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오페라 여왕 비벌리·실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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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마리아·칼라스 이후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의 『노래하는 배우』로 통하는 비벌리·실즈는 11월 들어 뉴요크·오페라 좌에서만도 도니젯티 등 세 사람의 작품에 주역을 도맡아 『오페라의 여왕』으로서의 재능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
마치 항로도 처럼 복잡한 스케줄 속에 세계를 누비며 금년 한 햇동안만도 1백회 이상 오페라무대에 주역으로 등장하는 비벌리·실즈는 루마니아에서 건너온 유대계 이민의 딸이다.
한번 무대에 서는데 1만 달러의 출연료를 받는 비벌리는 미국사상 최고의 오페라·스타라는 격찬을 받고 있다. 데뷔가 늦었던 그는 메트러폴리턴을 거치지 않고 오페라의 정상에 오른 것으로도 유명한데 오늘날은 세계의 저명한 오페라 좌에 가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10세 때부터 오페라·스타가 되겠다던 그는 교사가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줄곧 노래만 불렀다.
그가 세계적 명성을 얻은 것은 뉴요크·오페라 좌에서 헨델의 『줄리어스·시저』에 클레오파트라 역을 맡은 37세 때의 일이다.
라 스칼라 좌에 데뷔한 것은 3년 뒤인 40세 때의 일. 늦으면서도 왕성하게 개화하기 시작한 그의 재능은 스케줄을 좀 늦추라는 친구들의 충고에 『내 나이 42세이다. 무엇을 위해 늦추고 있겠느냐?』고 할 정도로 그를 인기의 정상에 올려놓았다.
12월초에는 뉴·올리언즈에서 『람메르무르의 루치아를, 그리고 곧이어 이스라엘에서 1개월간의 공연여행을 한다. 그의 공연계획표는 75년까지 이미 꽉 짜여져 있다.
노래를 부르지 않을 때의 비벌리·실즈는 곧잘 잡담을 즐긴다. 한번은 그의 주치의가 경련증에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했으나 치료를 꺼려 의사가 그냥 두면 며칠간 잡담을 못하게 된다고 하여 그 자리에서 응낙을 받은 일도 있었다.
무대에 서기전에 그는 야단스런 워밍·업을 하지 않는다. 그는 목청을 가다듬기 위해 한개의 사과를 며칠씩이나 갖고 다니면서 등장할때 씹곤 한다.
분장실로 몰려드는 펜들은 공연도중 막간을 이용하여 장거리 전화를 걸고있는 비벌리· 실즈를 자주 본다. 그의 이러한 태도에 지위자 에릭·라인스도프는 완전할 정도로 안정감을 가진 오페라 가수라고 칭찬했다.
이러한 안정감은 그로 하여금 무대 위에서 어떤 차질이 생기더라도 임기응변으로 곧잘 처리하게 한다. 지난10월 뉴요크·오페라 좌에서 줄리어스·루델의 지휘로 노래를 하다가 발이 미끄러졌다. 그때 지휘자의 손을 마주잡는 신호로 어색하지 않게 제자리를 찾은 일이 있었다.
16세 때부터 오페라단에 따라다니기 시작한 비벌리·실즈는 24세에 샌프란시스코·오페라단에서 보이토의 『메피스·토펠레』에 출연하여 오페라 계에 얼굴을 내게 되었다. 그때 이미 부친은 사망한 뒤였으나, 어머니가 공연전의 식사를 직접 요리하는 열성을 보여주었다. 그후 2년이 지난 뒤 뉴요크·오페라 에 입단하여 66년 세계적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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