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진 고장날 때까지 질주 … 불법 '칩 튜닝' 차 판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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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대구의 한 자동차 정비업소(카센터). 2L급 승용차와 데이터 전송선으로 연결된 노트북PC를 직원이 들여다보고 있다.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인 것처럼 꾸미고 기자가 다가가 뭘 하는지 물었더니 “엔진 성능을 바꾸는 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구체적 설명은 이랬다. “요즘 자동차는 ‘전자제어장치(ECU·electronic control unit)’에 의해 움직인다. 연료분사량을 얼마로 할지 등등이 ECU에 내장된 소프트웨어에 따라 결정된다. 그래서 소프트웨어를 바꾸면 자동차 성능이 달라진다.”

‘칩 튜닝’을 해 준다는 인터넷 광고. 자동차 전자제어장치(ECU)를 컴퓨터로 조작해 가속력을 증가시키는 등 엔진 성능을 높여 준다는 내용이다.▷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당시 카센터 직원은 “연료가 정상보다 엔진 안에 많이 뿜어지도록 해 자동차 가속이 훨씬 빨리 되도록 조작 중”이라고 했다. 그는 “시속 180㎞가 넘으면 엔진 속으로 연료가 뿜어지지 않도록 돼 있는 것을 풀어 최고 속도를 높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겉으로 봐서는 개조를 했는지 알기 힘든 신종 불법 자동차 개조가 번지고 있다. 겉모습을 보고 하는 단속 때문에 ‘부아앙~’ 굉음을 내는 커다란 머플러를 달고 다니기 힘들어지자 좀체 눈에 걸리지 않는 새로운 개조가 유행하고 있는 것. 이런 식의 개조는 단속반의 눈을 피해간다는 뜻에서 ‘그림자 개조’라 불리기도 한다.

 대표적인 게 ECU를 조작하는 ‘칩 튜닝(chip tuning)’이다. 반도체 칩 속의 소프트웨어를 바꿔치기한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주로 가속 성능과 최고 속도를 높이려는 목적으로 폭주족이 애용한다.

 엔진 옆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알코올 분사장치를 달기도 한다. 엔진 속에 연료와 더불어 알코올을 뿜어 출력을 높여주는 장치다. 겉모습은 일반 자동차와 똑같아 단속에서 잡아내기 힘들다.

 자동차 차체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개조 또한 폭주족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 운전석에서 버튼을 누르면 차체가 도로 바닥에 닿을 듯 내려간다. 무게중심을 낮춰 곡선구간에서 안정적으로 달리려는 용도다. 평소 도심에서는 차체를 정상 높이로 맞춰 놓기 때문에 단속반의 눈에 걸리지 않는다.

 누가 봐도 개조임을 알 수 있는 대형 머플러를 달지 않고 굉음을 내는 방법도 있다. 이른바 ‘가변 배기’다. 개조하면서 정상적인 배기장치와 촉매가 없는 배기장치를 각각 달아놓는다. 보통 때는 정상 배기장치를 쓰다가 폭주를 할 때는 조작 버튼을 눌러 촉매가 없는 쪽으로 배기가스가 나가도록 한다. 촉매는 오염물질을 거르는 동시에 소음을 줄이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촉매가 없는 장치를 선택하면 평소보다 훨씬 큰 배기음이 난다.

 이런 식의 자동차 ‘그림자 개조’는 대부분 배기가스 환경오염이나 소음기준치를 넘는 불법이다. 차량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 사고를 내기도 한다. 지난달엔 수도권의 한 도로 곡선구간에서 시속 100㎞가 넘는 속도로 달리던 승용차가 미끄러지면서 도로 바깥쪽 가드레일을 들이받아 운전자 M씨(35)가 다쳤다. 차체 높낮이 조절 개조를 한 뒤 과속 질주를 하다 사고가 난 것이었다. 현대자동차 측은 “엔진이 과열돼 수리센터에 들어오는 차량이 있는데, 그중 일부는 엔진 성능을 높이려고 칩 튜닝을 한 차량”이라고 전했다.

 이런 식의 자동차 그림자 개조는 카센터 등지에서 알음알음 이뤄진다. 개조를 원하는 이들은 주로 대형 검색포털에서 정보를 얻는다. 네이버에서 ‘가변 배기’라고 치면 ‘전문’임을 주장하는 전국 각지 업소 276곳의 목록이 뜰 정도다.

 그림자 개조는 원칙적으로 자동차 검사에서 적발돼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모두 피해나가는 실정이다. 개조를 해준 카센터가 애프터서비스(AS)를 해주기 때문이다. 차량을 개조 전 상태로 되돌려 놓고 검사를 받은 뒤 다시 개조해 차량 주인에게 되돌려주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카센터는 소정의 수고비를 받는다.

 차량 개조 관련 제도를 운영하는 국토교통부 측은 “변종 그림자 개조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단속이 미치지 못하는 게 사실”이라며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단속 인원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 곧 그림자 개조를 잡아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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