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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이현정의 무반주 인생] ② 지금 여기서 도망치고 싶을 때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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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서, 당신의 삶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십니까. 미디어공동체 연분홍치마가 내놓은 6번째 다큐 영화, <노라노>(10월31일 개봉)의 주인공에게서 답을 구해봅니다. 여성 감독의 여성주의 영화로 소개되고 있지만, 구순을 앞둔 노 디자이너의 삶과 철학에 관한 이야기로 봐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노라 노(본명 노명자)는 85세 현역 디자이너입니다. ‘노라’는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의 주인공인 노라처럼 주체적인 삶을 살겠다고 선택한 예명입니다. 여기서 주체적인 삶이란 모든 사슬을 거부하겠다는 자유 부인 같은 발상이 아닐 겁니다. 나라는 사람은 누구인지, 무엇을 좇아 살 것인지 하는 자기 철학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여정은 여자이기에, 혼자이기에 더 처절하고 험난했을 것입니다. 다큐는 그 고단한 과정에 관한 소회입니다.

인생은 장밋빛일까.

얼핏 보면 디자이너 노라 노의 인생은 지난해 열린 그녀의 전시회 타이틀처럼 ‘라 비앵 로즈’(La vie en Rose: 장밋빛 인생)라 불릴 만해 보입니다. 누구나 장롱 한 켠 들추면 찾을 수 있는 ‘우리 엄마’(1970년대 청춘을 보낸 어머니 세대)의 흑백 사진 속 미니스커트, 그 미니스커트 열풍을 스타일링한 장본인이 바로 노라 노입니다. 국내 최초 패션쇼 개최는 물론 최초 기성복 출시 등 '최초'라는 수식을 액세서리처럼 달았고, 해외 유명 잡지에도 일찌감치 소개될 만큼 알아주는 디자이너였습니다. 그래서 한국 영화계의 톱스타들, 최은희와 엄앵란 등의 영화 의상도 직접 도맡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런 노라 노에게 패션 인생을 기념, 정리하는 전시회를 열어주겠다는 패션계의 후배가 나타나면서, 다큐는 시작됩니다.

호텔 패션쇼를 열고, 톱스타나 고위층 부인들과 만나왔을 경력에 비해 다소 초라해 보이는 작업장 환경. 곱게 화장하고 단아하게 차려입은 차림새와 어울리지 않게 피로한 듯 굳은 얼굴로 꼼꼼히 바느질 하는 나이 든 여자. 수십 년 전 자신이 디자인한 옷의 패턴을 다시 그리는 일조차도 버겁다고 뒷걸음질 치는 모습에서 ‘미니스커트는 민족반역자’, ‘변태 디자이너’라는 언론들의 집중 포화 속에서도 줄담배를 피우며 꿋꿋이 윤복희의 미니스커트를 만들었을 그녀를 상상하기는 어렵습니다.

전시회를 기획하는 후배가 ‘장밋빛 인생’이란 타이틀을 내놓자, 그녀는 “장밋빛은 무슨...”이라며 심드렁해집니다. 후배가 ‘옛 영광을 재현하기보단 동시대와의 호흡을 보여주자’며 새로운 소재와 디자인을 제안하지만, 노 디자이너는 ‘쇼에만 올릴 보여주기 식 옷은 안 된다’고 후배의 의견을 일축해버립니다.

이런 게 세대 차이라는 걸까요. 아니면 노라의 옷은 뭔가 다른 철학을 담고 있는 것일까요. 영화는 다소 보수적이라 할 만한 그녀의 철학엔 어떤 비밀이 있다고 속삭이는 듯 세월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녀는 1950년대에 이미 이혼을 했고, 홀로 해외 유학을 다녀왔고, 혹여 일처리가 꼬이기라도 하면 “여자가 무슨 일을 하겠다고”라며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사회의 편견 속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져왔습니다. “살아온 걸 보면, 모든 게 무사히 넘어간 게 없다”는 그녀의 인터뷰 속엔 혼자 사는 이혼녀, 일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 외에도 고달픈 인생에 대한 인간적 소회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녀에게 옷 만드는 사람은 주체적인 창작자인 동시에 고달픈 노동자이고, 그녀가 만드는 옷은 외형보다 본질에 충실합니다. “옷은 예술품이 아니다”, “옷이 사람보다 먼저 걸어 나와서는 안 된다” 등의 철학을 가진 그녀에게 옷을 만드는 이유는 바로 ‘사람’을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녀에게 옷은 사람의 활동이 자유롭고 편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에 집중함으로써 자신이 누구인가를 증명해줄 수 있는 도구로 쓰이는 것이죠.

그녀가 다소 고집스럽게 걸어간 그 길을 가수 윤복희는 이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나를 좋아해주고 인정해주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가는 길”이라고. 외길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영광의 빛이 아니라, 동료애 때문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특별한 재능과 영광을 보고 가는 화려한 길을 넘어, 멈추고 넘어지고 싶은 순간에도 생계라는 이유로 혹은 이 재주밖에 없다는 이유로, 그도 아니면 지금껏 내가 이 길을 가는 데 같이 있어준 사람들을 위해서 함께 가는 길이라는 뜻일 겁니다.

영화에서 ‘한국 최초’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잠깐 떼고, ‘여성 해방’이라는 다소 어려운 용어를 가리면, 인생의 서글픔을 견뎌서 비로소 한길에 대한 해답을 찾은 맨얼굴의 그녀가 보일 겁니다. 그것이 바로 “도망치고 싶을 때에도 자기 자리를 지킨 사람”(노라 노의 내레이션 중)의 얼굴이겠죠. 그래서 이 디자이너에게 ‘장밋빛 인생’이란 타이틀은 어딘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화려하고 안락한 수식어였는지 모릅니다.

“때로는 어리석게, 때로는 지혜롭게” 걸어 왔을 뿐

“때로는 어리석게, 때로는 지혜롭게(노라 노의 내레이션 중)” 여러 대내외적 악조건을 극복하면서 ‘진정 나다운 것은 무엇인가’를 찾아온 노인. 나다운 것을 찾아가는 방법이 그녀가 하는 일, 한국 근현대기의 여성 패션과 직결되었던 것일 뿐, 그녀의 질문은 일하는 여성이든 전업주부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관없이 현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안고 가는 물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한 영화잡지의 인터뷰를 빌리자면, “옷 만드는 일이 엄격함과 세밀함을 훈련시켰다”는 이 디자이너는 정작 검은 옷만 입는다는군요. “검정 옷만 입기 시작한 것은 시간이 없어서다. 만날 구두, 가방 다 맞추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편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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