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대통령 시정연설 … 정국 갈림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국회에 간다.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서다. 지난 9월 16일 여야 대표와의 3자 회담에 이어 약 두 달 만이다. 취임 후 국회 방문은 2월 25일 취임식을 포함해 세 번째다.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정국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예산안 시정연설은 내년도 정부살림을 입법부가 원만하게 잘 처리해 달라고 협조를 요청하는 자리다.

 그러나 정국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다. 야권은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에 대한 특검을 요구하며 결집해 있는 상태다. 민주당·정의당·무소속 안철수 의원 등은 ‘연석회의’ 를 출범시켜 놓고 박 대통령에게 특검 수용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폐기가 노무현 전 대통령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는 검찰 수사 결과, 정부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 등 갈등 사안이 산적해 있다.

 박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이런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느냐가 예산안은 물론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 등 각종 법안의 처리 방향을 결정 지을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야권은 특검과 특위를 예산안과 연계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종전과 달라진 발언을 하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부는 철저한 조사와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는 대로 불편부당한,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고 재발 방지책도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철저한 검찰 수사를 밝힌 상황에서 특검을 수용하긴 어렵고 국회 특위는 국회가 알아서 할 문제라는 게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인식이다.

 따라서 당시 발언과 같은 선에서 언급을 하거나 아니면 아예 현안 문제는 언급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신 경제살리기와 민생 문제에 방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는 게 청와대 기류다. 청와대 관계자는 “시정연설을 위해 예산안의 각종 숫자와 정책 등이 대통령에게 보고가 됐다”며 “최근 대통령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공기업 방만경영 문제 같은 내용이 언급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민주당은 박 대통령의 국회 방문을 하루 앞두고 압박을 강화했다. 민주당 의원 86명은 17일 특검·특위 수용을 촉구한 뒤 남재준 국정원장, 황교안 법무부 장관, 김관진 국방부 장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에 대한 해임을 요구하는 성명서(‘시정연설 관련 대통령께 드리는 요청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대통령의 결단만이 겨울 추위를 넘어 새 봄을 열 유일한 방법”이라며 “온 나라의 눈이 집중될 시정연설에서 민주주의 수호 의지를 확고히 천명해 달라”고 말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박 대통령을 어떻게 맞을지를 두고 고심을 거듭했다. 이번 시정연설은 1988년 노태우 전 대통령,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이어 역대 네 번째다.

 재신임을 위한 국민투표를 제안한 이후 이뤄진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정연설 땐 야당(당시 한나라당·민주당) 의원들이 입·퇴장 시 대부분 기립하지 않았고 연설 동안 한 번의 박수도 치지 않았다. 2008년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본회의장에 입장할 때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일어서긴 했지만 박수는 치지 않았다.

 민주당에선 초선을 중심으로 한 강경파 의원들이 검은 넥타이·스카프를 착용하고 박 대통령에게 항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의원 개인 자율에 맡긴다는 쪽으로 잠정 결론을 내린 상태다.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이날 오후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연설 때 행정수반에 대한 예우를 갖추자’는 입장을 정했다고 이언주 원내대변인이 발표했다. 하지만 당내 강경파들이 이 결정을 따를지는 미지수다. 민주당은 18일 당일 의원총회를 열어 예우 문제에 대한 최종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국회 본청 앞에서 12일째 삭발·단식 농성을 하고 있는 통합진보당 의원들은 박 대통령이 국회에 들어올 때도 농성을 계속하기로 했다. 국회 구조상 농성장을 거쳐야 본회의장에 입장할 수 있다. 통합진보당 의원 6명은 본회의장에서도 항의표시를 한다는 계획이다.

허진·하선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