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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침략」무방비…불평등 협정|한·일 공업 소유권 협정의 문제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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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제5차 한일 정기 각료 회의에서 한국은 양국간에 공업 소유권 협정을 맺기로 양해하고 실무자 회의를 개최하도록 합의한 바 있다. 이에 대하여 국내 생산 업계는 일본 기술의 침공으로 인하여 모든 공장은 부품 구석구석에까지 걸려 있는 막대한 로열티 때문에 문을 닫게될 것이라는 극단의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주 대한상공회의소 주최로 열린 국내 공업 소유권 보호 세미나에서의 이채호씨(변리사·초대 특허 국장)의 발언 내용을 추려 본다.
원래 기술 격차가 심한 나라 사이에는 낙후된 쪽에서 자국의 산업 발전과 보호책으로 공업 소유권, 즉 특허권 협정을 맺지 않는 것이 상례다.
특허권의 국제 조약은 19세기 말 유럽 제국이 후진국에 대한 일방 통행적인 경제 침략책으로 비롯되었다. 즉 후진국으로 하여금 자기들의 기술을 모방하거나 그대로 쓰지 못하게 못 박아 부득이 자기들 상품을 수입하게끔 구속하려는 것이다.
이 방면에 어두웠던 브라질은 이미 자국이 맺은 국제간의 공업 소유권 제도를 무효로 해 줄 것을 유엔에 제소했고 인도 역시 정부 및 정부 관계 기관은 타인의 특허권을 임의로 실시할 수 있게 하고 로열티를 제한하도록 법개정을 단행하여 선진국의 주목을 끌었다. 파리 연맹 협약 사무국이 모델 특허법안을 성안하여 이를 나라에 제시했으나 오히려 비판을 받았을 뿐이다.
자국의 공업을 개발하려는 소위 개발 도상국가들은 한결같이 특허권의 국제 협약을 거부하고 있다. 다만 영 연방국과 과거의 식민지 국가들만이 영국과 체결했을 뿐이다. 이들 나라는 미개국으로서 기술 경쟁을 포기하고 자유로운 상품 수입을 하는 나라들이다.
하물며 일본으로부터 2억1천만달러의 장기 저리의 공공 차관과 제3차 5개년 계획에 대한 협력을 대가로 협정을 체결함은 그 몇 10배의 국가적 손실을 초래할 것이다.
특히 일본은 지리적 인접성 등 때문에 산업 기술이 더 고도화한 미·서독 등 현재 협정을 맺은 나라보다도 기술이 들어오기가 쉽다. 70년 현재 외국의 도입 기술 중 68%가 일본의 기술이다
일본의 모 회사와 기술 제휴한 어느 선풍기 회사는 몇 달마다 바뀌는 설계와 부품에 로열티를 지불하느라고 울상을 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 기술제휴를 하면 그만인 줄 알았지만, 치열한 경쟁으로 인하여 시시각각 모형이 바뀌고 어제의 기술과 부품이 곧 새것으로 대치되는 통에 그때마다 그들의 것을 사야했던 것이다.
2차 대전 후 전승국은 패전국에서 일체의 공업 소유권을 제각기 빼앗아가고 그 밖의 판상은 물지 않을 만큼 현대의 전쟁은 바로 기술 전쟁이다.
일본에서는 매년 약 30만건의 공업 소유권 출원이 있고 미 처리 건수만도 90만건을 넘는데 비하여 우리 나라는 2만건 미만, 그나마 일본 것의 모방 아니면 일부를 변형한 실정이다.
일본 같은 고도의 기술을 가진 나라도 70년의 경우 외국 로열티 지불액이 3억6천8백만달러에 달한다.
만일 일본의 특허권이 우리 나라에서 평등한 권리를 행사할 경우 우리의 생산 업체는 손발이 묶이어 기계는 멎고 말 것이다.
이미 공고된 일본의 특허는 국내에서 효력을 상실한다고 하나 오늘의 기술은 며칠이 못 간다. 앞으로 출원되는 새로운 특허에 의하여 구속당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대기업 및 중소기업 전반에 파급될 경제적 손실을 생각할 때 국가의 체면이나 국제 정신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등한 국가간에서나 따질 문제다.
한·일간의 무역 역조 현상을 볼 때 특허 협약에 우리측이 응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의 상품이 상륙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한 투자 환경을 정비하고 원활한 경제 협력 여건을 조성한다는 명목은 누구를 위한 명목인가를 확인해야 한다. 우리의 기업인이나 정부 당국은 너무도 공업 소유권에 대한 인식이 없다. 「코카·콜라」가 국내 청량 음료수 업계를 휩쓸었고 우리 국민은 음료 하면 곧 「코카」를 연상하게끔 바보가 되었다. 전 세계에 수백 종의 아스피린이 있는데 우리는 「바이엘·아스피린」을 먹어야 한다는 멍청이가 된 것이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서 첫째 우리 나라의 기술 정책을 확립해야 한다. 적어도 기업과 국민의 전 두뇌를 기술 개발에 동원할 수 있는 다이내믹한 정책이 필요하다. 기술 부재의 풍토, 이대로는 일본 기술의 홍수를 막을 수도, 이용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둘째 특허법의 개선이 우선되어야 한다. 실시하지 않는 권리를 보호하는 등의 국가 이익에 위배되는 특허권이 있을 수 없다. 외국 특허는 그 나라의 이익에 관련될 때 비로소 보호해야 할 것이다.
세째 특허국의 인사 등 수용 태세의 정비다. 특허국은 상공부의 1개 외국으로서 5년 이상의 특허 실무 경력자가 4, 5명에 불과하다. 또한 심사관·심판관의 자격 규정이 없다. 끝으로 한·일 협정 문제는 기술의 생리를 아는 전문가가 다루어야 할 것이다. [이채호<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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