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 조기 공천 법제화가 매니페스토 정착 지름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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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쟁에서 벗어나 정책 중심의 선거가 이뤄지기 위해선 각 정당이 후보자를 일찍 결정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중앙일보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후원으로 한국정당학회(회장 손병권 중앙대 교수)가 8일 주최한 ‘2014 지방선거와 매니페스토: 현실 진단과 이행평가’ 학술대회에서다. 대회에 참석한 정치학자들은 “실현 가능한 공약을 토대로 공직자를 뽑자는 취지에서 2006년 도입된 매니페스토(Manifesto) 운동은 아직 걸음마 단계로, 이를 정착시키려면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선출 늦어지면 정책 준비 시간 부족

 매니페스토란 후보자가 내세운 공약의 목표, 이행 가능성, 예산 확보의 구체적 근거 등을 제시함으로써 유권자의 선택을 받고 당선되면 이를 이행하도록 하는 선거 공약을 말한다. 1997년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가 공약에 대한 구체적인 일정과 예산을 명시한 매니페스토를 전면에 내세워 총선에서 승리함으로써 18년 만에 정권을 되찾아 화제가 됐다. 국내에선 2006년 지방선거 때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매니페스토 운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매니페스토에 대한 인지도가 2010년 40%대에서 지난해 20%대로 낮아지는 등 호응이 떨어지고 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의 올해 평가에 따르면 임기가 끝나가는 민선 5기 시·도지사의 공약 이행 정도는 100점 만점에 47.1점 수준이다.

 발제를 맡은 명지대 윤종빈 교수는 “정당의 후보 선출이 늦어지면서 후보자가 유권자들에게 제시할 매니페스토 정책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며 “당내 후보 공천이 정치적 역학구조와 당내 갈등으로 지연되는 상황이 반복돼 민주주의를 퇴보시킨다”고 지적했다. 해법으로는 “당내 후보 선출 시기를 법제화해 시기를 지키지 않을 경우 후보 등록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한 못 지킬 경우 후보 등록 못 하게

 ‘2014 지방선거와 매니페스토 선거 활성화 방안’을 주제로 발제한 신라대 이동윤 교수도 “각 정당의 공직후보 공천 시기를 앞당겨 후보 등록과 더불어 선거공약서 제출과 공포를 의무화해야 한다”며 “정책공약을 통한 선거 경쟁이 이뤄지기 위해선 후보자의 선거공약서 제출과 정책토론회 참석도 의무조항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자들도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제도화를 추진한다는 측면에서 후보 선출 시기를 모든 정당에 강제해야 한다”(동국대 박명호 교수), “선거 임박한 후보 공천→정책 개발 한계→부실 정책 양산→인물이나 네거티브 선거 전략이라는 악순환을 끊으려면 후보자 조기 공천을 제도화해야 한다”(동의대 전용주 교수)며 호응했다.

매니페스토, 다양한 주체 연계해야

 선관위는 ‘유권자 주도의 한국형 매니페스토 사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기화 정당과장은 “과거 독자적으로 진행된 매니페스토 운동을 정당·후보자, 시민단체와 학계, 언론사 등 다양한 참여 주체가 연계하는 형태로 전환해야 한다”며 “컨소시엄을 통한 매니페스토 추진사업 공모와 지원, 언론과 연계한 기획 보도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터넷보도심의위원회 양금석 상임위원도 “유권자가 원하는 적극 관심 분야를 중심으로 매니페스토를 추진하고 이를 소홀히 하거나 무시하는 정당이나 후보자를 평가하고 심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권호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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