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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강남 물가의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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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물다가의 법칙" … 강남 프리미엄이 한몫
(一物多價 같은 물건이라도 값이 다르게 매겨진다)

‘싸다~’. 배우 이서진과 이승기가 등장해 마치 이소룡처럼 기합 소리를 내는 한 소셜커머스 업체의 코믹한 TV 광고, 다들 한 번쯤 봤을 거다. 이 광고의 핵심 내용은 ‘싸다’이 한마디에 다 들어 있다. 똑같은 물건과 서비스라면 소비자는 당연히 싼값에 사려고 하니 가격 경쟁력을 광고 전면에 내세운 거다. 그러나 뭐든지 비싼 값이 매겨지는데도, 그걸 몰라서가 아니라 그게 오히려 더 매력적이라며 사람이 몰리는 곳이 있다. 바로 강남이다. 똑같은 식당의 똑같은 메뉴도 강남이 더 비싸다. 같은 공장에서 생산한 약도 강남 약국은 더 비싸게 판다. 심지어 필수품인 음식물 쓰레기봉투 값도 강남구와 서초구 주민은 많게는 다섯 배를 더 내야 한다. 이렇게 뭐든지 더 비싼 강남이지만 강북보다 더 싼 품목도 있다. 대형 냉장고와 스마트 TV 등 일부 고가의 가전제품이다.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강남 물가가 매겨지는 걸까. 강남 물가의 모든 걸 분석했다.

강남, 뭐가 얼마나 더 비싼가

 차돌박이로 유명한 봉산집은 용산구 삼각지에 본점, 그리고 강남구 삼성동·압구정동에 각각 분점이 있다. 본점에선 차돌박이 1인분(140g)이 2만원이다. 하지만 압구정점에 가면 1인분 양은 130g으로 주는데 가격은 2만2000원으로 2000원이 더 비싸다. 삼성점도 1인분(160g)에 2만5000원을 받는다. 이 식당이 유별난 게 아니다. 하동관의 명동 본점에서 1만원 하는 곰탕(보통) 값은 대치동 분점에선 1만3000원이다.

 식당만이 아니다. 똑같은 시간 똑같은 브랜드의 대형마트에서 장을 봐도 강남이냐 아니면 강북에 있느냐에 따라 가격 차가 있다. 예컨대 이마트 창동점(도봉구)에서 약 2㎏짜리 배추 한 포기는 1980원인데, 같은 시간 역삼점에선 1.5㎏에 2100원을 받는다.

 서비스 이용료는 가격 차가 더 벌어진다. 강남·북에 모두 체인을 둔 한 유명 미용실(이가자 헤어비스)을 예로 들면 노원역점에선 기본 커트가 1만7500원이지만 청담 본점에서는 많게는 8만5000원까지 내야 한다. 파마(볼륨매직) 값은 노원점 최고가가 15만원인 데 비해 청담 본점은 제일 싼 게 33만원이다.

 케이블 TV 이용 가격도 다르다. 똑같은 케이블 회사(C&M)가 운영하지만 강남구에선 SD상품이 1만7000원, 그 밖의 지역은 1만3000원이다. 티브로드가 관할하는 강북의 10개 자치구에선 1만1000원이면 이용할 수 있다.

  심지어 공산품도 가격 차가 있다. 특히 유명 프랜차이즈는 어디나 다 똑같은 값을 받는 정가제일 것 같지만 각 점포가 가격을 자율로 정하는 경우가 많다. 빵이 대표적이다.

 대형 프랜차이즈 베이커리(파리바게뜨)의 단팥빵(94g)이 창동에선 1000원, 역삼동에선 1400원이다. 본사에서 권장 가격을 내놓기는 하지만 각 가맹점 자율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일반의약품도 점포마다 가격이 다르다. 한 간기능개선제(우루사·120캡슐)를 창동역 근처 S약국에서 산다면 2만3000원만 주면 되지만, 선릉역 W약국에선 3만8000원을 내야 한다. 이 역시 정부에서 약국 자율에 맡겨둔 제도 때문이다.

비싼 데는 이유가 있다?

 그렇다면 강남만 유독 왜 이렇게 비싼 걸까.

 봉산집 삼성점의 김세권 사장은 손님 성향이 서로 다른 데서 이유를 찾았다. 그는 “강남은 가족 단위로 많이 오기 때문에 재료를 좋은 걸 써야 한다”며 “좋은 재료로 맛있게 만들었다면 가격이 좀 비싸도 먹지만 아무리 싸도 저가 수입산 음식은 찾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강북은 회식을 하는 회사원 손님이 많기 때문에 재료 질보다 가격에 훨씬 민감하다”고 말했다. 강남은 품질, 강북은 가격을 우선시하는 탓에 강남 음식점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얘기다.

