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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예 기자의 '위기의 가족'] '갑(甲)' 아내의 다이어리 하트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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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아빠가 잘못했어. 마음 몰라줘서 속상했구나.”

놀아주지 않아 골이 난 딸아이를 남편이 달콤한 목소리로 달래기 시작합니다. 설거지를 하며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데, 갑자기 심술이 나더군요. “뭐야, 나한텐 한 번도 ‘마음 몰라줘서 미안하다’고 말해준 적 없으면서.”

부부싸움 하시나요? 별거 아닌 걸로 시작해 등 돌리고 자게 되는 말싸움 같은 거 말입니다. 신혼 초엔 주도권을 잡겠다고 괜한 말씨름도 하죠. “기선을 잡아야 결혼생활이 편하다”며 훈수 두는 결혼 선배들도 있고요. 부부간에 정말 ‘서열’이란 게 있을까요. 이번 회에는 사업 때문에 갑(甲)이었던 아내와 을(乙)이었던 남편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갑(甲)이었던 내 아내

내 아내는 ‘갑’이다. 대형 유통회사의 구매 책임자. 이게 아내의 직업이다. 작은 생활용품 업체를 운영하던 나는 대형 거래처를 뚫는 것을 최대 목표로 삼았었다. 일단 한 번 이름 있는 대형 거래처에 줄이 닿기 시작하면 다른 곳은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다. 아내에게 ‘의도’를 갖고 접근한 건 아니었다. “물건이나 한 번 봐 달라”며 잡게 된 약속. 그곳에 나타난 여성은 딱 내 이상형이었다.

사업 이야기는 뒷전이 됐다.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어디 사는지, 물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아내도 내가 싫진 않은 내색이었다. 용기를 내어 데이트 하자며 전화를 걸었고, 그렇게 우리는 연인이 됐다.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하면서 사업도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다 아내의 도움 덕이었다. 그로부터 일 년 뒤. 우리는 결혼에 성공했다. 하지만 거래 관계였던 탓에 혼인신고는 당장 하지 못했다. 아내의 직장에서 우리의 결혼 사실을 알게 되면 좋지 않을 건 분명했으니까.

#아내 동료의 폭로, 그리고 아내의 퇴사

사업이 승승장구하면서 의심을 받는 듯했다. 조심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토록 빨리 아내 동료가 눈치챌 줄은 몰랐다. “남편의 사업을 부당지원했다”는 직장 동료의 폭로로 아내는 회사를 나와야 했다. 아내가 회사를 그만두면서 사업은 어려워졌다. 당장 아내 회사에선 우리 회사 물건을 받지 않았다. 재고가 쌓여가자, 아내는 “차라리 내가 팔겠다”며 쇼핑몰을 차렸다. 한동안 아내는 쇼핑몰에 집중하는 듯 했지만, 그 역시 벌이가 변변찮았다.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아내와 나는 자주 다투기 시작했다. 구매만 하던 ‘갑’인 아내는 양보할 줄을 몰랐다. 작은 일도 내가 먼저 미안하다고 해야 성이 풀렸다. 싸움이 늘어날수록 분풀이를 할 데가 필요했다. PC방에 가거나 서재에 들어가 밤새도록 게임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었지만, 아내는 이조차도 못마땅해 했다.

#아내의 ‘다이어리 하트’

아내는 무직 상태를 괴로워했다. 마치 물 밖을 벗어난 물고기처럼 허덕거렸다. 이곳저곳 이력서를 내보던 아내는 어느 날 아침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나 출근해.” 종종걸음으로 문밖을 나선 아내는 해가 지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피곤함에 곤죽이 된 얼굴을 하고 들어왔다.

몇 달 뒤 아내의 책상을 치우다 다이어리를 발견한 건 내 일생일대 사건 중의 사건이었다. 2009년 5월 23일 ♥. 5월27일♥, 5월30일♥. 6월 2일에도 8일에도, 12일에도 아내의 수첩엔 하트가 빼곡하게 그려져 있었다. 돌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만 같았다.

아내는 부부관계를 하는 날엔 항상 다이어리에 하트 표시를 했다. 사업이 어그러지면서 부부관계가 소원해졌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아내가 바람이 난 게 분명했다. 그 길로 난 아내의 뒤를 미행했다. 아내가 회사 동료로 보이는 남자와 모텔로 들어가는 걸 확인한 뒤, 조용히 경찰을 불렀다. 경찰을 앞세워 들어간 모텔방. 벌거벗은 아내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두 사람을 간통죄로 고소를 했고, 1년여의 재판 끝에 두 사람은 법원으로부터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법원 “아내, 남편에게 아이 양육권 넘기고, 1000만 원 위자료 줘야”

남편이 이혼 소송에 들어가자, 아내 역시 맞소송으로 버텼다. 아내는 “남편이 회사 매출을 올리라며 임신도 속이고 출산 직전까지 근무를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사업이 어려워지자 의처증이 생겼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등 폭력적으로 변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서울가정법원은 “부부관계의 파탄은 아내 책임”이라며 남편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부부간 정조의무를 위반해 부부관계의 기본적인 신뢰를 깨뜨린 잘못이 아내에게 있다”고 밝혔다.

법원은 아이의 양육권자를 남편으로 지정했다. 재판부는 “남편과 살고 있는 아이의 양육자를 바꾸는 것이 아이의 성장과 복지에 더 도움이 될지 확실하지 않다”며 아내의 양육자 지정 청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재판부는 “아내는 아이의 양육비 40만 원을 매달 남편에게 지급하라”고 했다. 또 아내는 남편에게 100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부부간 재산에 대해선 아내의 기여도를 35% 정도로 계산했다. 두 사람이 부부로 지내는 5년여의 시간 동안 구매담당자인 아내의 도움으로 남편 회사의 매출이 7배나 늘었던 점을 인정해줬다. 법원은 “교제 시절부터 남편 회사의 거래처에서 바이어로 일하면서 직위를 이용해 남편의 사업에 상당한 도움을 준 것으로 보여 재산분할을 인정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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