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대학생 칼럼

모욕과 불친절 … 좋은 고용주가 돼 주세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정우성
서울대 경영학과 4학년

얼마 전 단순노동을 하는 아르바이트를 몇 달 했다. 2시간 과외 수업을 하면 받는 돈을 벌기 위해 하루 종일 일했다. 대학에 다닌다고 말하기 곤란해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고 둘러댔다. 본의 아니게 ‘위장취업(?)’을 했던 셈이다.

 특급 호텔, 대형 마트, 택배물류센터 등에서 일을 했지만 통장에 찍힌 것은 인력공급업체의 이름이었다. 그들은 중간에서 전화통화만 하면서 인건비의 일부를 수수료로 챙겼다. 약속한 일당도 정확히 주는 경우는 드물었다. 각종 공제 명목을 붙여 꼭 몇 천원씩 빼고 줬다. 대형 업장일수록 책임 문제를 피하고자 일상적으로 대규모의 고용마저도 간접적인 형태를 취했다. 그로 인해 피고용인의 실질적인 소득이 줄어들고, 중개업체가 과다하게 수수료를 받는 문제를 일으켜도 상관없다는 태도다.

 적은 돈과 힘든 몸보다도 어려웠던 것은 모욕적인 대우와 일상적인 불친절이었다. 식사 시간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 첫 출근 날인데도 어설픈 모습을 보이면 뒤통수에는 짜증 섞인 거친 말이 날아들었다.

 그중에서도 한 업체는 유독 불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대기업 계열사인 그곳에서는 유독 단정한 머리와 정장용 구두를 갖출 것을 수차례 당부했다. 사진까지 찍어서 보내주고 근무를 하게 됐다. 갔더니 근무 시작 전에 전화기와 지갑을 맡겨놓으라는 것이었다. ‘분실 위험’이 이유였으나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그 업체에서 한 일은 창고에서 설거지를 마친 식기를 행주로 닦는 일이었다. 쉬지도 못하고 몇 시간째 서서 식기를 닦으려니 온몸이 뻐근했다. 의자를 가져다 앉았더니 “형 의자에 앉으시면 안 돼요”라고 옆에 있던 고등학생이 말해주었다. “뭐 어때” 하며 그대로 있었더니 책임자가 달려와서는 훈계와 함께 일으켜 세웠다. 그곳은 다른 곳과 달리 유독 아르바이트생의 대부분이 미성년자였다. 식사 인심이라도 후한 게 외식업체의 기본인데 이곳에서는 그렇지도 않았다.

 ‘뭐 이런 곳이 다 있나’ 하며 집으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평생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좋은 머리로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진심으로 궁금해하던 사람들을 보며 느낀 곤란함도 그 부끄러움 때문이다. 인적자원관리나 조직행위론 같은 전공 과목 내용은 내 머릿속에 희미하지만, 직접 몸으로 겪은 현장의 경영학은 가슴 속에 알알이 박혀 있다. 기업의 사회공헌은 거창한 기부가 아니라 좋은 고용주가 돼 좋은 직장을 만드는 것이 가장 기본 아닐까. 그렇게 종업원을 배려하는 좋은 기업이 더 성공하는 것이야말로 좋은 사회를 만드는 길이다.

 며칠 전 인턴 모집 공고를 보다가 예의 그 대기업의 모집 공고를 보았다. ‘자격조건’은 이렇게 쓰여 있었다. ‘기독교 문화에 열린 마음을 가진 분’.

정우성 서울대 경영학과 4학년

◆대학생 칼럼 보낼 곳
페이스북 페이지 ‘나도 칼럼니스트’
(www.facebook.com/icolumnist)
e메일 opinionpag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