 또 다른 유명 식당의 강남 분점을 하는 식당의 관계자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강북 본점에선 수입육도 쓰지만 우리는 한우만 쓴다”며 강남에선 고기 품질이 떨어지면 금방 알아채고 손님이 떨어지지만 거꾸로 강북은 가격을 올리면 손님이 금세 준다”고 말했다.

 아무리 똑같은 식당 메뉴라도 강남의 재료와 품질이 더 좋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서비스에 대한 가격 차가 벌어지는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청담동의 유명 미용실에서 근무하는 한 미용사는 “같은 청담동 미용실 안에서도 커팅을 원장이 하느냐 A급 디자이너가 하느냐 등에 따라 가격이 크게 다르다”며 “비싼 디자이너는 대개 강남에 몰려 있다”고 말했다. 강남이라서 더 받는 게 아니라 강남에 더 실력 있는 디자이너가 많다 보니 자연히 더 비싼 값을 받는 것이란 얘기다. 또 사용하는 제품이 차이가 난다는 주장도 한다. 또 다른 미용사는 “약품이 다르다”며 “강남에서는 트리트먼트를 할 때 500mL에 30만원 하는 프랑스 제품을 쓴다면 강북에서는 1000mL에 5만~6만원대 일본 제품을 쓴다”고 말했다.

 품질 차이는 사실 소비자가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설명은 땅값 차이다. 명동 등 일부 상권을 제외하고는 강남 지역 땅값이 대체로 강북보다 비싸기 때문이다.

 중구 다동에 본점, 그리고 논현동에 지점이 있는 남포면옥은 본점에선 어복쟁반(특)이 6만8000원이지만 논현 지점에서는 어복쟁반(대) 하나에 8만2000원을 받는다.

 이 식당 관계자는 “강북 본점 자리는 식당 소유라 임대료를 내지 않아도 되지만 강남 분점은 매월 수백만원씩 임대료를 내야 한다”며 “강남이 특별히 손님이 더 많지도 않아 같은 메뉴라도 조금씩 더 받지 않으면 장사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약값이 다른 것도 이와 비슷한 이유로 보기도 한다. 박지혜 보건복지부 약무정책과 사무관은 “약국 위치와 규모, 의약품 특성, 공급 단가 등 여러 가지 제반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땅값 비싼 곳에 있는 약국의 약이 비쌀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인건비도 영향을 끼치는 요소로 지목된다. 서울시가 한국노동사회연구소와 함께 분석한 결과 강남구의 아르바이트 평균 시급은 5757원으로 도봉구(5372원)보다 400원 가까이 비쌌다. 한 음식점 관계자는 “강남·북 종업원의 월급 차가 최소 10만원”이라며 “이미 10여 년 전 강북 종업원 인건비가 월 120만~130만원이라면 강남에서는 150만원이었다”고 말했다.

강남, 더 싼 것도 있는데

 그러나 강남이라고 모든 게 다 비싼 건 아니다. 가령 백화점은 압구정동 한복판에 있든 미아동에 있든 값이 똑같았다. 또 치킨이나 피자 등 프랜차이즈 배달집과 패스트푸드 역시 강남북 가격 차이가 없이 똑같다. 중구 장충동과 논현동 등 강남·북에 각각 식당이 있는 평양면옥 역시 강남·북 가격 차가 없다. 땅값과 인건비가 가격을 결정짓는 주요 요소라면 이들 업체 역시 강남·북 지점 가격이 달라야 하지만 말이다.

 이에 대해 강북의 한 음식점 관계자는 “외국 관광객이 변수”라는 주장을 했다. 원래 강북 지역에서는 설렁탕이나 냉면 한 그릇은 1만원을 넘으면 안 된다는 암묵적 마지노선이 줄곧 지켜져 왔다고 한다. 이 선을 넘으면 손님이 오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는 거다. 그러나 일본 관광객의 대거 유입을 계기로 일본어 관광 가이드북에 소개된 유명 음식점은 강북에서도 1만원을 넘겨 받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강북에서 강남과 똑같은 값을 받을 수 있는 배짱 좋은 식당은 몇 군데 안 된다”고 말했다.

 대형 가전제품 등 일부 제품은 오히려 강남이 더 싸기도 하다. 하이마트에서 판매하는 901L짜리 4도어 삼성 지펠 냉장고의 정가는 459만원이다. 그러나 압구정점에서 실제 판매하는 가격은 319만원으로, 동대문점(365만5000원)보다 더 싸다. 그러나 비슷한 크기의 LG디오스 5도어 냉장고는 압구정점의 실제 판매가가 40만원 가까이 더 비싸다.

