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서 터뜨린「공공연한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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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서울시경 일부 교통경찰관들의「단속적발보고서」 조작사건은 언젠가 한번 곪아터질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한달 전 시경자체감사로 밝혀져 일단락 지은 후「대외비」사건으로 쉬쉬거리던 이번 사건은 경찰 스스로의 손으로 파헤쳐진 탓인지, 과거 어느 자체 사건 때보다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서울시경이 자체감사를 시작한 것은 9월 초순. 일부 서장급 이동 후 성북 경찰서장으로 부임한 김운관 중경이 업무감사에서 교통과 내근직원들이 상습적으로 단속보고서를 조작, 돈을 받거나 벌금을 횡령한다는 사실을 캐내고 이를 본국에 보고함으로써 비롯됐다.
당시 성북 경찰서의 교통과 행정처분담당자는 입건된 홍성하 순경으로 적발보고서 백지용지 69장을 시경교통과 윤영인 경사로부터 한 장에 1천원씩 주고 사와 이미 딱지를 뗀 보고서내용을 임의로 조작했다는 내용이었다.
시경은 감찰 계의 비밀감사로 사실임이 밝혀지자 1차적으로 적발보고서를 수령, 배분하는 책임을 지고있는 시경교통과 이순일 교통계장, 김영진 주임 등을 직위 해제시킨 후 관하 15개 경찰서 전반에 걸친 감사를 벌였던 것이다.
그 결과 홍 순경과 같은 업무에 종사하는 각서 교통과 행정처분담당 실무자들이 똑같은 수법으로 부정을 저지르고 있다는 결론을 얻어 형사과에서 본격적인 수사를 하게 되었고 6일 10명의 관련자를 입건하기에 이른 것이다.
1차 수사에서 입건된 윤모 순경은 지난2월부터 7월말까지 모두 다섯 장을 고쳤고, 조작에 필요한 용지는 시경 교통과에서 한 장에 1천원을 주고 구했다고 자백했다.
이 같은 윤 순경 등의 진술을 토대로 드러난 부정의 계보는 단순하면서도 광범위했다.
적발보고서의 분실·훼손·오기 등을 이유로 일선서에서는 시경에, 시경은 치안국에 각각 보충요청을 하여 타내는 형식을 갖추었으나 정식 절차를 밟지는 않았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관련자는 전부 지난2월∼7월 사이의 부정행위자로『김창동 경위(치안국)-윤영인 경사(시경)-일선경찰서 실무자』로 되어있고 용지 한장에 1천원이 공정가격이었다.
시경담당자인 윤 경사는 3차에 걸쳐 치안국 김 경위로부터 3백50장을 빼돌려 받고 15만원을, 윤 경사는 그것을 1천원씩 받아 35만원을, 일선실무자는 1천원에 사들인 후 사건에 따라 3천원∼5천원, 심한 경우엔 5만원 안팎까지 받아내고 횡령했다는 것이다.
특히 치안국 직원이 관련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69년 순찰대에서 이번 사건과 비슷한 보고서조작사건이 있은 후부터 치안국에서 직접 특수인쇄를 하기 때문에 위조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단속보고서조작은 지금까지 널리 알려진 비밀이었다. 사고를 내거나 딱지를 떼인 차주나 운전사들은 사건 때마다 으레 그들을 찾아 가 돈만 주면 큰 사건도 가벼운 것으로 적당히 처리되는 것을 불문율로 알고 있는 실정이다.
보고서조작은 간단했다. 백지용지만 구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인사사고는 경미한 접촉사고로 벌금이 많은 영업용차량의 합승행위는 가벼운 경 차 위반 등으로 얼마든지 고치는 방법을 사용했다.
최건환 서울시경국장은 사건전모를 밝히는 자리에서『이런 유형의 부정은 발본색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수사가 정부의 서정쇄신 책에 따라 시작되었다고 밝혔다.
사건전모가 발표되자 일부 교통경찰관들은『속 시원히 잘 터졌다』고 했다. 시경교통과 모 간부는『내가 이 자리에서 물러날 때 이번 사건이 어떻게 터졌는가를 털어놓겠으나 지금은 말할 수 없다』고 함축성 있는 표현을 했다.
경찰관사회에서도 황금방석으로 알려진 교통경찰관은 누구나 되기 어렵다. 연줄과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거기에다 행정처분담당자리는 누구나 탐내는 자리로, 경찰서장의 심복이 아니면 유지하기 어렵고 돈방석에 앉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 사건은 그런 노른자위에 철퇴가 내려진 것이다.
문제는 정작 근절되어야 할 악습이 지금까지 아무사고 없이 묵인되어 왔는가 하는데 있다.
입건된 K순경은『털어놓기 부끄러운 이유가 너무도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조작으로 생긴 돈은 혼자 유용하지 않은 점, 교통과 운영상 필요한 돈의 염출 방법으로 조작이 불가피한 때 등이 잦았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았다.
S경찰서 교통과 모 간부는『운전사들이 교통경찰관의 그런 약점을 이용하여 스스로 돈을 내밀어 함정에 빠뜨릴 때도 많다』고 그 책임이 전부 경찰에만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Y모 경정은『거절할 수 없는 권력층 등의 청탁을 받을 때나 동료들이 봐달라고 할 때 그런 수법을 사용치 않으면 담당자가 벌금을 물어야 될 판인데 그런 것을 가지고 문제삼을 수가 있느냐』고 항변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찰간부들은 이번 기회에『부탁 받거나 예산 외 운영비 염출을 해야하는 고충마저 덜어줬으면 좋겠다』는 의견들이었고 단속보고서 조작사건도 단순히 사복을 채우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백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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