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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게임은 알코올·마약 같은 중독물질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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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류철균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
(소설가 이인화)

스웨덴에 쿤겐(Kungen)이라는 게이머가 있다. 전 세계에 흩어진 1340만 명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게이머들에게 절대적인 존경을 받는 사람이다. ‘전사의 신(神)’ 혹은 ‘쿤겐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그는 길드원들을 이끌고 어려운 던전을 차례로 공략하여 세계 최초의 미션 클리어 기록 22개를 달성했다. 새로운 패치가 있을 때면 그의 게임 플레이를 인터넷 중개 방송을 통해 400만 명이 시청한다. 이렇게 게임을 하는 동안 쿤겐은 현실에서 버거킹 직원으로 일했고 17개월 연속 최우수 직원으로 뽑혀 승진을 거듭한 끝에 현재는 점장으로 일하고 있다.

 게임에 대한 매체 문해력(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이 없는 사람들은 흔히 쿤겐 수준의 게이머를 "게임중독자”라고 말한다. 저렇게 게임을 하면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겠느냐, 법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치료가 필요한 ‘게임중독자’는 국회 입법조사처 보고서 기준으로 5만 명에 불과하다. 한국의 전체 게이머 2000만 명의 0.25%인 것이다. 나머지 99.75%의 게이머는 쿤겐과 같이 건실하고 평범한 생활인들이다.

 정보화 혁명과 함께 게임은 매우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문화적 표현양식이 되었다. 70억 인류는 이제 거미줄처럼 연결된 디지털 매체 환경에서 의사소통하고 놀이한다. 게임은 과거의 소설, 연극, 영화, 르포르타주와 다큐멘터리, 뮤지컬의 표현양식들을 수용했고 어느 정도는 서정시의 미감(美感)까지를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게임의 문제는 뇌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과 의지와 미감, 즉 마음의 문제인 것이다.

최근 국회에서 게임을 마약, 도박, 알코올과 함께 4대 중독유발물질로 규정하고 이를 관리하는 국가중독관리위원회를 신설하겠다는 법안(이하 중독법)이 발의되었다. 이 법안은 네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중독법은 동일한 것을 동일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평등성 원칙에 위배된다. 게임은 구체적인 중독물질이 있는 알코올이나 마약과 다르며, 반사회적일 뿐만 아니라 범죄인 도박과도 다르다. 둘째, 중독법은 법 적용의 대상이 분명해야 한다는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 ‘인터넷게임 등 미디어 콘텐트’라는 중독법의 대상은 현 시대의 문화 전체를 잠재적 중독유발물질로 규정한다.

 셋째, 중독법은 해악의 객관적 인과관계가 입증되어야 한다는 과잉 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 게임이 중독 및 중독폐해를 유발한다는 사실은 한 번도 객관적으로 입증된 바 없다. 폭력 비디오 게임 판매 규제는 위헌이라는 2011년 6월 미국 연방법원 판결을 비롯하여 해외 판례들은 게임이 공격적 행동 등 중독폐해의 원인이라는 추측을 부정하고 있다. 넷째, 중독법은 중복규제를 금지해야 한다는 원칙에 위배된다. 시급한 정신치료를 필요로 하는 0.25%를 위해 우리는 이미 청소년보호법과 게임법의 과몰입 예방을 위한 법률들을 가지고 있다.

 매체에 의해 발생한 문제는 법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것은 20세기 후반 텔레비전의 폭력성과 선정성을 막으려고 발의되었던 수많은 법의 전례들이 말해준다. 궁극적으로 이런 문제들은 사회 전체 구성원의 매체 문해력이 증진되면서, 부모와 자녀들이 매체를 깊이 이해하면서 극복되었다. 중독법을 지지하는 분들에게 법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과 새로운 문화에 대한 관용을 호소하고 싶다.

류철균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 (소설가 이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