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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의 교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뜻밖에 판문점의 북쪽에서 나타났던 일본 A신문 편집국장은 27일자 그 A지의 1면「톱」 기사에서 김일성의 생생한 시국관을 보여 주고 있다. 김 자신의 독백 아닌, 외부의 질문에 의해 답변이 나온 것은 특히 흥미 있다. 더구나 자유세계의 일원인 일본기자에 의해 질문은 던져졌다.
김의 시국관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미·중공의 화해 무드에 관한 견해이다. 『중공이 닉슨 방문을 수락했다고 해서….』김일성은 이 말을 이렇게 끝맺었다. 『…이것이 중공의 사회주의 노선포기를 뜻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이 말은 5년 전, 아니면 10년 전, 그리고 그 보다 훨씬 이전에도 할 수 있음직한 말이다. 마르크스주의의 교조, 측 그 궁극적인 목적은 자본주의가 무너지고 그 위에서 전차계급이 지배하는 세계를 세우는 것이다. 한마디로 「세계의 적화」에 있다.
자본주의 국가들은 국외에서는 원료·시장을 서로 쟁탈하여 반목·대립, 결국 좌충우돌할 것이다. 국내적으로는 지배배급과 피지배계급의 계급투쟁이 격화할 것이다. 바깥의 전쟁, 안의 혼란은 혁명을 일으키게 하고야 말 것이다. 자본주의는 이렇게 해서 자괴하고 만다. 이것은 역사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후 자유세계의 역사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공산세계는 분열과 혼란을 겪고 있을 뿐이다.
자본주의 세계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독단처럼 반목·대립 아닌 자기 수정적 노력으로 화해와 공존을 모색해온 것이다. 새로운 세기를 예측하려는 사람들이 성급히 탈 이데올로기를 외치는 것은 그런 유연한 역사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국 김일성이 이데올로기의 독선적인 유아독존을 고집하는 것은 그가 얼마나 구태의연한 교조주의의 맹신자인가를 스스로 보여준 것이다. 이들은 새로운 세기의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끊임없이 도전하려는 자세를 굳히고 있다.
그들의 목적 포기나 수정은커녕 오히려 수단·방법 등 그 전략만의 수정으로 세계의 적화혁명을 더욱 교묘하게 시도하려고 한다.
공산주의의 목적추구는 여하한 상황에서도 변함이 없다. 다만 시대적인 요구와 조류에 따라서 그 전략·전술을 달리할 뿐이다. 오히려 우리는 김일성의 시국관속에서 동서의 대립은 더욱 심화되는 듯한 불행을 엿보게 된다고 최근 미·중공의 대화 이후, 서방은 공산주의의 미소짓는 얼굴에 홍소마저 띠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목적과 수단을 분별할 때 그 홍소는 눈 녹듯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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