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 20일…「비상사태」선언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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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6일 발표된 국가비상사태선언은 오래 전부터 갖고있던 박정희 대통령의 확고한 시국 및 전략판단에 입각하여 20일간의 엄밀한 검토 끝에 공표 되었다.
비상사태선언의 골격은 김종필 국무총리, 김용식 외무, 유재흥 국방,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등 극히 제한된 국가안보회의 「멤버」들과의 협의를 거쳐 다듬어 졌는데 매주 수요일의 정례회의외에 최근에는 수시로 만나 협의를 거듭했다는 것.
박대통령은 『금년 겨울이 우리의 안보에 가장 큰 고비』라고 평소에 강조해왔기 때문에 정부안에는 12월중에 모종비상조치가 취해지리라는 추측이 파다했었고….
이날 아침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국가안보회의 합동회의는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그동안 다듬은 비상사태선언을 국무위원전원의 이름으로 제안 의결했다.
이 시간 김용식 외무장관은 주한외교사절을 차례로 불러 영역된 선언과 담화문을 나누어주고 설명.
비상사태선언전후 정부와 여당의 수뇌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일요일인 5일 낮 삼청동 총리공관에서는 김종필 총리 주재로 김용식 외무·김현옥 내무·유재흥 국방·윤주영 문공·이병희 무임소장관 등이 모였으며, 하오에는 장소를 옮겨 비공개협의를 거듭했다.
이 시간 태릉「골프」장에서는 길전식 공화당사무총장주최로 정부·여당 친선「골프」대회가 열렸으나 당쪽에서만 백남억 당의장 등 당5역과 당무위원·총무단·국회상임위원장들이 참석했을 뿐 정부 쪽에서는 일부경제각료뿐 대부분의 장관들이 불참했다.
백 의장은 빗나간 공이 물에 빠지자 『어수선하니까 공도 잘 안 맞는군』라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으로 미루어 정부는 선언 이후 이를 구체적으로 옮길 시책에 관한 「스터디」는 끝낸 것 같다.
비상사태선언에 대한 최종적인 협의는 지난 3일 밤에 행해졌다.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로 백두진 국회의장, 김종필 총리, 백남억 당의장, 정일권 총재고문 등을 불러 비상사태선언에 관한 문제를 협의한 것.
이 자리서 박대통령은 정 고문에게 북괴의 동향과 구주 등 우방각국의 동향에 관해 얘기를 묻기도 했다는 것.
이어 토요일인 4일에도 청와대서는 박대통령주재로 안보회의가 열렸다.
이 안보회의에는 정일권·이동원 두 의원이 이례적으로 참석했는데 회의에선 북괴의 도발가능성과 관련하여 안보외교문제가 심각하게 논의되었다는 것.
청와대 안보회의가 끝난 뒤 김 총리는 정일권 고문, 이동원 외무위원장과 점심을 함께 했는데 하오 총리만 청와대를 잠시 다녀 나온 뒤 세 사람은 교외에 나가 저녁 늦게까지 시간을 보냈다.
한편 토요일 백남억 당의장은 반도「호텔」의 918호실에서 길전식 사무총장·김진만 재정위원장 등을 불러 전날저녁 청와대를 방문했던 얘기를 했다.
전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형욱 의원도 이날 이례적으로 청와대로 박대통령을 방문했다.
국가비상사태가 선언되고있던 6일 상오10시 공화당은 중앙당사에서 긴급당무회의를 하고있었고, 백남억 당의장과 현오봉 총무는 김홍일 신민당대표를 방문, 비상선언내용을 설명했다.
공화당간부들은 지난4일부터 곧 비상사태가 선언될 것을 짐작했었으나 이날 막상 6개항의 선언이 발표되자 약간 긴장한 모습들.
지방에 내려간 김진만 재정위원장과 국무회의에 참석한 이병희 무임소장관만이 불참한 가운데 열린 당무회의는 마침 유혁인 청와대정무비서관이 전달한 「국가비상사태선언」을 조용히 읽으면서 한때 말이 없었고, 신동식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 북괴야욕분쇄과정에서의 일부 자유유보는 감수해야할 때가 왔다』고 말하기도.
회의가 끝난 뒤에도 당무위원들은 한동안 자리에 앉았다가 야당당수를 만나고 온 백 당의장과 앞으로의 사태에 관해 의견교환을 했다.
6일 상오 박대통령의 비상사태선언이 있자 신민당간부들의 표정은 매우 무거웠다.
김홍일 대표는 이날상오 10시 효창동 자택으로 찾아간 백남억 공화당의장으로부터 이 내용을 통고 받았다는데 백 의장은 10분 가량 내용을 설명하면서 『양해해달라』고 부탁하고 떠났다고.
비상사태선언이 있기 전 관훈동 중앙당사에서는 고흥문 정무회의부의장 정해영 국회부의장 김형일 사무총장 김재광 원내총무 김영삼 의원 김수한 대변인등이 나와 「라디오」를 틀어놓고 청와대 중대발표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발표가 있자 김영삼 의원은 『안보문제는 내적으로 충실히 준비해야할 성질의 것이지 비상사태를 선포해야할 정도의 위기는 없다』고 했으며, 다른 당 간부들도 『헌정제도와 국민자유에 중대한 위협을 가하려는 조치』(김 사무총장) 『납득할 수 없는 일』(김 원내 총무·박병배 정책심의회의장)이라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조금 늦게나온 김 대표는 당 간부들과 협의를 거쳐 하오3시 긴급 정무회의를 소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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