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일본 기업, 한국에 매력 못 느껴 아세안 국가 투자가 낫다고 판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3면

오스나 마사코 JETRO 서울 사무소장은 “각종 규제와 반일 감정으로 인해 한국보다 아세안 국가에 투자하겠다는 일본 기업이 많다”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일본 기업의 한국 투자 열기가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 1~9월 월평균 투자액은 2억1811만 달러로 지난해(3억7846만 달러)보다 절반 가까이 줄었다. 한국에서 사업하는 일본 기업을 돕는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의 오스나 마사코(57) 서울 사무소장은 “한국 투자를 하느니 차라리 아세안 국가가 낫다는 판단을 하는 기업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육중고(여섯 가지 어려움)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환경 규제, 노동 규제, 세금 부담, 전력난, 인력난, 엔저 등이다. 반일·혐한 감정은 이런 상황을 더 꼬이게 하고 있다. 그는 “일본 기업의 한국 투자는 현 상태를 유지하거나 줄어들 것”이라며 “일본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참가하면 무역 자유화가 진전되기 때문에 한·일 자유무역협정(FTA)의 장점이나 중요도는 상대적으로 줄어든다”고 말했다.

 오스나 소장은 일본 기업 진출의 걸림돌로 유해화학물질관리법 개정을 첫 손에 꼽았다. 그는 “화공기업은 다양한 약품을 들여와 연구해야 하는데 한국 통과에 시간이 걸려 연구개발을 포기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 사례까지 들었다. 그는 “90종의 화학품을 수입·판매하는 일본 신에쓰 화학 측은 ‘한국 내 약품 반입 심사에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납품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일본 기업이 이렇게 느낄 정도니 한국 기업의 아우성이 엄살만은 아닌 셈이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인 일본인이 던지는 ‘돌직구’는 계속 이어졌다.

 -노동 규제란 무엇을 말하나.

 “국가가 근로시간을 제한하고 통상임금 문제, 노사 분규 등이 계속되고 있다. 부산의 일본 기업 중에선 철수를 검토하는 곳도 있다. 올여름 현대차 파업으로 현대차에 납품하는 일본 부품기업이 조업을 중단하고 비용 부담을 떠안았다.”

 -그래도 한국엔 고급 인력이 많지 않나.

 “일본 기업은 고급 인력보다 일반 공장 노동자가 더 절실하다. 그런데 한국 젊은이는 모두 대기업을 지원하고 중소기업은 꺼리지 않나. 공장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대부분이다. 일본 입장에선 아예 아세안 국가로 가는 게 낫다는 판단이 선다. 삼성전자도 마찬가지 아니냐. 또 엔저로 일본 기업은 같은 해외 투자를 해도 지난해보다 30% 이상 돈이 더 들어간다. 그래서 통화가치가 낮은 아세안 국가에 투자할 가능성이 더 크다.”

 오스나 소장은 한국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장점도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산업용 전기 요금이 일본의 반값이지만 전력 부족으로 조업을 일시중단하는 기업이 있다고 들었다. 법인세율은 한국이 일본보다 낮지만 최근 재원 부족으로 세금 규제를 강화해 관세 소급징수가 우려된다.” 이런 상황에 반일·혐한 감정은 부담을 키운다. 그는 “지난해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발언 이후 신규 투자를 꺼리는 기업이 많다. 박근혜 대통령도 강경한 자세를 보여 일본 내에서는 한국 투자에 대한 관심이 식고 있다. 박 대통령이 아식스 운동화를 신었다는 것만으로 화제가 되는 상황을 보면 일본 기업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글=채윤경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
일본 기업의 대외 경제 활동을 지원하는 기구다. 한국의 KOTRA와 유사하다. 1958년 일본무역진흥회로 설립돼 98년 아시아경제연구소와 통합, 2003년 10월 일본무역진흥기구로 재출범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