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제25화><「카페」시절>(11)이서구<제자는 필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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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최초의「홈·바」>
「훔·바」라는게 있다. 요즘은 크나큰 저택에 반드시 있는 것으로 돼있다. 술상을 차려 내오라느니…안주가 더 있어야 하느니…부엌에다가 데고 소리를 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숫제 저택 안 응접실 곁방쯤 사설「바」를 차러놓고 손님이 오면 거기서 가벼운 기분으로「바」에서 마시는 식으로 술잔을 나누며 마음도 따라서 가벼워진 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사이 새로 세우는 양옥저택이면 거의가「홈·바」가 마련되는 모양이다. 이것도 물론 외국에서부터 시작된 새로운 사치겠지만 서울에도「홈·바」에서 손님을 위하여 술잔을 드는 일은 드물지 않은 것 같다.
대궐 안에다가 술청을 벌이고 시중에서 어여쁜 기생을 불러 모여 술장사를 시키고 왕이 나아가 그 술을 사 마시는 익살스러운 멋을 부린 일도 있었으니 이조24대왕 헌종때 일이다.
젊고 멋장이로 알려진 헌종은 밤중쯤 되어 심심하면 시중에 나아가 민정을 살피다가 거리의 술집에서 어여쁜 주모가 따르는 술을 한잔 마시고 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서 궁중에다가 목로술청을 벌여놓고 반월이라는 기생을 골라서 주모노릇을 시켰다.
이래서 창덕궁동남쪽「건양재」에는 난데없이 시중의 목로술집이 하나 들어선 것이다. 반월이가 곧 관선주모가 되어 상감마마에게 술을 팔게되니 그런 대로 왕은 시민들이 누리는 술청재미를 맛본 셈이지만-신하들이 좋아할 리 없다. 그래서 이런 노래가 떠돌았다.
『당당홍의 초립 동이
계수나무 농장을 짚고
건양재로 넘나든다.
반달이냐 왼달이냐
네가 무슨 반달이냐
초생달이 반달이지.』
국왕이 서민생활을 해보려고 했다면 그럴 듯도 하지만 한낮 호기심으로 한일이라면 그것은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 다음으로 궁중에 신식「홈-바」가 설치된 곳은 덕수궁이다. 물론 고종 때 일이지만 을미사변(1895년)때 정동 노국 공사관으로 빠져나가 겨우 잔명을 보존한 고종은 여기서 숨을 돌리고 덕수궁으로 환궁했다. 노국 공관에 오래 머무르는 중에 구라파식 풍습을 많이 본 왕은 덕수궁으로 들어가서 서양식 정자하나를 세우니 이것이 곧 정관헌이오, 지금도 덕수궁 동북쪽에 그대로 남아있다.
지금 보면 형편없이 허술한 양관이지만 그때만 해도 양철 지붕조차 희귀했으니 엉성하나마-비록 생철지붕 일망정-왕에게는 새롭고 멋진 놀이터였다. 왕은 돈만 있으면 정묘헌에 나아가 서양식으로 술을 마시기를 즐겨했으며 외국공사가 들어오면 자랑스럽게 이끌어 들였다. 나중에는 한국을 집어 삼키러온 일본의 이등박문과의 과열된 국제회답을 여기서 술잔을 들며 식히기도 했으니「홈·바」치고는 최고급이오 역사적인 곳이다.
왕의 멋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군악대를 만들기도 했다. 우선 독일인「에켈트」라는 장교를 시위연대·군악 대장으로 초빙을 하고 취주악 기를 사들여 붉은빛·초록빛 군복을 입히고 심심하면 어전 연주를 시켰다.
그래서 왕이 정관헌에서 한잔 마실 때는 영만 내리면 앞뜰에서 취주 했으니 군악대장단에 술잔을 기울이는 조선나라 상감마마는 팔자도 늘어졌다고 고종 때 노국 공사를 따라온 노처녀로서 고종의 눈에 들어 정동에다가 외국인이 투숙할 수 있는 서양식 여관을 마련하기에 이르니 그것이 곧「호텔」이요, 주인의 이름을 붙여 손택「호텔」이라 한 것이다. 지금의 양동 이화여고「프라이·홀」자리에 벽돌 등 3층집으로 지어졌었다. 당시에는 자못 진귀한 건물로서 구경꾼이 들끓었다.
손택「호텔」에도 객을 위한「바」가 있었고 이곳에서는 언제나 한국 측 대신들과 외국공사들이 술잔을 나누며 국사를 흥정하던 곳이기도 하다. 더욱이 이조가 마지막 숨을 거둘 무렵에는 매국노로 지목되는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일본인으로 한국통감이 된 이등박문과 나라를 팔고 사는 흥정 역시 이 곳에서 했으니 손택「호텔·바」야 말로 대한제국의 마지막고비에서 역사적 회담장소가 된 것이다.
나라가 망한 뒤 손택「호텔」은 문을 닫고 헐려 얼마 안 가서 이화학당으로 변모를 했지만 이곳만은 자손만대의 기억 속에 남겨두고 싶다.
다시 두 번 이런 따위의 매국모의는 하지 말라는 훈계도 되려니와 어리석고 못난 자들이 왕에게 아부하여 일약 대신이 되고 출세만 하면 일인들의 기밀 비에 눈이 어두워 사복을 채우기 위해 나라를 팔아 넘긴 역사를 두고두고 일러주어야 할 것 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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