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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6)제25화 「카페」시절(8)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예술인 부업 러쉬>
명동에서 다방·「카페」·「바」가 한창일 때 북촌이라고 조용할리는 없었다. 우선 종로 2가 북쪽에 멋진 다방이 문을 열었다. 이름은 「멕시코」. 이 다방은 그야말로 문화인의 사교장이었다. 경영자부터 연극·영화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청년들이니 2층은 그들의 연습실·집합처로 삼고 아래층에는 다방을 차려놓았다. 손님이 없으면 자기들이 손님이 되면 그만 이라는 의젓한 자세였다.
김정환(미술) 심영(연기) 김한(연기) 등 젊은 문화인들이 장삿속이 아닌 장사를 하게되니 우선 다방의 장치부터 새롭고 멋져서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야말로 예술냄새가 난다고 했다.
「멕시코」와는 달리 또 한곳에 문화인이 다방을 꾸미고 친구들을 부르니 그가 곧 영화감독으로 이름 높던 이경손. 다방이름도 이상 야릇한 「카카쥬」.
인사동 길가 돌집의 일부였다. 이경손은 지금 태국에서 살며 고국을 그린다는 소식이다.
그가 왜 남방으로 떠도는 나그네가 됐는지 모를 일이지만 어쩐지 그의 모습이 떠오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필시 서울에서는 살아남기가 역겨운 일이 있었나 해서이다.
이경손이 인사동에 다방을 낼 무렵 연극·영화계에서 한창 이름을 날리던 복혜숙이 같은 인사동에 「비너스」라는 다방에 「카페」를 겸한 장사를 시작했다.
이것은 연예계의 일대 화제가 아닐 수 없었다. 지방공연에서 식비·여비에 너무나 시달린 그는 맹연히 일어나 돈벌이를 해보자는 심산이었는지도 모른다.
『돈벌어 놓고 나서 예술을 하렵니다. 여관비에 몰려서 여배우를 인질로 삼는 기막힌 실정은 대중이 예술을 대접해 주기 전에 밑천이 먼저 든든해야 합니다.』
비장한 결의로써「비너스」의 주인이 된 복혜숙은 그래도 틈틈이 무대로 빠져나가고 경성방송국 「라디오·드라머」에는 빠지는 일이 없었다. 복혜숙과 같은 무렵에 또 한사람, 영화여배우가 다방을 경영한다고 나섰으니 당시에는 인기가 한창이던 김연실이었다. 들리는 소문에는 뒷돈을 대주는 「패턴」이 있다기도 했지만 어쨌든 또 하나의 여배우가 경영하는 다방이 생긴 것이다. 이름은 「낙랑」 장소는 서울시청 남쪽, 소공동입구 2층집. 여기서도 차만 파는 것이 아니라 역시 양주를 내놨다. 그러니까 다방 겸 「바」였다. 소공동 말이 났으니 또 한곳 멋진 다방을 빼놓을 수 없다. 미술가 이순석 교수가 취미 삼아 다방주인이 된 것이다. 이름은 「플라타너스」.
처음엔 김모라는 음악가가 시작한 것을 이 교수가 넘겨 맡은 것인데 내부의 꾸밈새는 그야말로 경성제일. 미술가의 면모가 빛났었다. 내가 극작가 유치진씨를 만난 곳이 바로 「플라타너스」였지만 모이는 손님은 거의가 예술가요 무간한 친구들이라서 한번 자리를 잡으면 좀처럼 일어서지를 않는다. 고요한 음악을 들으며, 시간이 흐르면 어느 틈에 졸음이 오고, 졸다 보니 벽에다가 머리를 대고 눈을 감게된다. 한번 잠이 들면 좀처럼 깨지 않으니, 길고 긴 날 해질 무렵 쯤되면 손님은 모두 벽화와 같이 말이 없었다 .그래서 찻집에서 졸고있는 친구를 벽화라 부르게 된 것이다.
명동에서 종로쪽으로 건너서려면 을지로 네거리를 지나게 된다. 지금의 내무부 서쪽, 큰길가에 우뚝 솟은 3층집이 있었으니 3층을 전부 밥장사·술장사·차장사로 메웠었는데, 이름은 은송정이라 했다.
이 집은 청목당 다음가는 오랜 집으로 낮에는 양식을 팔고 밤에는 미희를 곁들여 술도 팔았다. 내가 양식을 처음 먹어본 곳이 바로 이 집이니 어느덧 50년 옛일이다.
밤에 술을 팔아도 난잡하지 않아서 숙성한 중학생들도 기웃거렸다. 당시의 중학생은 거의가 기혼남자요 요릿집에 가서 기생도 불러서 놀았으니 은송정쯤은 문제가 아니었다. 한창 세찬 개화바람에 늦게나마 머리를 깎고 학교에 들어간 학생들은 거의가 조혼이었고 그만큼 노숙해서 4년제 보통학교 졸업반쯤 되면 자녀가 있어서 제법 애아비인체 자식의 병으로 인하여 의원을 청해 약을 쓰느라고 늦었다고 선생 앞에서 지각한 이유를 버젓이 이야기했으니 요사이 국민학교 아동과는 크게 달랐다. <계속>

<고침>
본난 ⑥⑦회 본문기사 중 「김문집」은 「김문집」으로 바로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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