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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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초기 가수들의 인기측정은 물론 박수의 많고 적음이었으나 기생전성시대인 1930년대 초에는 기생들의 인력거가 가수들의 인기를 측정하고 있었다.
이 무렵 평오등 큰 도시에 가서 공연을 할때면 극장 뒷문에는 으레 몇대의 인력거가 대기하는 것이었다.
이 인력거는 기생들이 인기가수를 초대, 자기를 돋 보이게 하기위해 보내는 것이었다. 공연이 끝난뒤 『저에게 놀러 오십시오』하여 초청하는 것이니 인력거에 올라타기만하면 인력거를 보낸 기생을 상대로 하나에서 열까지가 무료로 「융숭한」대접을 받는 것이었다.
내가 『타향살이』『짝사랑』 등을 불러 인기가 오를 무렵에는 극장뒷문에서 나를 데려가겠다고 기다리는 인력거가 밀려 그야말로 흐뭇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OK연주단의 이철은 이같은 모습을 몹시 싫어해서 공연이 끝나면 인원을 점검하여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는 감금하다시피 집어넣는 것이었다.
김룡환이『처녀총각』을 작곡하고 노래하여 크게 유행했을때의 일이었다. 한번은 지금의 국립극장인 명치좌에서 공연을 했는데 나와보니 인력거가 열 댓대나 기다리고 있었다.
겨울 추운날이었는데도 인력거 꾼들은「기생아씨」의 본부대로 김룡환을 모셔가려고 기다린 것이었다. 그는 어느 인력거의 신세를 질까하고 망설이다가 그 열댓대나되는 인력거를 다 놓친 일도 있었다.
이렇게 많은 인력거가 한사람을 데려오라고 하여 경쟁이 벌어질때는 기생방에서는 술내기를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즉 기생들끼리 『언니가 그 사람을 모셔 오기만 하면 내가 한턱 낼테야, 대신 못데려 오면 언니가 한턱 야돼』하는 식이었고, 웬만한 명기는 『그 가수쯤 내가 오라는데 안와』하는 자부심이 대단했었다.
당시 부대에 서는 가수들은 멋쟁이의 대가들이었다.
구두는 그때 돈 20원이나 하는 철피구두에 연미복을 입고 환갑장에 가슴이 부풀어 보이는 주름이진 「와이샤스」차림으로 나서는 것이었다.
관중석에서는 우선 박수가 터진 다음에 야유가 들어오는 것이었다.
1931년에 북간도의 용정에서 공연했을때였다. 『타향살이』를 불렀다. 공연장에서는 고향 그리워 우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그날밤 여관방으로어떤 부인이 찾아온 것이었다.
고향이 부산이라고 했다고 그녀는 얼마전 남편을 잃고 어린애를 데리고 있는데 어쩌면 『타향살이』의 가사가 내신세와 같으냐면서 막 울었다. 그런데 이튿날아침 소식을 들으니 그 여인이 그날밤 음독자살했다는 것이었다. 이 여인의 자살사건은 간도신문에 보도되었는데 제목에 「고복수의 향수에 젖은 타향살이 노래를 듣고 자살」로 돼있었다.
이 사건이 있은 뒤 부터 내가 무대에 서면 『또 누굴 죽이느냐』고야유와 환호가 섞인 고함이 튀어나으곤 했다.
함북웅기공연에서 내가 처음으로 짝사랑을 불렀을때는 박영자라는 여인이 미친일이 있다.『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하는 구슬픈 노래를 듣고 요정의 여급이던 박영자가 미친 것이었다.
그때는 노래만 부르고 왔으며 여자가 미쳤다는 일은 몰랐는데 동료들이 박영자가 미쳤다는 소식을 듣고 나에게 『깊은 관계가 있었느냐』고 따지기도 했다. 그 다음 공연때 가보니 박영자는 병을 고쳐준다는 한의사와 잘 살고 있었다.
훨씬 뒤의 일인데 OK에 남인수·김정구·송우협등 가요 3명이 같이있을때였다.
맨 먼저 송이 노래하고 두번째가 김, 남인수는 늘 맨 나중에 노래부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박수가 항상 김정구와 남인수쪽에 기우는 것이었다.
송달협은 1936년께 평화방송국「쿵쿠르」에서 당선, 등장한 가수로 구수한 목소리로 노래를 잘 불렀으나 의외로 인기척도인 박수가 늘적었던 것이었다.
나란히 노래를 불러도 3사람은「라이벌」이었다. 박수가 적어서 늘 섭섭히 생각해온 송달협이 평양공연때는 박수를 쳐달라고 읍소(읍소)한일이 있었다. 38년쯤인데 평양금간대좌에서 공연할때 송달협은 머리에 붕대롤 칭칭 감고 나왔다.
사회자가 『지금 공연장에 오는길에 송달협이 자등차 사고로 머리를 다쳤소. 위급해서 못 나올 형편이지만 관중 여러분을 위해왔으니 박수로 맞아 주시으』한 것이었다. 정말 붕대를 감은 송달협이 나오니 우레같은 박수가 터진것이었다.
송달협은 40년께 대구공연을 마친뒤 행방이 묘연해지고 사망했다고만 알려졌다.
무용가인 그의 부인 황종안씨와 딸 송영난양은「팝송」가수로 동남아순회증 지금「오끼나와」에 있다는 소식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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