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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예 기자의 '위기의 가족'] 알고 보니 '괴물' 이었던 재혼 남편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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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토]

올 초 일입니다. 집으로 편지 한 통이 왔습니다.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질러 신상정보 등록 판결을 받은 사람이 인근에 살고 있다는 통지문이었습니다. 사진 속 인물의 잔상이 한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딸아이를 둔 동네 아줌마들은 해가 지면 약속이라도 한 듯 종종걸음으로 놀이터를 벗어났지요.

최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성범죄자 분석에 따르면 가족, 친족 등 ‘아는 사람’으로부터 성폭행이나 강제추행을 당한 경우가 전체의 48.7%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중 친부(4.7%)의 범죄율이 의붓아버지(3.6%)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성범죄가 너무도 은밀히 ‘가까운 거리’에서 발생하다 보니, 이로 인해 고통받는 가정도 늘어갑니다. 이번 회는 너무 자주 ‘성추행’ 추문에 휩쓸린 남편, 그리고 그 남편으로부터 어린 딸을 보호하기 위해 남남이 되는 길을 택한 엄마의 이야기를 각색해 전하려 합니다.

#조카의 허벅지를 쓰다듬던, 그 괴물

괴물은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연애 결혼했던 남편을 교통사고로 떠나보내고, 어렵게 마음을 열어 만난 것이 지금의 그 사람이다. 상처가 많았던 우린 어렵게 재혼이란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10년을 부부지간으로 살면서 한 번도 그가 사람의 탈을 쓴 괴물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동네에서 자그마한 피아노 학원을 차려 근근이 살림을 하던 시절. 학 학부형이 찾아왔을 때만 해도 믿지 않았다. 이 괴물의 실체를. 학부형의 이야기는 이랬다.

“학원을 갔다오면 딸아이가 ‘실장님이 자꾸 귀찮게 한다. 정말 싫다’면서 투덜거리는 게 이상했어요. 몇 번이나 그러기에, 하루는 캐물었더니 글쎄 목덜미를 만지고 허벅지를 자꾸 주무른다는 거에요.”

시간이 날 때마다 가끔 학원 아이들의 차량지원을 했던 남편을 아이들은 ‘실장님’이라고 불렀다. 아이들을 워낙 예뻐했던지라, 과도하게 스킨십을 한다고 생각했다. 남편에게 주의를 주겠다고 학부형을 설득했지만 결국 남편의 일로 학원생 4명이 피아노를 그만뒀다.

#장성한 아들의 결혼, 그리고 싸움

그렇게 8년여가 흘러 남편이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결혼을 하게 됐다. 남편은 엄마 없이 자란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던 터라 결혼비용을 보태주고 싶어했다. 하지만 우리 살림살이도 넉넉지 않은 데다 아직 10대인 딸아이에게도 돈이 많이 들어 여력이 없었다.

“전세라도 구할 돈을 좀 보태줍시다.”

남편의 설득에 통장을 깼다. 그렇게 결혼을 시켰지만 남편의 아들은 가장 구실을 잘 못했다. 회사를 그만두기 일쑤여서 생활비에 쫓겼다. 남편은 그런 아들에게 생활비를 주고 싶어했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언성을 높여야 했다.

남편은 내가 ‘계모’라서 그렇다고 성질을 냈다. “차라리 이혼하자. 이 집에서 맨몸으로 나가라”는 폭언이 쏟아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생활비를 끊어버렸다. 한창 딸아이가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딸 아이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날이 늘어만 갔다.

“언니 사실은 형부가….”

어느 날 학원에 여동생이 찾아왔다. 이혼을 고민하고 있는 내게 여동생이 뜻밖의 말을 건넸다. “언니, 작년에 말이야. 우리가 언니네 집에서 몇 밤 자고 갔을 때 좀 일이 있었어. 어렵게 언니가 형부랑 결혼한 걸 잘 알아서 사실 그동안 말을 못했어. 미안해.”

동생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동생에겐 14살인 딸이 있었다. 지난해 동생네가 놀러 왔기에 장을 보러가자며 조카를 남겨두고 집을 비웠었는데 그때 남편이 조카를 괴롭혔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어린 조카가 싫다는 데도 입맞춤을 하고, 허벅지를 만졌다고 했다.

먹먹했다. 다 내 잘못이었다. 학부형들이 찾아왔고, 학원생이 남편 때문에 네 명이나 그만둔다고 했을 때 이미 그 괴물을 알아채야 했다. 사람들 눈을 피해 조카까지 성추행한 남편. 그 남편이 있는 집에 딸아이를 그냥 두는 것은 죄를 짓는 일이다. 그 길로 나는 남편을 상대로 이혼 소송을 냈다.

법원 “남편, 아내에게 위자료 1500만 원 줘야”

서울가정법원은 1년 7개월째 별거를 하고 있는 이 부부에게 이혼을 판결했다. 남편 역시 아내의 소송 제기에 변호사를 고용해 맞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아내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남편이 조카 등에게 성추행에 가까운 행동을 하는 등 아내와의 갈등을 심화시킨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또 “결혼한 아들 생활비 지원 문제로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일방적으로 생활비 지급을 중단하는 등 아내를 존중하고 배려하기보다 권위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이 부부가 10여 년간 함께 살며 모은 재산을 절반씩 나눠야 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아내가 약 10년간 가정주부로 자녀를 양육하고 학원을 운영하기도 한 점을 참작해 재산의 50%를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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