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영기관임금의 역 평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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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는 정부투자기관·국영기업 및 금융기관의 임직원에 대한 봉급수준과 그 체계를 재조정한다는 방침아래 급여실태를 조사하고 있다한다.
국책은행의 봉급수준이 지나치게 높으며 그 급여방법에 있어 비정상적인 요인이 있다는 당국의 조사결과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이번 봉급체계의 재조정문제는 봉급인하로까지 발전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국이 이번 봉급체계 재조정에 있어 주안점을 두고있는 사항은 기본급을 현실화시키는 대신, 각종수당을 축소시킨다는 원칙과 각 기관별 임금수준의 차를 없앤다는데 있는 듯하며, 당국의 이러한 기본방침이 관철되는 경우, 적지 않은 문제가 야기될 것에 틀림없다.
당국이 이러한 작업을 서두르게 된 구체적 이유를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봉급체계나 수준을 조정하는 문제를 너무나 안이하게 결론지어서는 아니 될 것임을 먼저 강조하고싶다.
우선, 각 기관별 임금수준을 평준화시키려는 당국의 시도는 신중해야 할 것이다.
어느 나라의 경우에도, 직종간의 임금수준은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기업체별로도 다른 것이 오히려 정상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동종직무를 하는 경우에도 기업체의 경영성과에 따라서 급여수준에 차이가 있는 것인데, 하물며 이질적인 국영기업·정부투자기관 및 금융기관의 급여수준을 평준화시키겠다는 것은 경제원리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더우기 근속 연수를 기준으로 하여 평준화한다면, 업무의 질과 성격의 차이를 무관하게되는 모순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각 기관 고유의 속성을 도외시함으로써 그 종업원들의 사기를 전반적으로 저하시켜 「쥐잡다 독 깨는」격이 될 염려도 없지 않다.
다음으로, 일부기관의 임금수준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이유를 들어 이를 축소 조정시킬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이 문제도 깊이 생각해야 할 일이다.
솔직이 말하여, 일부 국책은행 등의 임금수준이 다른 금융기관이나 기타국영업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은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로써도 만족할만한 처우라고는 할 수 없는데, 이를 굳이 깎아내려 평준화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이겠는가. 임금이론으로 보아도 임금상의 선도「그룹」이 존재하는 것은 널리 공인되고 있는데, 무작정 그 격차를 부당시하여 이를 없애자는 착상은 자유경제체제의 본질적 속성과도 어긋나는 것이다. 물론 이들 선도「그룹」의 임금인상이 전체경제에 임금「코스트」의 상승압력을 줄 정도의 것이라면 장차 이들 선도「그룹」의 봉급인상을 억제함으로써 충분한 것이지, 졸지에 이를 깎아 내린다는 것은 우리의 물가동향으로 보아도 무리라 할 것이다.
년간 물가상승률이 10%를 상회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임금상승만 억제해도 실질임금이 연율10%이상 하락하는 실정에서 이를 축소한다면 조만간 다시 인상해주어야 하는 모순이 제기될 것이다.
끝으로, 경제의 분배구조로 보아 현재 책정된 상대적 고 임금 수준을 굳이 깎아 내리는 것이 사회정책상 과연 옳은 것이냐 하는, 좀 더 높은 차원의 검토가 필요하다. 이 나라 분배구조로 보아 임금생활자들이 후대 받아 왔다고 주장할 근거는 어디서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그나마 제대로 이 금을 주고있는 기관이나 기업에 손을 댐으로써 모든 근로자들에게 임금상승희망의 표적마저 소멸시키는 것이 옳은 것이냐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뿐만 아니라 관례적으로 임금수준이 선도「그룹」을 기준으로 하여 결정되고 있는데, 이를 인하시킨다면 거꾸로 여타 임금수준에도 인하압력이 파급될 소지가 생길 것이다. 이러한 파급효과를 오늘의 분배조치로 보아 기대하는 것이 과연 정당할 것인가 하는 의문도 갖게 한다.
저임금을 축적의 주수 단으로 삼던 지난날의 안이한 사고가 업계의 부실화를 촉진시킨 커다란 원인이었다는 점으로 보나, 자유경제체제하의 정상적 임금결정구조로 보나, 또 그리고 우리 경제의 분배구조로 보아, 낮은 수준을 기준으로 한 임금수준의 역 평준화의 임금선도「그룹」의 제거는 불합리한 것이라는 것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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