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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익 20여단체 조건부 삼가결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전후 처리를 싸고 구체적인 대안이 없이 공위에 마주앉았던 미·소는 5호 성명에서「주장의 본깃점」에 이른 것이었다.
사태가 악화되자「하지」증강파 「아널드」는 우익지도자 중에서 온건한 지도자인 김견식·장덕수등과 만나 협의한 끝에 4월22일에 「제5호성명 해석에관한 성명」을 「하지」장군의 이름으로 발표하게 되었다.
이 성명의 끝자는『선언에 서명하는 것은 그 서명하는 정치단체가 신탁통치에 찬 동지지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서명하지 않은 정당은 공위의 혐의대장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결국 이 성명은 반탁운둥을 벌이던 우익의 공위참가의 길을 터주었는데 이승만은 이보다 1주일전인 4월22일 여행중인 대구에서『반탁·찬탁』을 막론하고 회의에는 참가하고 보아야 한다』고 태도를 밝혔었다.
이「성명」에 대한 성된 이 발표되는 27일현재로 좌익측에서는 32개단체가 건부 선언서에 서명제출했다.
우익측은 이 성명으로서 서명이 유보조항임이 밝혀진 뒤에 선연서에 서명했는데 5월l일까지 비상국민회의, 민주의원 한민당·한독당등 20여단체가 서명했다.
우익정당은 서명하면서도 『임시정부수립에 참가하여 신탁통치를 반대할수 있는 계기임을 확인한다』는 것을 다짐했던 것이다.
정당들이 선언서에 서명하여 제출할때에 당원명부를 함께 재출했는데 당원의 수가 엄청나게 많아 「난센스」를 빛은 것이다. 당시 남한 인구는 2천여만을 헤아렸는데 제출된 당원의 총계는 4천만명이 넘었고 남·북을 합하면 7천만명이나 되어 유령명부작성 2중 3중으로 같은 사람이 등록되어 있었음이 나타났다.
우익정당들이 어렵게 서명서에 둥록하자 5월1일 공위에서는 정당·사회단체에 답신을 요구하는 시문서를 제7호 성명으로 내놓았다.
이 시문서에서는 조선민주주의 임시정부는 어떠한 방향으로 수립되어야 하느냐를 묻는것으로 ①국민의 권리 ②임점의 일반체제와 성질둥 6개항목과③임경의 건강에 관한 것으로 경치대책·경제대책·교육 및 문화대책의 세가지등 아홉가지였다.
그러나 이 답신요구서를 받은 선언서에 서명한바있는 정당이 모두 공위협의에 참가한다는 것이 아니고 어느 정당사회단체가 공위에 초청되느냐하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이 초청자격문제에 이르자 회의는 필연적으로 깨지게 되었다. 5월1일 제7호 성명이 나오고 뒤숭숭한 가운데 공위가 결정된다는 소문이 조용히 돌기 시작했다.
명부와 조건부서명이 공위에서 말썽이 된 것이다.
「스티코프」는조건부 서명자들을 협의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라널드 장군은 의사표시의 자유이니 참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5월5일께로 기억나지만 당시 회동신에서 공위 취재에 나온 설국환씨 (현「그레이하운드」사장)가 공위가 결렬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을듣고「스티코프」를 만난일이 있었다.
설씨가「스티코프」가 있는 소련영사관으로 가는데 「스티코프」가 막 영사관 정문을 나오는데서 만나게 되었다. 설씨가「인터뷰」를 요청하자 통역을 통해 길가에서 한마디 주고 받았다.
설씨가 『공위가 며칠동안 열리지 않고 징돈상태에 있으며 결렬된다는 소문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스티코프」는 시치미를 떼고 『나는 지금 회의장으로 가는 길이요, 결렬이란 금시초문이요』하더라는 것이었다.
「스티크프」 는 협의자격 문제에서 민주의원과 관련한 정당들은 선언서에 서명했으나 정부가 수립된 뒤에는 신탁통치를 반대하려 하고있다고 물고 늘어져 이런 견해를 포기할때까지 협의할 용의가 없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공위가 여기서 교착되자「아널드」는 6일 회의에서 이 문제를「현안」으로 하고 38선 절페문제부터 다루자고 제안했다.
「스티코프」가 거절하자「아널드」장군은『이것이 마지막 대답입니까』라고 묻고 「그렇다면 토론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스티코프」는 시간의 여유를 요청하고 휴회했는데 이것이 1차 미·소공위의 결렬이었다.
「스티코프」는 7일 「하지」를 방문, 3시간 동안의 회담 끝에 무기휴회를 선언했다.
이것은 예정된 결렬 이었다. 8일밤「스티코프」는 대포단을 이끌고 평양으로 돌아갔다.
공위가 깨지자「하지」장군은 사군사령부 발표로 휴회경위롤 설명했다. 「하지」장군은 발표문에서 공위가 7년동안 허비하면서 아무 진전이 없는데 대해 국민들이 그 내용을 알 권리가 있다고 말하고 5월8일 하오8시에 「스티코프」가 방문, 「치스차코프」사령관으로부터 귀환명령을 받았음을 전달해 왔다고 밝혔다. 결국 허무한 대화를 예정에따라 끝낸 것 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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