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현정의 무반주 인생] ① 나는 너에게 끌린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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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다음 영화 포토

홍상수 감독의 15번째 영화 <우리 선희>는 청소년관람불가입니다. 선정성도 폭력성도 없어 보이는 이 영화가 ‘19금’인 이유는 “성인들만 내 영화를 이해할 수 있다”는 홍상수 감독 스스로의 요청 때문이라고 합니다. 처음엔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가, 잠시 후 ‘그런가?’ 갸웃했다가, 이내 ‘피식’ 나도 모르게 실소를 흘렸습니다.

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멀어지는 청춘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또 하루가 지나가는 ‘서른 즈음’(김광석 <서른 즈음에> 중)은 확실히 지났습니다. 그렇다고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다시 못 올 것, 그 ‘낭만에 대하여’(최백호 <낭만에 대하여> 중) 술 한 잔 올리는 그런 연륜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이 영화의 주된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는 최은진의 <고향>이라는 트로트 한 구절, 순정에 어린 그대와 언제나 변치 말자고 손잡고 맹세하던 그때를 떠올리며 ‘고향’의 달빛에 취하는 그런 나이라고나 할까. 쉽게 말하라고요? 네, 이른 중년, 어찌됐든 성인입니다.

성인, 어떤 이성에게 왜 끌리나

홍 감독의 영화에 고개를 끄덕이고 갸웃거리고 실소하는 것은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나였고, 나이고, 앞으로의 나일 것 같아섭니다. 나이를 먹은 것도 아니고 안 먹은 것도 아닌, 나 자신이 이보다 더 우스꽝스러울 수가 있는가, 하는 그런 자조 때문입니다. 영화 속 등장인물은 성인이라는 이름으로 낮술도 먹고, 타인에게 되지도 않는 충고도 하고, 아내가 있어도 되는 대로 분위기에 취해 ‘아는 여자’에게 뽀뽀도 하고, 때로는 덥석 달려드는 어린 여자의 손을 끌고 어딘가로 향하는, 아직도 수작을 떠는 인간들입니다. 감히 누가 그들이 영화 속 캐릭터일 뿐이라고 일갈할 수 있겠습니까.

이 영화는 선희(정유미)라는 20대 여자에게 끌리는 세 명의 각기 다른 연령대의 남자를 등장시킵니다. 연령대가 다르듯이, 사회적 지위와 현실 감각 등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이죠. 뭉뚱그려 이른 중년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다양한 연령대입니다. 그럼에도 영화의 종말을 향해 갈수록 이들은 선희의 매력을 공통적으로 묘사하지요.

선희= 착하다+예쁘다+머리가 좋다+안목이 있다+순수하고 용기가 있다+야망이 있다= 또라이.

얼마나 멋진 정의입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일관성 없이 제멋대로 판단하고 막말하는데 어딘지 총명해보이고 안목도 있어 보이는 또라이 같은 여자에게 은근 끌린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물론 그런 여자에게 모든 남자가 꽂힌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영화의 프롤로그처럼 등장해서 우리 선희라는 인물을 단번에 설명시키고 가버리는 인물 선배(이민우)를 통해서 선희를 보다 객관적으로 보는 남자도 있을 것이라고 추측해봅니다. 유독 이 장면에서 선희는 선배의 뻔한 거짓말에 직설적으로 분노하는데요, 거짓말이 나쁘다는 도덕관 때문이라기 보단 ‘나를 어떻게 보고 그런 뻔한 거짓말을!’이란 식으로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에 대해 분노를 표현하는 여자죠. 사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자칫 피해의식으로 비춰질, 직설적인 분노를 표현하는 여자를 터부시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겉으론 몰라도 속으론 ‘또라이’ 이러는 거죠.

호감의 기원을 파고 또 파고

하지만 영화는 선희를 싫어할 류의 남자들이 아닌, 선희를 이유 없이 좋아할 류의 남자들을 연령대별로 등장시킵니다. 한마디로, 선희에게 호감이 있어 수작을 거는 남자들이죠. 사실 영화를 보면서 이 남자들의 맹목적인 호감에 어떤 근거가 있을 것이라고 지속적으로 추론했습니다.

