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의 월남에 「평화의 희망」 심고…|철수 서두르는 「청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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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물에 빠진 친우를 구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라도 하지 않고는 안 되는 의를 사랑하는 우리 민족은 월남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파병하는 것입니다.』-지난 65년10월 국군 파월 결정에 대한 정부의 담화문 (65년1월)이 발표된지 열달만에 해병 청룡 부대를 선두로 건군 사상 첫 해외 원정에 나섰던 주월 한국군은 파월 만 6년만인 오는 12월 다시 청룡을 선두로 월남에서 명예로운 철수를 시작한다. 청룡은 파월 6년간 주월군 각급 부대가 편 52만여 회의 대소 작전 가운데 극히 드물었던 부대 단위 접전을 최소의 희생과 최대의 전과로 치러냈고 수많은 대민 사업을 통해 전쟁에 시달린 월남 국민들에게 자유와 명화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었다.
청룡은 65년9월20일 포항에서 창설, 그해 10월3일 파월 국군의 전투 부대 제1진으로 미 해군 「가이거」호와 「엘틴저」호 편으로 부산항을 떠나 10월9일 「캄란」만에 상륙한 이래 세계 전사에 기록될만한 수많은 전공을 세웠다.
청룡이 「캄란」에 상륙한 10월은 장마철. 「캄란」과 「롱바틴」에 주둔한 청룡은 「베트콩」보다 먼저 장마철의 월남 기후와 풍토와 싸워 이를 극복한 후 미 제101공수 사단으로부터 이 지역 방어 임무를 인수, 주위에 주둔하던 5천여명의 「베트콩」을 소탕해 가면서 12월부터 청룡 1∼2호, 해풍·추수 보호 작전 등을 벌여 월남의 3대 곡창지인 「투이호아」지역 평정 사업에 크게 기여, 원정 첫해부터 귀신 잡는 해병의 용감성을 유감없이 떨쳤다.
청룡은 원정 첫해 이후 6년간 「투이호아」·「출라이」「호이안」전선을 전전하며 용국·노룡·기룡·승룡·비룡·황룡 등 1백72회의 대부대 작전과 13만7천2백50회의 소부대 작전을 전개, 9천5백95명의 적을 사살했고 포로 6백85명, 귀순 5백69명, 개인화기 3천9백78정, 공용화기 2백84문을 노획하는 등 큰 전과를 올렸다.
청룡이 월남에서 벌인 수많은 작전 가운데 67년2월15일 새벽 청룡 3대대 11중대 전술 기지에 기습 공격 해온 월맹군 1개 연대를 육탄 공격으로 물리친 「차빙동」전투와 67년7월19일 1개 중대 명령으로 「베트콩」1개 중대를 섬멸한 「테로이」 매복 작전, 월남전 최대의 한·미 연합 상륙 작전이었던 「베리아」반도 및 「고노이」섬 상륙 작전 등은 세계 전 사상 빛나는 전공이었다.
파월 6년간 빛나는 전공으로 한·미·월남 정부로부터 일곱 차례나 부대표창을 받은 청룡은 전공 못지 않게 대민 사업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또 청룡은 건설 사업도 벌여 「다낭」시에 팔각정을 세워 우리 문화를 월남 땅에 부각시켰고 50여 동의 가옥 및 1백여회의 교실 건축, 도로·교량 공사를 통해 전쟁에 시달린 월남국민들에게 자유와 평화에 대한 새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청룡의 철수, 곧 주월 국군의 철수가 계속 그 빛을 유지하기 위해선 파월 기술자 및 용역회사 사원들의 거취가 분명, 깨끗해 말썽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는 여론이 현지에서 팽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주 「티우」월남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던 김종필 국무총리는 청룡의 귀환과 함께 올해 안으로 귀국해야할 파월 기술자 등 파월 민간인의 취업 문제를 월남 정부 당국과 논의한 것으로 알러졌다.
청룡 철수와 함께 우리 정부는 국군 파월의 반대 급부로 파월에 앞서 미국 정부와 맺은「브라운」각서에 따라 얻은 경제적 군사적 혜택의 재조정과 국군 병력 「실링」 재조정 등 대내적인 문제 해결에 부심하게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즉 「브라운」각서에 따라 59년부터 시작된 군원 이관 작업이 65년이래 중단됐었다가 지난 7월초부터 약 2천만 「달러」의 군원 이관 작업이 부활됐고 오는 73년까지 5천만「달러」 규모로 확대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이 군원 이관의 재개는 주월 국군 철수와 병행, 그 규모가 커질 것이 예상되며 군원 이관 이외에도 국군 파월 이후 국방비에 충당해온 연평균 40억원의 파월 지원비 등 일련의 월남 특수 현장이 차츰 퇴조해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 파월 국군의 철수는 국군 병력 「실링」에도 파급, 이의 재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내 해병 부대는 청룡의 철수를 앞두고 신병의 보충을 억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존 부대를 모체로 보완 편성된 여단 규모의 청룡 부대 존폐도 청룡 철수에 따른 문젯점이 되고 있으며 ○만명이 초과되고 있는 육군 부대와 국군 파월과 함께 전투 편제를 갖춘 일부 예비 사단 등 병력 재조정과 복무 기간의 재조정 등 문제도 해결돼야 할 것이다. <이두석 기자>

<청룡 부대 파월 일지>
▲65년9월20일=경북 포항에서 창설( 부대장 이봉출 준장).
▲65년10월3일=주월군 전투 부대 제1진으로 부산항 출발.
▲65년10월9일=월남 「캄란」만에 첫 상륙 「캄란」「롱바틴」에 주둔, 미 제101공수 사단으로부터 이 지역 방어 임무 인수.
▲65년12월=번개1. 2. 3호 작전
▲66년=해룡 작전, 재건 1∼3호 작전, 청룡 1∼2호 작전.
▲67년=용환 작전, 용두 1. 2. 3. 5호 작전, 노룡, 기룡, 투망 작전.
▲68년=승룡 1∼6호 작전, 용궁 1∼3호 작전, 서룡 1. 2. 3, 5호 작전, 용진 작전, 괴룡 1∼2호 작전, 비룡 작전.
▲69년=승룡 7∼17호 작전
▲70년=황룡 1∼3호 작전, 승룡 18∼20호 작전
▲71년=황룡 11∼16호 작전.
▲작전 횟수=대부대 작전 1백72회, 소부대 작전 13만7천2백50회
▲전과=「베트콩」사살 9천5백95명, 포로 6백85명, 귀순 5백69명, 개인화기 3천9백78점, 공용화기 2백84문 노획.

<역대 청룡 부대장>
▲제1대 이봉출 준장 (65년10월9일∼66년12월9일)
▲제2대 김연상 준장 (66년12월20일∼68년8월4일)
▲제3대 이동호 준장 (68년8월5일∼70년2월11일)
▲제4대 이동용 준장 (70년2월12일∼71년8월1일)
▲제5대 허홍 준장 (71년8월2일∼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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