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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사회 갈등 과제 선정 넉 달 총 66건 중 74%는 아직 손도 못 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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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호 01면

지난 7월 3일, 정부 과천청사 미래창조과학부 회의실.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과 염홍철 대전시장, 오세정 기초과학연구원장은 기초과학연구원을 시 소유인 대전 엑스포 과학공원에 입주시키는 내용의 양해각서(MOU)에 서명했다. 그러자 몇 시간 뒤 대전·충북 지역 민주당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협약은 과학비즈니스벨트를 빈 껍데기로 만드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충북경제정의실천연합 등 시민단체들도 “정부가 MOU를 체결하며 과학벨트 수정안을 밀어붙이면서 기초과학 연구에 최적화된 단지를 만들려던 국책사업을 지역발전 사업으로 전락시켰다”라고 비판했다. 미래부와 대전시의 MOU 체결로 오히려 사회적 갈등과 대립만 증폭된 셈이다.

하지만 정부의 판단은 달랐다. 새누리당 홍지만 의원과 민주당 이학영 의원이 2일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로부터 제출받은 ‘갈등 과제 추진 현황’에 따르면 정부는 과학벨트 문제를 ‘이미 갈등이 해소된 사안’으로 분류해 놓은 것으로 드러났다.

박근혜정부는 사회적 갈등을 범정부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해 지난 6월부터 66개 주요 갈등 과제를 선정해 발표한 뒤 관리해 왔다. 그런데 이 중 6개 갈등 해소 사안에 논란이 여전한 과학비즈니스벨트를 포함시킨 것이다. 정부는 일부 주민들의 반대가 계속되고 있는 제주 민·군복합항 건설 문제도 “갈등이 해소됐다”고 규정했다.

중앙SUNDAY가 두 의원으로부터 입수한 정부의 현황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정부는 지난 넉 달 동안 66개 갈등 과제 가운데 49개 과제(74.2%)에 대해 손도 대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17개 과제도 ‘연내 해결’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갈등 해결을 위한 움직임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국책사업을 둘러싼 갈등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팔짱만 끼고 있는 모양새다.

이에 대해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모든 과제에 대해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17개 집중관리 과제의 연내 해결도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는 지난 6월 갈등 과제를 발표할 당시 “현재 진행 중인 갈등 과제는 가급적 연내에 해결할 방침”이라고 밝혔던 것과 상반된다.

정부의 갈등 처리가 부실한 원인으로는 먼저 해당 부처들의 탁상행정이 지적된다. 과학벨트 부지 매입건의 경우 국무조정실은 미래부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부 관계자는 “부지매입비를 둘러싼 갈등에 대해 정부와 지자체 간 합의로 해결방안을 찾은 것”이라며 “지역 여론조사에서도 50~70%가 과학벨트 수정안에 찬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민주당 이상민(대전 유성) 의원은 “중요한 국책사업인데도 MOU 체결 과정에서 과학 전문가나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전혀 듣지 않았다.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수정안을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갈등 해소’로 분류한 제주 민·군복합항 건설도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의견을 조율했다는 것을 빼곤 다른 구체적인 근거가 없다. 고권일 제주해군기지반대대책위원장은 “의견조율만으로 갈등이 끝난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주무부처인 국방부 관계자조차 “국무조정실에서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 계속 갈등 과제로 두고 모니터링해야 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진주의료원 폐쇄, 반구대 암각화 보존 문제 역시 현장에선 해당 기관과 주민 사이에 갈등이 이어지고 있지만 국무조정실은 ‘갈등 완화’ 사안으로 분류해 놓고 있다.

이에 대해 홍지만 의원은 “관료나 공무원들끼리 모여 갈등이 해소됐다고 공론해 봤자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이해당사자들과 직접 대화하면서 실질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성한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무조정실의 인원도 적고 전문성도 떨어지는 현실에서 모든 부처의 갈등을 관리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며 “청와대가 힘을 실어줘 인력과 예산을 늘려주되 갈등 관리에 실패하는 해당 부처에 페널티를 부여하는 방안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관계기사 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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