영화는 최 교수(김상중)가 유학을 앞둔 선희에게 써주는 2장의 서로 다른 추천서로 호감이란 무엇인가, 어디에서 시작하며 어떻게 발전하는가를 보여줍니다. 최 교수는 처음엔 선희의 내성적인 단점을 객관적으로 기술하려고 노력한 일명 ‘쌀쌀맞은’ 추천서를 써주었습니다. 이에 대한 선희의 반응은 정말 ‘선희다운’ 것이었습니다. 아주 순수하고 용감하게 “저한테 왜 이렇게 쌀쌀맞으세요?”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최 교수는 이렇게 답하죠. “니가 먼저 나한테 쌀쌀맞았잖아.” 이게 웬 연인 사이의 투정 같은 내밀한 대화일까요. 이 둘은 이 대화를 기점으로 서로의 감정을 매우 사적으로 파고듭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예뻐했던가, 그날 선생님이 나의 손만 유독 길게 잡아주었던 걸 알고 있었다던가 등으로. 서로에 대한 호감을 확인합니다.

선희의 이런 놀랍도록 순수해서 용감해 보이는 화법은 헤어진 연인이자 동년배인 문수(이선균)와 선배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재학(정재영)에게도 유사하게 적용됩니다. 그리고 당연지사, 선희와의 1대1 술자리를 통해 선희와 세 남자의 만남은 수작이라는 행동으로 구체화됩니다. 그 끝에 선희에 대한 공통적인 단어들이 세 남자의 입을 통해 튀어나오는 거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 간결하고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단어들 사이엔 사실 아무런 연관도 없고, 평가에 대한 관점도 뒤죽박죽인, 한마디로 모순투성이인 단어들이라는 겁니다. 그냥 ‘선희는 아무개다’라고 아무나 정의한 꼴이지요. 순수하면 용감해 보입니다만, 그걸 나쁘게 보면 또라이 아니겠습니까. 머리가 좋고 안목이 있어 보이는 건 내성적이고 즉시 표현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한마디로 싸 보이지 않고 뭔가 생각의 깊이가 있어 보인다는 얘기죠. 장점이 단점이고 단점이 장점이라는 식입니다.

살다보면, 우리는 이런 식으로 상대를 규정할 때가 많습니다. 잘 모르는데, 잘 아는 것도 같아서, 거슬리는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왠지 호감을 갖게 되는, 그런 사람들을 말이죠. 그럴 때 우리는 또 으쓱해집니다. 나만 그이를 아는 것 같아서. 나만의 당신이 된 것 같아서.

선희와 솔직한 대화(스킨십 포함)를 나눈 후 최 교수의 추천서는 이렇게 바뀝니다. ‘내성적이어서 관계를 잘 맺지 못하는 학생’에서 ‘뛰어난 관찰력으로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 보는, 놓치면 후회할 학생’으로.

세 남자는 창경궁이라는 아주 고풍스런 장소에서 엔딩을 맞습니다. 명정전 안을 들여다보는 이 남자들의 표정에는 왠지 만족스러움이 가득합니다. 마치 현재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아 역사적 사실은 증언할 수 없이 너도나도 무한한 역사적 추론만을 할 수 있는 궁궐터와 같이, 영화에서 호감의 기원이라고 생각될 만한 선희에 대한 그들의 공통적인 증언들이 일종의 추론이고 말장난일 뿐이라는 듯이.

먼저 좋아하고 상관없이 좋아하는 것

호감의 기원에 대해 홍 감독은 어느 영화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잘 안다고 해서 좋아하는 건 좀 문제가 있습니다. 먼저 좋아하고, 상관없이 좋아하는 거죠. 좋아하는데 그 사람에게서 조금씩 다른 면을 보게 되고, 그 보게 되는 과정들도 즐기는 것, 그게 좋은 거 같습니다. 좋아하기 때문에 더 참을 수 있고, 그래서 내 속의 두려움이나 불편함을 이겨내고, 전엔 어색해했던, 삐뚤게 봤던 그 다른 면을 이젠 온전한 모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그게 덤으로 얻는 겁니다. 그 덤으로 내가 조금씩이지만 변하는 것 같습니다.”

감독의 말만 들어보면, 호감이 왜 생기는가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군요. 중요한 건 진정한 호감이 생기면 우리 자신이 어떻게 변화하는가, 그 점이 눈여겨 볼만 하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쯤 되면 감독이 요청한 ‘19금’의 뜻이 살짝 이해되려 합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내가 어떻게 변하는가의 문제라니까요.

어른들만 이해할 수 있는 19금 감정, 끌림을 잘 설명해주는 대사가 있습니다. 더도덜도 말고 딱 중년인 최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호감이란 “항상 네 편이 돼주고 싶은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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