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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년 전 러시아 지배하던 『시디아』족 유적 발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시디아」(스키타이)인의 유적이 최근 소련고고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발굴단에 의해 새로 발굴되었다. 2천년 전 「러시아」중심부를 지배하던 「시디아」부족의 유물발굴은 그동안 전통적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이들의 용맹성과 잔혹성을 다시 상기시켜 주고있다.
소련고고학자들은 오랫동안 남「우크라이나」의 「오르조니키드제」마을을 둘러싼 거대한 산악지대 때문에 발굴계획을 세우지 못했었다. 그러나 소련정부가 「망간」산지로서 이 지역개발에 눈을 돌리자 고고학자들도 용기를 얻고 발굴에 나섰던 것. 그 결과는 기대이상이었다. 50년전에 첫 발굴자들은 「시디아」족의 약탈되지 않은 왕묘를 파헤쳤다. 「시디아」인은 타 종족과의 결혼 및 피정복에 의해 BC 2세기에 이 초원지역에서 멸종될 때까지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전장에서의 이들의 잔혹성과 막대한 황금노획에 대한 전설은 끝이 없었다. 「그리스」사가 「헤로드토스」도 「시디아」에 관해 상당히 많은 분량을 기록했었다.
이 「시디아」인에 관한 기록들은 거의 믿어지지 않으며 학자들이 전설 속의 구실을 어느 정도 인정하게된 19세기이후에 비로소 고고학자들은 중국과의 국경지대에서 「드니에스터」 해안에 이르는 지역에서 널리 발견된 유적들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를 하게 된 것이다.
최근의 발굴 유물들과 같이 왕과 왕후, 그리고 한 어린이의 유골을 포함한 왕묘의 발견은 이 전설을 사실로서 입증해 주고있다.
예를 들어 「헤로도토스」는 「시디아」인이 쓰러진 적의 머리를 베어 술잔으로 사용하기 위해 주거지로 가져간데 대해 기록했었다.
젊은 서독여성으로 1920년이래 처음 소련의 이번 발굴에 참여할 수 있었던 서방학자인 고고학자 「레나테·롤레」는 「시디아」인의 잔혹성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보고 하고있다.
무덤에서 발견된 창과 활과 화살가운데는 여인들의 두개골과 장식들이 있는데 이것은 「시디아」여인들이 그들의 남성들과 함께 전투에 참가했음을 상상케 한다.
따라서 피에 굶주린 「시디아」여걸들은 결혼에 앞서 전투에서 남자를 죽여야만 했다고 한 「헤로도토스」의 얘기는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시디아」인이 언제나 전쟁에 골몰한 것은 아니었다. 중국과 몽고부근 「알타이」산맥의 「시디아」인 무덤들에서 발견된 고대 동제그릇들은 유목민족들이 즐기던 삼씨의 찌꺼기를 담고있다.
이들은 우수한 목축인이고 농업인이었는데 이들의 수확을 값비싼 귀금속류와 교역하곤 했다. 「우크라이나」에서 새로 발견된 무덤에서 나온 장려한 금제 가슴받이 장식도 그런 것이다.
흑해지역의 「시디아」사람사이에서 살던 「그리스」금세공업자가 만든 이 가슴장식에는 44개의 정교하게 조각된 동물이 있다. 이 동물 중에는 독수리의 머리·날개·앞발과 사자의 몸을 가진 환상적 괴물도 있다.
「이집트」의 「파라오」같이 「시디아」지배자는 세계의 보물을 모두 가진 것으로 믿었다. 이들의 무덤들은 자기 옷에 장식했던 목걸이·반지·금「브로치」뿐 아니라 충실한 신하들의 유물이나 가구류·말들도 포함돼있다.
어떤 곳에는 몸치장이 또한 두개골과 손가락이 나왔는데 땅을 움켜잡고 있는 모습이다. 이것은 내세에서 주인을 시중하기 위해 강제로 산채 매장된 신하들에 관한 「헤로도토스」의 주장을 입증하는 것이다.
고고학자들은 또 추운 「알타이」지역 무덤들에서 「시디아」인이 적들의 머리가죽을 벗긴 흔적을 발견했는데 전리품들은 어떤 복수심에서 매장되지는 않았다. 그들의 희생자들에게 가죽 없는 내세의 모욕을 없애기 위해 「시디아」사람들은 고통스럽게도 거기에 머리카락을 다시 꿰매 달았던 것이다. <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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