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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파」로 옮겨진 중-소 이념 투쟁|르·몽드지=본사특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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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소련과 중공은 제각기 인도와 「파키스탄」을 매개로 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들이 서로 상대방을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배신자라고 헐뜯으며 이념 분쟁을 일삼는 때는 이미 지났다. 「교조주의」니 「현대 수정주의」니 하는 논쟁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이 현재 인-「파」전에서 노리는 것은 무엇인가.
소련이 「이데올로기」적인 이론 투쟁에 전심 전력하지 않은지는 이미 오래고, 단지 지도층의 정책을 사후에 정당화하는 작업이 고작이었다.
「스탈린」이나 「주다노프」 시대에 있어 「이데올로기」의 공식은 지극히 간단 명료한 것이었다.
공산주의 진영 밖으로 나가면 「부패」만 있을 뿐이란 식이다.
모스크바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면 어떠한 좌익 정권이나 운동도 『객관적으로는』 모두 「제국주의」에 봉사하는 것으로 낙인 찍혔다.
그러다가 1956년의 소련 공산당의 20차 당 대회에 이르러 이런 도식에는 중대한 수정이 가해졌다. 즉 동서 두 진영 사이에는 비동맹국들이란 것이 있으며 자주 독립을 지향하는 나라들이 있다는 사실이 인정된 것이다.
그후 소련 지도층은 「아시아」에 눈을 돌려 인·소 협조를 이룩하고 65년엔 코시긴이 인도·파키스탄 전쟁의 휴전을 중재하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소련은 인도를 더 편애한게 사실이다. 그 당시 인도는 중공과 냉랭한 상태에 있었다. 「파키스탄」에 대해서는 단지 미국과 「파키스탄」간의 조약 관계와 중공의 지원을 규탄하지만 않았을 뿐이다.
그러자 문혁 직전 중공은 새로운 이념 분쟁을 걸어왔다.
임표의 『도시와 농촌간의 계급 투쟁』론이 그것이다.
일부 공업국이 바로 세계의 도시권이며 이들의 주위에는 저개발국들 즉 세계의 농촌지역이 둘러싸고 있다는 것, 혁명은 모름지기 이 농촌의 각성과 투쟁을 고취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소련은 이미 도시권으로 넘어가 배신자가 돼 버렸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래서 중공은 심지어는 유엔에 항거하는 신생국회의를 만들겠다고까지 스스로의 아집 속에 기어들었다.
그러나 오늘날 인·「파」 전쟁을 두고 볼 때 임의 주장은 전연 빗나간 것임이 드러났다. 소위 「해방 운동」을 지원한다고 자처하는 중공은 동「파키스탄」의 반란 측을 지지하지는 않을 것인지?
더구나 「뱅글라데쉬」 운동 내부에는 모택동주의 분파도 섞여 있지 않은가.
그러나 중공은 이 분파를 저버리고 「유엔」에서도 「파키스탄」의 『정당한 투쟁』을 지지하라고 주장한 것이다.
서방국들이 모두 인·「파」 양국의 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애쓰는데 반해 소련과 중공은 제각기 인도와 「파키스탄」을 편드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동「파키스탄」에 대한 「야햐·칸」 정부의 잔학 행위야말로 사태의 진짜 원인이라는 것이 소련의 주장이요 변명이다. 한편 중공은 인도의 침략 행위가 규탄 받아야 마땅하다고 맞서 입씨름은 끝나지 않는다.
인·「파」 전쟁은 실상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소·중공간의 이념 분쟁의 부산물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공으로서는 승리할 공산이 제일 적은 「파트너」를 도와주고 있는 모험을 하고 있다. 게다가 동「파」 해방 운동 내부의 모 주의자들의 지지를 잃게 되었다.
그러나 중공은 현재 양수겸장을 노리는 듯 하다. 즉 「파」가 이기면 그만큼 그 지역에 뿌리를 강하게 박는 것이 되고, 지더라도 인도라는 「도시」에 대항하는 「농촌」기지 동「파키스탄」이 생기기 때문에 나쁠께 없다는 식이다.
소련으로서는 제3세계의 모든 나라들의 환심을 사는 일엔 더 이상 기대를 걸지 않는 것 같다.
단지 브레즈네프의 「아시아」 안보 회의론에 관심을 보인 아시아의 대국 인도를 지원하는 것으로 우선 머무르는 것 같았다.
어쨌든 소·중공은 인-「파」전에 직접 개입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이 기회를 이용해 서로 「아시아」에 자기 뿌리를 내리려고 계속 경쟁할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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