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충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세상에는 반드시 충돌을 일으킨 필요가 없는 것끼리 정면적으로 충돌을 일으켜 불꽃을 튀기는 경우를 많이 본다. 가령 이성과 신앙은 곧잘 충돌을 일으킨다. 그러나 그런 충돌들을 자세히 연구해보면 이성과 신앙이 직접 충돌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요, 한 신앙 속에 있는 이성과 다른 이성이 층들을 일으키는 것이고, 또는 그 이성이 전제로 하는 신앙과 다른 신앙과 충돌을 일으키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는 사실 상반개념으로서 이 충돌은 잘못된 충돌이라고 할수는 없다.
보수하려면 진보는 못하고 진보하려면 보수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지의 경우에는 서로서로 극한적으로 되지만 않는다면 반드시 충돌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
어느 개인이든지, 단체든지, 사회든지, 진보 없이는 변천하는 역사 속에 생존할 수가 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자기 동일성을 깨뜰기까지 변화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이남의 주장과 이북의 주장과 반드시 충돌해야하나 생각해본다.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자유이고 저쪽에서 주장하는 것은 소위 빈민의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이 두 가지가 반드시 모순 갈등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문제는 그 방법에 있어서 이남에서 빈궁의 격차를 그대로 둔 「자유」를 고수하고 이북에서는 자유를 말살하는 사회건설을 하는데 문제가 있다.
물론 문제가 그렇게 단순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목표하는 의도를 「우리식」으로 추려보자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는 저런 관점에서 남북문제의 해결에 임해갈 수밖에 없다. 또 그와 같은 방식으로 이북을 설득할 수밖에 없고 비록 오랜 세월이 걸릴 것이지만.
오늘 우리 주변에서 당장에 시정해야 할 잘못된 충돌 가운데 하나는 국방과 외교의 충돌이다. 일제나 나찌나 팟쇼에서는 군국주의였기 때문에 국방으로 또는 강병주의로 다른 모든 것을 통일하여서는 평화외교란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국방이 침략이 아니고 국방에 마무를 때 그것이 평화외교와 충돌할 필요는 조금도 없다.
더욱이 오늘날 다원화 시대에 있어서는 국방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 대외적으로 평화를 추구해오는 것이 미·소 대립 이래로 긴장을 완화해 오는 근본방식이었다. 오늘은 한편에서는 전쟁을 하면서 한편에서는 거래를 계속하고, 또 한편에서는 평화회의를 진행시키는 복잡한 생의 양태를 띠는 시대이다. 군헌론적 획일주의는 시대착오적 생의 자세라 아니할 수 없다.
이상의 몇 가지 잘못된 충돌의 사례를 「파한 잡기」하여 보았지만, 그 외에도 우리가 피해야할 잘못된 충돌은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는 줄 안다. 더욱이 「남북 적십자회담」의 의제작성 문제도 그렇고 오늘 국방문제를 내걸고 걸핏하면 국내적 자유가 말살되는 사례가 비일비재 하는데 이것은 오히려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밖에 안된다.
잘못된 충돌이 일어날 때에는 언제나 그 충돌의 원인이 다른 것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철하<장로회신학대 교수·철박>】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