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리는 일본 고용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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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4일 오전 11시 도쿄(東京) 신주쿠(新宿)구 니시신주쿠 에루타워 23층에 있는 신주쿠구청 공공직업안정소는 말 그대로 북새통이었다.

5백여명의 취업 희망자가 저마다 손에 취업신청서를 꼭 쥔 채 옆자리의 사람과 정보를 교환하는가 하면 곳곳에 붙어 있는 구인정보들을 살펴보느라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취업을 부탁하며 털어놓는 하소연들이 각양각색인데 상담 창구수는 6개밖에 안돼 상담 차례가 돌아오기까지는 한 시간이 족히 걸렸다.

창구 옆 대기번호판을 응시하고 있는 취업 희망자들의 연령층은 20대 중반에서 50대까지 다양했다.

신주쿠구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취업을 알선하는 이곳에는 하루에 3천명이 넘는 취업 희망자가 몰린다는 게 담당자의 얘기다.

취업 상담을 하러 온 야마모토 다케시(山本武.31)는 "3개월 전 일하던 무역회사에서 해고당한 뒤 여기저기 연줄을 통해 취업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며 "육체노동을 하는 직업이라도 좋으니 제발 어디든 취업이 됐으면 좋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옆에 앉아 있던 40대 후반의 한 남성은 "두달 전에 취업신청서를 냈지만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다"며 "하지만 딱히 할 일도 없어 매일같이 이곳에 출근하다시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이들이 취업에 성공하는 확률은 극히 낮다. 신주쿠 공공직업안정소 관계자는 "이곳에 취업 신청을 해 직장을 얻은 사람은 10명에 2명꼴"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지난 1월 실업률이 사상 최고치인 5.5%에 달해 이 같은 상황이 이상할 것도 없다.

그러나 정보기술(IT)업체의 경우는 사정이 정반대다.

네트워크 서비스 업체인 CRC시스템스 등 1백여개 벤처업체에서 구인 의뢰를 받고 있는 베네풀사의 아베 미나코(阿部美奈子)는 "요즘은 거의 매일같이 벤처기업들로부터 '아직까지 사람을 못 구했느냐'는 전화에 시달린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대학 졸업자와 전문학원 재학생 중 동원 가능한 모든 인원을 추려보지만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일부 IT 전문학원에선 '취업이 안되면 수업료 전액을 돌려드립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IT 기술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최근 일본 노동후생성이 발표한 통계를 봐도 일반 직종과 IT 직종 간의 고용 불균형이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해 12월 말 현재 일반 사무직의 경우 기업에서 원하는 사람의 수는 4만4천명인데 비해 구직자 수는 44만명에 달했다.

IT 쪽에선 기업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4만명인데, 취업 희망 인원은 2만6천명에 불과하다.

IT 분야의 인력난은 기업이 요구하는 IT 기술자의 수준이 점점 세분화.고도화되고 있는데 비해 대학.직업훈련학교.IT 전문학원의 수준은 이에 크게 못미치기 때문이다.

이같은 고용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한 일본 정부의 대응은 크게 두가지다.

먼저 이직자 등 새로 직장을 찾는 사람들을 IT 분야로 유도한다는 것이다. 또 그동안 기본 기술 습득에 초점을 맞췄던 직업훈련을 전문성 제고 쪽으로 확 바꿀 방침이다. 아무리 대학이나 학원에서 IT 기술을 익혀 봤자 실제 기업 현장에서는 별 도움이 안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와 관련, 경제산업성은 최근 대규모 소프트웨어 개발 사업 전반을 설계할 수 있는 인재 5만명을 3년 안에 육성하는 내용의 세부 계획안을 발표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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