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광로 식」수뢰처리|40일간 수사와 3천여 만원의 행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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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농어촌개발공사 부정사건 수사는 전 수협중앙회장 박상길씨를 구속한데 이은 부정부패 소탕의 본보기 수사였다. 감사원의 고발로 이사건의 수사에 나선 대검 김성기 부장검사는 지난 11월1일부터 장장 40여 일에 걸친 끈질긴 수사로 전 농어촌개발공사 총재 차균희씨에 대한 대규모 뇌물수수혐의를 잡기에 이르렀다.
차씨가 수사관들에 의해 모「호텔」로 연행된 것은 10일하오 7시30분쯤-. 한시간 가량의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그가 피운 담배는 10여 개비, 처음엔 짐짓 태연한 표정이었으나 심문이 날카로와지면서 이마의 땀을 씻기에 어쩔 줄 몰랐다. 이 수사를 통해 나타난 그의 수뢰수법은 가위 지능적이었다는 수사관들의 말.
검찰조사에 의하면 차씨는 먼저 산하 자회사나 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으면 그 즉시 J은행 영업부 간부로 있는 친척 정모씨를 통해 그 돈을 가공인물명의로 10여 차례씩 넣었다가 빼어 돌리는 이른바 「용광로」식 처리방법을 사용했다는 것.
「용광로」식 처리법이란. 가령 액면 1백 만원의 수표를 A라는 허무인 명의로 입금시킨 뒤 며칠 뒤 20, 30만원 등으로 나누어 현금으로 인출, 곧 B명의의 구좌에 세분해서 입금, 다시 인출…이런 식으로 10여명의 가공인명의 구좌에 넣고 빼고 하면 덩어리돈이 녹아내려 안전하게 보관된다는 것이다.
검찰조사결과 차씨는 수사 반을 속이기 위해 현금 중 일부를 멀리 김포농협에 가공인 명의로 입금시키는 등 세심한 주의까지 했다는 것이다.
검찰의 정보에 의하면 차씨는 현재 밝혀진 3천3백90만원의 뇌물 이외에도 자회사인 경북개발에 밤나무 묘목을 불하해주겠다고 업자로부터 50만원을, 감열에 있는 김모씨 소유의 들산(시가 3천45만월)을 2천5백 만원에 염가로 매입, 그 댓가로 김씨에게 홀치기 원단자금 2천5백 만원을 융자해준 뒤 다시 그중 5백50여 만원을 수뢰한 것 등 갖가지 혐의를 받고있으며 알려진 수뢰 수만도 무려 20여건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수사관은 그가 재직시 돈을 어찌나 좋아했는지는 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을 경우 현금이나 보증수표가 없다고 하면 당좌수표로 이른바 「외상뇌물」을 받아썼으며 어느 업자로부터 뇌물로 받은 1천 만원 짜리 당좌수표 3장은 부도가 나는 바람에 찾아 쓰지 못할 정도였다고 했다.
그 동안의 조사결과 차씨의 개인 재산만도 10여억 원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억여 원의 예금을 비롯 평택근교의 목장, 김포일대의 54만 정보 규모의 농지, 경기도 광주군 대왕면 일대의 임야 16만평, 서을 성북동의 대지 6백여 평과 2개회사에 투자한 억대 가까운 자금등 대부분의 부동산은 형의 명의로 등기해놓기도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번 사전수사결과 「농어민복지향상」이란 취지로 설립된 동공사가 4년 동안 약 1백억 원의 정부자금을 받아쓰면서 대부분 간부급들이「갈라 먹기식」으로 운영, 자회사가 적자에 허덕이고 있었으며 정부의 민영화 방침에 따라 재산평가를 한 결과는 불과 10여억 원의 껍데기 공사로 둔갑해 있었다고 전했다.
검찰은 정부의 방침에 따라 이 사건을 철저히 수사, 부정부패에 철퇴를 내리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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