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임나일본부설 가르친 미국 대학 수업 바꿨어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 대학 보스턴칼리지의 아시아학 역사 강의 `Asia in the world(세계 속 아시아)` 수업 내용을 바로잡은 기민형씨(왼쪽)와 이현씨.

“역사를 전공하는 학우들께 도움을 구합니다. 제 친구가 듣는 역사 수업의 미국인 교수가 사용하는 교재에 ‘일본이 4∼6세기에 걸쳐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이를 반박할 수 있는 자료를 찾고 있습니다. 도와주세요.”

미국 보스턴칼리지(Boston College)에 교환 학생으로 가 있는 이현(20ㆍ서강대 정치외교학 2)씨는 지난달 11일 서강대 페이스북에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올렸다. 문제가 된 수업은 ‘Asia in the World(세계 속 아시아)’로 보스턴칼리지의 아시아학 학부 전공 강의다. 미국인 교수 제레미 클라크가 가르치는 이 수업의 교재에는 임나일본부설이 실제 역사인 양 담겨 있었다. 교수는 수업에서 교재 내용 그대로 “일본이 4세기 말부터 한반도 남부의 백제ㆍ신라ㆍ가야를 식민지로 삼았다”고 가르쳤다. 이씨는 이 수업의 수강생이 아니지만 같은 학교에서 유학 중인 기민형(21ㆍ보스턴칼리지 국제학 3)씨를 통해 이 사실을 전해 들었다. 두 사람은 이를 바로 잡기로 마음 먹고 자료 수집에 나섰다.

이씨가 올린 글엔 이틀 만에 5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참고할 만한 영문 역사 서적을 추천하는 댓글이 빼곡히 이어졌다. 돈을 내야 볼 수 있는 유료 논문을 참고하고 싶다면 결제를 대신해 주겠다는 이도 있었다.

두 사람은 며칠에 걸쳐 반박 자료를 모았고, 이를 클라크 교수에게 전했다. 교수는 자료를 살펴본 뒤 “실수가 있었다”며 사과했다. 한국 역사에 대한 특별 강의를 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이러한 사연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한국에 알려져 화제가 됐다. 두 사람을 전화로 인터뷰했다.

- 용기 있는 행동으로 주목을 받게 됐어요.
이현 “ 이렇게 화제가 될 줄 몰랐어요. ‘세계 속 아시아’ 수업을 듣는 친구가 강의가 끝난 후에 관련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렸어요. 그 글을 읽고 충격이었어요. 역사 왜곡과 관련해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일어날 거라곤 생각지 못했죠. 이대로 지나가면 틀린 이야기를 맞는 것으로 알게 된다니 아찔했어요.”

-왜 SNS를 통해 도움을 요청했나요.
이현 “교수님께 강의가 잘못됐다는 걸 지적하려면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학술 자료를 모아야겠더군요. 제가 역사 전공자는 아니니까, SNS를 통해 도움을 요청하면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이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고민하다가 서강대 학생들이 모여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렸어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주고 다양한 자료를 보내줬어요.”

-반박 자료는 어떻게 모았나요.
기민형 “현이는 SNS를 활용해 한국 자료를 뒤지고, 저는 객관성을 확보하고자 일본 자료 위주로 찾아서 번역했어요.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보낸 덕분에 일본어를 할 줄 알거든요. 일본인 친구들 도움도 많이 받았어요. 사흘 정도 자료를 모으고, 현이가 가져온 자료와 합쳐 교수님께 e메일을 보냈어요.”

-어떤 내용의 자료인가요.
기민형 “참고한 논문만 16편이 넘었어요. 먼저 2010년 제2기 한ㆍ일 역사공동연구회 회의에서 양국 사학자들이 임나일본부설이 잘못됐음을 인정하고 공식 폐기한 사실을 지적했죠. 또 임나일본부설의 주요 근거로 꼽히는 일본의 고대 역사서『일본서기』가 잘못된 기록임을 연구한 일본 학자의 논문도 첨부했어요.”

- e메일을 받은 클라크 교수의 반응은 어땠나요.
이현 “교수님은 e메일을 꼼꼼히 보았다며 ‘미국 학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라 강의에 실수가 있었다’며 저희를 사무실로 초대했어요. 교수님은 ‘다음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내 강의에 오류가 있었음을 알리겠다’고 약속하면서 이달 25일에 한국사 강의 시간에 저희 두 사람이 이 내용에 대해 발표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어요. 우리나라를 제대로 알릴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 교수님의 제안대로 발표하기로 했어요. ‘아시아의 형성에서 한국 역사의 중요성’이라는 주제로 발표할 생각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얻은 게 있나요.
기민형 “역사를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우리 땅을 떠나 유학생 신분으로 살아보니 역사를 왜 공부해야 하는지 알겠더군요. 지금의 한국을 이해하기 위해선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를 알아야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알 수 있고, 나아가 세계의 흐름을 알 수 있는 거니까요.”

이현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태도가 세상을 바꾼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저희가 한 일이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만약 ‘그렇지 뭐’하고 화만 내고 움직이지 않았다면 그냥 넘어갔을 일이죠. 하지만 행동으로 옮겼기에 강의를 바로 잡을 수 있었어요.”

글=박인혜 기자 ene@joongang.co.kr 사진=이현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임나(任那)는 금관가야 또는 가야연맹체를 부르는 말이며, 일본부는 일본이 설치한 기관을 말한다. 즉 임나일본부설은 일본이 4세기 후반 한반도 남부 지역에 진출해 백제ㆍ신라ㆍ가야를 지배하고, 가야에는 일본부라는 기관을 두어 6세기 중엽까지 직접 지배했다는 설이다. 일본 고대사서인 『일본서기(日本書紀)』의 내용을 바탕으로 『광개토대왕비문』등을 근거로 주장한다. 하지만 한ㆍ일 역사학자들로 구성된 한ㆍ일 역사 공동연구위원회는 2010년 3월 제2기 최종연구보고서에서 4~6세기에 일본이 한국을 지배했다는 근거가 없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일본 교과서의 내용을 폐기하는 데에도 합의했다.

관련기사
▶ 2318개 고교 中 "찾아보자, 내게 맞는 고등학교"
▶ 자기주도학습전형 "자기계발계획서는 구체적으로"
▶ 나는 지금 중3…타임머신 타고 초4로 가고 싶어요
▶ 카페에서 기내식 맛보고, 캠핑카에서는 차 한 잔
▶ 위치스 다이어리 <31> 채리와 마법 케이크 대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