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6)제26화 경무대 사계(6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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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부통령선거>
7월4일 야간국회에서 이른바 발췌개헌안이 통과됨으로써 정치파동의 근원이었던 발헌논쟁은 일단 매듭이 지어졌다.
그런데 이 박사는 자유당이 창당된 후 유권자 총수의 3분의 2를 당원으로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이 박사는 자유당에 편지를 보내 『전 유권자의 3분의2를 당원으로 얻는 것이 최급 최선의 길로 알 것이며, 이번에 국회를 꺾어서 사심사욕으로 용권하려는 폐습을 아주 막아야 할 것이니, 국민이 이번 개헌문제를 번안시켜서 우리의 의도대로 통과돼야 할 것이다.
자유당이 할 수 있으면 좋고, 그렇지 않으면 나에게 알려 내가 글을 내도록 하겠다. 그리고 지금은 국회의 부패실정을 국민에게 알려 숙정토록 해야 할 것이다』고 했었다. 이것으로 그때 이박사의 생각이 어떠했는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개헌안은 국회통과 3일만인 7일 공포됐고, 이어 대통령·부통령선거법이 제정되어 선거일이 8월5일로 공고됨에 따라 정·부통령 선거전은 본격화했다.
자유당은 7월19일 대전에서 전당대회를 열고 대통령후보에 이 박사, 부통령후보에 이범석씨를 각각 공천하여 선거채비를 서둘렀다.
어쩐 일인지 이 박사는 대통령선거에 나서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자유당은 대통령의 진의가 어디 있는가하여 한동안 어리둥절해 했다. 자유당은 그후 전 조직을 동원하여 이박사가 대통령에 재출마토록 탄원하는 운동을 벌였다.
몇 주일 동안 재출마 탄원이 임시관저로 몰려들자 이 박사는 7월26일 총재담화를 발표했다.
『수10만 애국동포들의 본인에 대한 재출마를 요구하는 탄원은 본인을 압도하고 깊이 감동시켰다.… 앞으로 또 4년간이라는 긴 동안을 나의 정적들의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것이 지금까지 본인을 주저케 한 것이다.…그러던 중 어젯밤에 비서 한 명이 내가 진해를 향하여 항해하는 도중에 찾아와서 나에게 급히 청하기를 「만일 대통령이 출마 승낙서에 서명하기를 원치 않으신다면 자기에게 내 도장만이라도 주어 국민들의 요구를 들어달라」고 하므로 본인으로서는 「나의 친구의 전부가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믿으면 그것을 사용하여도 무관하다」고 말했던 것이다.… 본인은 평생을 두고 한국을 위하여 헌신하여 왔으므로 여러분들이 본인에게 이 중책을 계속 하도록 요망한다면 이를 거절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실은 그때 이 박사는 등록마감일 아무말 없이 「밴플리트」장군과 진해 앞 바다에 있는 목도로 낚시하러 훌쩍 떠났었다.
하오 5시가 마감인데 3시까지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큰일났다』고 「마담」에게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편지와 도장을 주면서 해군PT「보트」를 마련해 주었다.
전속력으로 달려가 『관저가 무너지게 됐읍니다. 대통령등록을 안하신다고 사람들이 몰려와 야단입니다』라고 했더니, 『그 사람들 내가 안한다는데 왜들 그래』하면서 딴전을 피웠다.
곧 바로 내용을 알 수 없는 「마담」 편지를 내놓으니까, 그때서야 『그래, 자네 마음대로 하게』하면서 승낙했다. 이렇게 하여 가까스로 등록을 마쳤던 기억이 난다.
이 박사는 그때 『양은 예지단』이라고 말했다.
26일 입후보 등록이 마감되자 대통령후보에는 이 박사(자유당) 이시영(민국당) 조봉암(무소속·국회부의장) 신흥우(무소속)씨 등 4명, 부통령후보에는 이범석(자유당 공천) 조병옥(민국당) 전진한(노총) 함태영(무소속) 이윤영(조민당) 이갑성(자유당) 정기원(자유당) 백성욱(자유당) 임영신(여·자유당)씨 등 9명이었다.
자유당은 전당대회에서 분명히 정·부통령 후보에 이 박사와 철기 이범석씨를 각각 공천했었는데 어찌된 셈인지 부통령후보에는 철기이외에 자유당 소속인 이갑성 이윤영 백성욱 함태영씨가 등록을 마쳐 많은 사람들을 어리둥절케 했다.
이들은 모두 이 박사와 가까웠고, 그래서 제각기 이 박사를 업고 나선 것이다. 철기 이외의 다른 네 사람은 입후보에 앞서 개별적으로 이 박사를 만나 그들 나름으로 어떤 암시를 받지 않았나 생각됐고, 모두들 자신이 이 박사의 강력한 뒷받침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았다.
그렇지만 철기의 당선은 처음부터 확실한 것으로 모두들 생각했었다. 그런 생각은 그가 자기세력인 족청계가 실권을 쥐고 있는 자유당의 공천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 박사와 「러닝·메이트」라는 사실 때문에 당연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철기는 여유 만만하게 전국을 돌며 순회강연을 하면서 선거일만 기다리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하룻밤 사이에 바뀌어 철기의 입장은 상당히 어렵게 됐다. 장택상 총리와 자유당이 이 박사의 내낙을 얻어 갑자기 함씨를 부통령으로 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할 수 없지만 하루는 장 총리가 임시관저로 이 박사를 찾아가 한동안 얘기를 주고받고 나갔다.
그런 후 선거일 직전 장 총리는 각도지사와 경찰국장들을 불러 무엇인가 지시를 내렸다. 또한 분주하게 각 도청 소재지 등을 돌며 지방장관·경찰국장 회의를 소집하기도 했다.
이렇게 장 총리가 분주히 지방을 돌고 난 후부터는 선거양상이 크게 달라졌다. <계속><제자 윤석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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