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재배 → 가공 → 유통 … 귀농 70대, 연 7000만원 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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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횡성군 공근면의 삼배영농조합법인이 만드는 김치 ‘어사眞청정김치’ 공장. 주민들이 모여 직접 재배한 배추로 김치를 담그고 있다. [사진 농림축산식품부]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고시리 마을. 해발 1200m 태기산 신대계곡에서 흘러내린 1급수가 갑천이란 이름으로 지나가는 이 마을 84가구 중 30%가 귀농·귀촌 가구다. ‘신(新) 386’ 세대 귀농인 신현호(76)씨는 귀농 11년차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건축업을 하다 은퇴해 2002년 이곳에 정착했다. 대지 660㎡(약 200평), 건평 112㎡(약 34평)의 단층 주택을 짓고 집 바로 옆에 9900㎡(약 3000평) 면적의 밭을 일궜다. 이곳에 더덕과 고추·들깨·참깨·콩·보리·마·초석잠·흑임자·만삼 등을 재배한다.

귀농을 앞두고 관련 학교를 다니고 인근의 횡성군농업기술센터에서 영농교육을 받은 게 큰 도움이 됐다. 귀농 3년차인 2005년에는 직접 재배한 작물을 제조·가공하는 일도 시작했다. 역시 기술센터에서 도움을 받았다. 그는 인터넷 귀농카페에서 ‘태기산 농부’란 이름으로 활동하며 참기름·미숫가루·들깨가루·단호박가루·마환 등 자신이 만든 농산물 제품을 판매해 연 7000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처음에는 기술센터에 있는 가공시설을 이용했지만 2007년부터는 집 바로 옆에 15평짜리 가공실을 마련해 재배와 제조·가공·판매를 모두 하고 있다. 매년 여름이면 마을을 찾아오는 손님을 맞아 집 앞 개울에서 물고기 잡기 등의 농촌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과 청일면 일대 마을은 신씨처럼 6차 산업을 하는 농부들이 적지 않다. 6차 산업은 ‘1×2×3=6’이란 뜻에서 만든 조어다. 농산물을 직접 재배하는 1차 산업과, 이를 제조·가공하는 2차 산업, 다시 이를 판매하거나 관광 등 별도의 서비스산업 영역으로 확대하는 3차 산업까지 다 아우른다는 뜻이다. 특히 횡성군 공근면 일대 7개 마을 ‘금계권역’은 친환경농업과 계약재배를 바탕으로 한 6차 산업이 성과를 올리고 있는 지역이다. 생협 한살림의 최초 발상지가 바로 이곳이다. 1차 산업으로 127ha의 논에서 친환경 벼농사를 짓고, 배추농사도 크게 한다. 2차 산업으로는 직접 재배한 배추로 김치나 절임배추를 만들어 ‘어사眞청정김치’라는 브랜드로 판매한다. 친환경쌀로 만든 누룽지공장도 있다. 쌀 20㎏ 한 포대는 6만원에 팔지만 누룽지는 3.6배의 가격에 팔린다. 횡성한우라는 브랜드로 유명한 이 지역 한우는 3차 산업의 견인차다. 이 지역 한우를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은 물론 식당에서 손님이 직접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게 했다. 농어촌 인성학교와 체험마을도 이 지역 대표 상품이다.

 고석용 횡성군수는 “금계권역을 중심으로 횡성군 전체에 횡성한우 전문점이 238개나 있지만 주말이면 번호표를 나눠 주고 기다리게 해야 할 정도로 외지인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횡성군의 ‘농촌 6차 산업화’에는 농업기술센터의 역할이 컸다. 기술센터에서는 농특산물 가공과 창업기반 조성을 위해 영농기술 외에 창업교육도 하고 있다. 센터 내에는 각종 농산물 엑기스 추출기와 환약 제조기, 잼 제조기 등 68가지 장비를 마련해 농가에서 농산물을 스스로 가공해 포장·판매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횡성군농업기술센터 고창덕 소장은 “경험이 부족한 농민들이 처음부터 직접 제조와 가공을 하기는 쉽지 않다”며 “일정 기간 센터를 통해 교육을 받고 시설을 이용하면서 농민이 중소기업 사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일에는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이곳 횡성군 금계권역을 찾았다. 6차 산업화와 일자리 창출에 대한 농촌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발전방안을 찾기 위해서였다.

 이 장관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과 수입쌀 관세화 유예 종료를 앞두고 농업이 여러모로 어려운 게 현실이지만 생산을 가공·유통·서비스와 연결하는 6차 산업을 통해 농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면 멀지 않은 장래에 농업의 희망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횡성=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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