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낭 퇴진>
2대 대통령의 취임식은 8월15일 상오 10시 서울의 중앙청 광장에서 열렸다.
정부는 환도하지 못했더라도 부산에서 이 뜻 있는 기념식을 할 수야 없지 않느냐는 대통령의 고집 때문이다.
이 박사는 51년3월14일 서울이 재탈환되자 곧 정부를 옮기려 했으나 「맥아더」 사령관의 요청으로 마지못해 보류했던 것이다. 그 대신 자주 인적이 드문 서울에 와 며칠씩 경무대에 묵곤 했다.
이즈음 거의 반을 서울에서 지냈으며 어느 때는 한달 가까이 경무대에 머물렀다. 특히 일선 방문을 한 뒤 서울로 가는 일이 많았다. 단순히 일선만 시찰할 때는 「마담」이 동행하지 않았으나 서울에 묵으러 갈 때는 「마담」과 꼭 함께 갔다.
대통령의 일선 시찰에는 주로 나와 장기봉 비서가 수행했다. 동부 전선에 있는 「유엔」군 9군단인가를 방문했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이 군단은 한·미 합동 군단으로 군단장은 미국인이고 부 군단장은 정일권 장군이었다.
군단 사령부에서 전황 설명을 들은 이 박사는 전투 중인 최전방을 시찰하겠다고 말했다.
놀란 군단장과 정 장군은 『위험하니 그만 두시라』고 만류했다. 그러나 이 박사는 이날 따라 유난히 고집을 피웠다. 한참 동안 가겠다느니 위험하다느니 하는 승강이가 오갔다. 이 박사는 장군들에게 『Life is dear to them also(생명은 그들에게도 똑같이 소중한 거야)』하고 내 뱉듯이 말했다. 결국 30분 가까이 설득해 이 박사의 마음을 돌렸다.
대통령이 자주간 부대는 17연대다. 17연대가 용맹스럽게 잘 싸운다 해서 칭찬이 많았다. 부대장이던 백인엽 장군도 자연히 사랑을 받았다.
「밴플리트」장군이 8군사령관에 취임한 뒤에는 일선 시찰에 그가 자주 따라 나섰다.
이 박사와 인연을 맺은 미군 장성이 여러 명이지만 「밴플리트」장군과의 사이가 가장 좋았다. 「무초」 대사는 이 대통령의 비위를 건드리는 일이 있었으나 「밴플리트」 장군은 이 박사를 무척 존경했다. 존경한다기 보다 숭배했다는 표현이 아마 적당할 것이다.
장군은 대통령을 깎듯이 대접했고 전쟁 수행에 있어서도 이 박사의 의견을 가능한 한 존중했다. 「밴플리트」 장군은 대통령을 뵈러올 때면 손수 「아이스크림」 두 개를 들고 와 대통령과 「마담」에게 권했다.
이 박사는 대개 저녁에만 외국 손님을 식사에 초대했는데 「밴플리트」 장군만은 대통령과 점심 식사를 같이 하는 일이 많았다. 이 박사가 「밴플리트」 장군에게 특히 고맙게 생각한 일은 군의 수고로 52년 말 감축하는 미군의 장비를 한국군에 넘겨주어 3개 사단을 증강시킨 일이다. 이런 호감 때문에 53년 초 「밴플리트」장군이 8군사령관직을 떠날 때 「달러」라면 벌벌 떨던 이 대통령은 막대한 전별금을 주었다.
한편 정·부통령 선거에서 하룻밤새 철기에게 일격을 가한 창낭은 그 때문에 결국 곧이어 국무 총리직을 물러나게 됐다.
창낭과 김 내무장관의 책략으로 부통령이 뒤바뀐 것을 안 족청은 일대 공세를 폈다. 우선 경찰 간섭으로 자유 분위기가 파괴됐다고 공격해 김태선씨를 내무 장관직에서 물러나도록 하고 후임에 족청계인 진헌식씨를 앉혔다. 김 장관은 달포 전에 그만둔 서울 시장자리가 대통령의 천거를 받은 만송의 사양으로 비었으므로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갔다.
창낭이 국무총리직을 물러나게 된 직접 동기는 일제 때 경성 부윤이던 일본인 「후루이찌·스스무」(고시진)를 입국시켜 만났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 사실은 연합 신문에 대대적으로 보도 됐다. 그때 연합 신문 사장 양우정 의원은 족청계의 거두로 철기의 심복이다.
이 보도와 때를 같이 해 부산 거리에는 『고시진을 만난 장 총리를 민족 경기로 몰아 내자』 『장 총리를 몰아 내자』는 벽보가 요란하게 나붙었다.
연합 신문은 연일 『이 사건의 배후를 찾아서』란 특별 연재물을 싣고 장 총리가 친일 정권을 책모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보도 내용을 보고 받은 이 대통령은 무척 노했다. 이 사건은 남다른 이 박사의 배일 증오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사건이 보도되자 창낭은 우선 이런 사실을 부인하려 했다.
경남 도청에 사무실을 쓰던 고재봉 비서에게 『고시진을 만난 일이 없으니 대통령에게 잘 말씀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 말을 곧이듣고 대통령께 변명을 해 뒀던 고비서는 대통령으로부터 꾸중을 들었다.
『자네 장 총리와 무슨 관련이 있길래 그런 변명을 하나. 창낭이 왜놈을 입국시켜서 만난 게 사실이야. 그런 쓸데없는 얘기하지 말아.』
창낭은 석달 전인 6월11일 일본 배 안예구의 사무장 자격으로 부산항에 도착한 고시진의 청을 받고 그의 입국을 주선하는 한편 잠시 총리실에서 만난 게 사실이다. 그것이 1백여일이 지난 9월23일 연합 신문에 보도되고 정치적 법적 문제로 비화된 것이다. 1주일만에 창낭은 사표를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이 대통령은 장 총리의 사표를 즉각 수리하면서 다음과 같은 담화를 냈다.
『일인이 허가 없이 들어와 15일간을 유하며 모든 정탐과 자기 목적하는 바를 충분히 이루고 간 것을 심상히 볼 수 없다. 정부의 체면으로나 내 외국에 대한 위신으로 보아 모른 체 할 수 없어 사표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계속> [제자는 윤석오]계속>창낭>
(438)제26화 경무대 사계(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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