가격, 어떻게 결정하나

 가격은 여러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원가가 높아지면 가격이 올라가기 마련이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남준우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격 탄력성으로 강남·북 물가 구조를 설명했다. 남 교수는 “가격 탄력성이 큰 지역은 가격을 조금만 올려도 수요가 급격히 줄고 탄력성이 작으면 별다른 변화가 없다”며 “소득 높은 강남에선 가격 탄력성이 적기 때문에 비싼 가격을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도 일물다가(一物多價)의 법칙을 들어 두 지역에서 완전히 똑같은 서비스 비용이 다른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설령 두 지역에서 완전히 똑같은 서비스를 받는다 해도 청담동에서 머리를 했다는 만족감의 가치, 즉 청담동이라는 무형의 재화가 덧붙여지기 때문에 가격이 비싼 게 당연하다”며 “그건 프랑스 몽마르트르 언덕 카페와 남대문시장 커피숍에서 똑같은 원액의 아메리카노 커피를 마셔도 다른 가격을 지불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실제로 청담동의 한 미용실 관계자도 심리적인 마케팅 요인이 가격에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그는 “유명 연예인이나 결혼식을 앞둔 여성 등 최상급의 손질이 필요한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가격이 중요하지 않다”며 “오히려 가격을 내려 손님이 늘면 VIP 고객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이들을 따라온 사람도 따라서 다 빠져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품질과 가격 간의 관계는 어떨까.

 실제로 품질이 좋은 게 관건이 아니라, 고객으로 하여금 품질이 좋을 것이라고 느끼게 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범상규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도 있듯이 흔히 사람들은 비싸면 비싼 값을 한다는 인식을 한다”며 “강남에서 비싸게 받으면 재료든 뭐든 뭔가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을 당연하게 한다”고 말했다.

쓰레기봉투 등 선택 불가 제품 비싼 데 대해 불만

 그러나 이런 데서 비껴가는 품목도 있다. 음식물쓰레기봉투나 케이블TV 이용료처럼 그 지역에 살기 때문에 다른 대안 없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것들이다.

 케이블TV(C&M) 가격은 강남구가 상품별로 월 사용료가 가장 비쌌다. 모 케이블 방송사 관계자는 “다른 자치구는 다양한 케이블 업체가 진출한 반면 강남구는 C&M 외에 다른 업체가 없기 때문”이라며 “독과점이니 비싸게 값을 매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C&M 측은 “강남은 교통량이 많아 차가 막히다 보니 설치기사들이 이동하는 데 다른 지역보다 오래 걸린다”며 “원가가 더 들어가는 셈이라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확인 결과 경쟁업체 없이 한 개 업체가 서비스하는 자치구는 강남구 포함 모두 18개다.

서울시 행정 실패라는 지적도

 각 자치구는 그 구의 음식물 쓰레기봉투만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지역구마다 가격 차가 크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에 따르면 서울에서 가장 비싼 강남구는 10L 봉투가 800원이다. 반면 서대문구와 관악구는 170원이다.

강남구 청소행정과 관계자는 “자치구마다 음식물종량제를 전면도입한 시기나 처리시설 유무에 따른 운반비용이 다르기 때문”이라며 “강남구는 전면도입을 올 6월부터 시작하면서 봉투가격도 현재 물가 및 처리비용에 맞추다보니 다른 구보다 높다”고 말했다. 강남구의 절반 수준인 마포구는 2000년에 음식물쓰레기 종량제를 도입하면서 그 때 책정했던 봉투가격을 현재까지 고수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도 “일부 자치구는 음식물 쓰레기봉투가격이 지나치게 낮은 상황이기 때문에 현실화해야하지만 주민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은평구도 L당 50원을 올리려다가 실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공공요금에 가까운 음식물쓰레기봉투의 가격 차는 서울시의 행정 실패라는 지적도 있다. 일례로 지역구마다 최대 4배의 가격 차가 났던 부산시는 지난달부터 음식물쓰레기봉투 가격을 통일했다. 부산시가 지난해 4월부터 구청장·군수 회의 및 구별 재정조사 등을 거쳐 가격 단일화를 추진해 성사시켰다.

 박순애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부산시는 재정 여건이 열악한 자치구 부담을 줄이는 방식으로 주민들의 행정만족도가 올랐다”며 “서울시가 기본적 공공서비스에 대한 과금이나 요금 문제를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유성운·심영주·조한대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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