딱지가 세상에서 가장 좋다”고 말한다.

 뿌리와 새싹은 커뮤니티의 중심이다. 학부모회가 중심이 돼 월 1회 반별로 부모들이 저녁을 같이 먹고 아이 얘기꽃을 피운다. 어린이집을 졸업한 학부모들은 ‘계수나무 방과후협동조합’을 만들어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을 돌보고 있고 지금은 마을공동체협동조합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마을카페는 이미 문을 열었고 여기서 저녁에 다양한 소모임을 한다. 어린이집·학부모회·노인회가 공동으로 단오잔치를 열고 정월대보름에는 달집 태우기 행사를 연다. 뿌리와 새싹은 대전시 소유의 직장어린이집이다. 2008년 한화그룹과 대전시, 산업은행 등이 대덕테크노밸리를 조성할 때 입주 직원의 복지를 위해 만들었다. 현재 55개 기업의 근로자가 이용한다. 지난 4월 보건복지부로부터 모범어린이집으로 선정됐다.

부모들이 돈 출자해 어린이집 운영

 부모와 지역사회가 아이 보육에 적극 나서는 다른 모델도 있다. 민간(가정 포함) 어린이집이 영리시설처럼 운영하면서 각종 문제를 일으키니 거기에 애를 맡길 엄두가 안 난다. 질 좋고 믿을 수 있는 국·공립 시설이나 우수 민간시설, 직장어린이집은 한없이 기다려야 한다.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 뜻 맞는 학부모들이 직접 나선 것이다.

 대표적인 공동시설이 부모협동 어린이집이다. 부모들이 출자해 어린이집을 만들고 교사·직원을 채용해 운영한다. 2005년 42곳에서 지난해 113곳으로 늘었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콩세알 어린이집은 16가구의 학부모가 평균 200만원씩 공동 출자해 지난 5월 개원했다. 원생은 0~2세 19명이다. 서울시 마을기업으로 지정돼 1억원의 무이자 대출을 받았다. 지난 9월 조합원 총회에서 신뢰·자립·부모성장·공동체·건강한 아이 5가지를 목표로 정했다. 최소 단위의 반 모임에서 시작해 총회까지 다양한 의사결정체가 있다. 조합원 양승미(37·여)씨는 “어린이집에 보내면 아이가 어떻게 보내는지 알 수 없고, 아이의 일상을 공유할 수 없어 답답한데 직접 키우니 그런 걱정을 안 해서 좋다”며 “부모들도 같이 모여 외로움을 달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부모가 품앗이 형태로 일시보육을 하는 공동육아시설도 93곳에 이른다. 서울시와 여성가족부가 지원한다. 서울 ‘은평품앗이육아’는 지난해 6월 마을 도서관에서 품앗이 형태로 동화책을 읽어주던 부모들이 만들었다. 사회복지관 5층을 무상으로 빌려 40명의 엄마들이 아이 40명을 돌본다. 일주일에 오전 두 시간씩 독서모임을 하고, 오후에는 바깥 나들이를 나간다.

카페 내고 미술·동화구연 수업도

서울 동작구 ‘맘스카페’는 ‘동작맘 모여라’라는 온라인 카페를 오프라인으로 전환한 공동육아시설이다. 올 4월 80여 명의 엄마들이 적게는 5만원, 많게는 2000만원을 출자해 ‘Caf<00E9> in D’라는 공간을 확보했다. 하루 평균 30여 명의 엄마들이 아이를 데려와 미술·동화구연 등의 수업을 진행한다. 하루 종일 이용하지는 않고 몇 시간씩 짧게 다녀간다. 운영자 권경아(37·여)씨는 “아이와 대화하는 법 등의 육아 지식이 없는 초보 엄마들이 큰 도움을 받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월세 210만원 등의 운영비, 교육프로그램 개발 등에 부담을 느낀다.

 기업들이 뭉쳐 어린이집을 여는 곳도 늘어나고 있다.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어서다. 충남 천안시 백석농공단지에 14개 기업이 어린이집을 만들어 99명의 아이들을 돌본다. 전북 전주산업단지 꿈나무 어린이집에도 27개 기업이 참여했다.

 ◆일본은 93년에 공동육아 시작=본지 취재진은 6월 말 일본 도쿄도의 무사시노(武<8535>野)시 ‘0123보육센터’를 찾았다. 93년 일본에 처음 들어선 시립 일시보육시설이다. 부모가 아이를 맡기는 어린이집이 아니다. 엄마들이 애를 데려와 육아법을 배우고 정보를 얻고 애와 함께 놀다 간다. 오전 9시~오후 4시까지 운영하며 토요일도 연다. 하루에 65명의 엄마들이 찾는다. 만 0~3세는 하루 평균 3~5시간 이용한다. 무료이며 시에서 돈을 댄다. 직원은 4명이다. 이노 미유키 원장은 기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이런 시설을 만든 이유는.

 “93년 핵가족화, 이혼율 증가 등으로 가정에서 아동학대가 조금씩 생겼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증가해 이들을 돕기 위해 만들었다.”

 -어떤 기능을 하나.

 “놀이에 중점을 둔다. 전문가들이 천연 목재로 기구(실내 미끄럼틀·나무기차 등)를 만들었다. 정보기술(IT) 기기가 아니며 애들이 손으로 느끼게 하는 데 중점을 둔다. 집에 없는 놀이기구가 많다.”

 -엄마 교육을 하나.

 “혼자 아이를 기르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여기서 대화를 하고 강의를 듣는다. 애가 아프면 병원을 찾아주고 우리가 데려가기도 한다. 집에서 문제가 생기면 우리한테 도움을 청하고 우리가 해결방법을 알려준다.”

◆특별취재팀=신성식 선임기자, 장주영·김혜미·이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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