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청춘이 더 원하는 힐링…'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는 위로

중앙일보

입력

여준영 대표가 영화 DVD로 가득찬 사무실 벽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박종근 기자

방황하는 청춘에게 필요한 건 뭘까. 마음을 어루만지는 위로와 격려일까, 따끔한 질책일까.

“그런 건 어쩌면 살 만한 사람들한테나 필요할 뿐, 정말 먹고 살기 힘겹고 미래가 막막한 청춘들에게는 도움이 안될 지도 몰라요. 그보다는 자신처럼 막막한 또 다른 청춘을 보면서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하고 느끼는 게 더 위로가 되지 않을까요.”

14일 개봉하는 영화 ‘잉투기’ 마케팅을 맡고 있는 프레인글로벌 여준영(43) 대표의 말이다. 잉투기는 ‘잉여들의 격투기’를 줄인말.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이다. 스타 배우 없는 저예산 독립영화. 어려운 환경에서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청춘들이 ‘현피 뜨는’ 얘기다. 온라인에서 말싸움을 시작한 이들이 현실에서 주먹다짐을 벌이는 걸 요즘 사람들은 ‘현피 뜬다’고 한다. 결론은 없다. 교훈도 없다. 영화를 본 사람들의 평가도 엇갈린다. 하지만 여 대표는 이 영화를 더 많은 청춘들이 봤으면 좋겠단다. 수익이 날 때까지는 마케팅비도 안받기로 했다.

“지나간 제 청춘이 그랬습니다. 돈도 없고, 빽도 없고, 앞으로 되고 싶은 것도 없고, 사회정의 같은 거창한 명제에도 관심 없고, 그냥 될 대로 되라며 살았어요.”

고1때 아버지 사업의 부도로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혼자 밥 먹고, 학교 가고, 밤에는 하숙집 대학생 형이랑 술을 마셨다. 그러다 문득 공부까지 못하면 정말 난 아무것도 아니겠다 싶어 공부를 시작했고, 연세대에 합격했다. 대학 내내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 하며 학비, 생활비를 벌었다. 직장 생활 5년 후인 2000년 광고·홍보대행사 ‘프레인’을 창업했다. 경마장 돌을 줍는 일로 월급 18만원을 받고 있던 친구를 첫번째 직원으로 들였다. 지금 프레인은 직원 수 150여명, 매출규모 190억원의 국내 1위 홍보업체로 성장했다. 2년 전 영화 배급·마케팅과 연예인 매니지먼트를 하는 사업부문 TPC도 시작했다. 배우 류승룡·김무열, 감독 양익준, 아나운서 오상진·문지애 등이 속해있다. 무명 신인들도 적지 않다.

TPC는 Talented People Caring의 약자로 우리말로 하자면 '재능있는 사람들을 돌보는 회사'. 배우가 ‘갑’이고 회사가 ‘을’이다. 계약서에 그렇게 써있다. 배우가 돈을 못 벌어도 회사가 월급을 준다. “잘 나가는 배우들도 있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잖아요. 배우라는 직업은 땡전 한푼 없다가도 어느날 갑자기 하루에 일년치 수입을 올릴 수도 있어요. 당장 돈이 없다는 이유로 ‘후지게’ 살지 않도록 생활에 필요한 돈을 월급 형식으로 지원합니다. ‘후지지 않게’ 살면 결국엔 볕들 날이 옵니다.” 영화 '잉투기'가 남의 일 같지 않아 독립영화 마케팅을 맡고 나섰다는 그가 얘기하는 '인생론'이다.

박혜민 기자 acirfa@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