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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제26화>경무대 사계 황규면(필자는 윤석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3장관 해임>
거창 사건을 둘러싼 전병주 내무, 김준연 법무와 신성모 국방장관 간의 심각한 대립은 돌연한 3장관의 해임으로 결말났다.
이 대통령은 신 국방장관을 끔찍이 생각했지만 방위군 의혹사건, 거창 사건 등으로 여론이 나빠지자 신 장관을 교체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동시에 국회에서 현정부시책에 사사건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민국 당도 그대로 둘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외국신문에 거창 사건이 크게 보도되어 이대통령의 심기가 좋지 않던 4월24일, 임시관저에서 대통령주재로 국무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 공교롭게도 신 장관은 밀양에서 군 지휘관 회의가 있어 참석 지 않았다. 이대통령은 노한 얼굴로 회의장에 들어섰다. 자리에 앉자마자 이대통령은 왼쪽 볼의 안면근육을 떨고 입에 손을 대고 불면서 입을 열었다. 대단히 화가 난 것이다.
『글쎄 내가 뭐랬어. 치마 속 부끄러운 곳은 외국에 내보이지 말라고 했잖아. 정부의 장관들은 서로 협력해서 일을 해야 잘되는 법이야. 그런데 내무·법무·국방장관은 서로 협력을 하지 않은 까닭에 대한민국의 체면이 국제적으로 손상됐어. 그러니 이보라구. 국방장관은 오늘로 파면이고 내무·법무장관은 그만두어.』
이쯤 되면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는 게 상례다. 그러나 대가 센 유석(조병옥)은 『선생님, 저는 즉시 사임하겠습니다만 국무위원들에게 한마디 남기고 사임하겠으니 발언해도 좋습니까』하고 나섰다.
대통령의 승낙을 받은 유석은 『정부의 11부 장관은 서로 협력해 일을 잘합니다. 다만 신 국방장관만 협력하지 앉는 실정입니다. 이번 거창 사건에 대해서도 엄연히 있는 사실을 없다고 복명서를 꾸며 대통령께 보고했기 때문에 사건조사가 늦추어지고 국가위신이 손상된 것입니다. 거창 사건은 군이 일으켰고 조사를 늦춘 것도 신 장관이니 책임은 국방장관에게 있다고 확언합니다.』
이어 낭산(김준연) 도 일어서 『저도 그만두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나라의 간신 조고의 고사를 기억해야합니다』고 직언 했다.
살벌한 국무회의가 끝난 뒤 유석은 즉시 이대통령에게 사표를 제출하고 성명서를 냈다. 사표에 그는 ①행정은 제도상으로 움직여야하며, 개인의 의욕으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②정치는 재 인이니 양심적 유능한 인사를 등용해야한다 ③대한민국은 민주국가로 탄생했으니 민주국가로 성장발전 해야한다는 건의를 곁들였다.
이 사표를 읽은 이대통령은 『이 사람이 나에게 설교를 하려하느냐』고 씁쓸해 했던 기억이다. 3장관의 후임은 열흘이상 끌다가 내무에 이순용, 법무에 조기만, 국방에 이기붕 씨가 임명됐다.
신 장관이 물러난 뒤부터 말썽 많던 두 사건의 수사는 활기를 띠게 된다.
경무대비서실에서는 이 두 사건 때문에 국민의 여론이 나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대통령도 신 장관을 아끼기는 했지만 사건자체에는 분노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와 임철호 씨는 「마담」과도 상의해서 만송(이기붕) 에게 사건을 철저히 다루도록 여러 차례 얘기했다.
심약한 만송이 방위군사건을 처리하면서 김윤근 사령관이하 관련자 5명을 극형에 처한 데는 이러한 격려가 상당히 힘이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방위군사건 수사과정에서 불미한 일이 나타났다. 경무대비서 I명과 경호경관1명이 방위군 간부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것이다. 별로 큰돈은 아니었으나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만송은 이문제로 내게 의견을 물었다. 나는 동료에 관한 일이니 뭐라고 할 수가 없어 『알아서 처리하십시오』하고 피했다.
그랬더니 만송은 혼자 고심한 끝에 받은 돈이 좀 많았던 비서만 대통령께 보고했다.
대통령이 노발대발한 것은 물론이다. 나를 부르더니 『그 사람 당장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해』-. 정부수립이후 3년 가까이 대통령을 모시던 측근 비서였으나 한마디 변명할 틈도 없었다.
사건의 연속으로 이대통령이 번거로와 하고 있던 이해 5월7일 이시형 부통령이 느닷없이 부통령 사임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이 박사는 성재 선생을 부통령으로까지 밀어주고 존중했으나 정무에는 관여하지 못하도록 했다. 성재를 무시했다 기 보다 이박사의 강한 「원맨쉽」때문이다.
정부수립초 기 성재는 자주 이대통령을 찾아와 여러 문제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 건의도 했으나 별로 반영이 되지 않아 차차 대통령을 야속하게 생각한 것 같다.
이 부통령은 국회에 사임서를 내면서 국민에게 고한다는 성명을 내 정부 지도층을 비난했다.
『조국이 중대한 위기에 직면한때 시위에 앉아 소찬을 먹는 격에 지나지 못하는 나로서 부끄러움을 금치 못한다. 더구나 이렇듯 관기가 흐리고 민막이 어지러운 것을 목도하면서도 워낙 무위무능 아니치 못하게 된 나인지라 속수무책에 수수방관 할 따름이니, 내 어찌 그 책임을 통감치 않을 것인가.』<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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