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십자사 예비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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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산가족을 찾기 위한 남북적십자 예비회담이 20일부터 판문점에서 열린다. 대한적십자사는 16일에 있었던 예비회담 대표 명단교환과 때를 같이 하여 회담진행을 지원하기 위한 판문점 전방회담사무소를 개설, 회담진행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본 회담개최를 추진하기 위해서 열리는 예비회담은 ⓛ본 회담의 장소 ②본 회담의 개시일자 및 회담기간 ③본 회담에 참석할 대표명단의 확정 ④회의진행의 양식 ⑤본 회담에 상정할 의제의 선정 등 주로 형식적인 절차문제를 다룰 것이기 때문에 별로 까다로운 문제가 생겨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본 회담의 장소를 어디로 정하는가, 본 회담의 기한을 얼마로 잡으며, 본 회담의 의제로서 무엇 무엇을 선정하는가 하는 문제는 본 회담의 진행과, 나아가서는 남북한 관계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므로 대한적십자사 측으로서는 매우 세심한 검토와 치밀한 복안을 짜 가지고, 이를 예비회담에서 관철시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대저 공산주의자들은 비정치적인 모든 회담까지도 이를 정치회담으로 변질시켜, 공산주의 선전무대로 삼는 명수들이다. 따라서 우리가 크게 경계하지 않으면 안될 일도 바로 이점인데, 대한적십자사 측은 공산주의자들이 본 회담을 정치회담으로 변질시켜 이를 악용할 수 없도록 예비회담에서부터 쐐기를 박아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분단 4반세기만에 처음 열리는 이 적십자회담은 남북이 대화를 가지고 긴장을 해소시켜 나아갈 수 있는가의 여부를 결정하는 「테스트·케이스」이기 때문에, 국내·외의 비장한 주목거리가 돼 있다. 가족 찾기 운동은 「이데올로기」나 권력대립 이전의 문제이기 때문에 남북이 서로들 충분한 성의를 보인다고 하면, 남북간에 형성된 가혹한 대립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어떤 해결의 실마리를 불잡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 우리의 신념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시점에서도 회담의 전도에 대해 그다지 낙관적 기대를 걸지 아니하는 소이는 북괴 측이 이 회담의 착실한 진전과 결실을 위해 얼마만큼의 성의를 보일까 하는 의문이 크기 때문이다.
남북적십자회담의 개최가 대화에 의한 긴장해소의 최초의 시도이기 때문에 우리 국민 가운데는 감상주의에 사로잡혀 지나친 기대를 걸고, 마음이 들떠 있는 자들이 결코 적지 않다.
긴장해소의 시도가 반드시 긴장의 현실적인 완화를 의미치 않는다는 것은 적십자회담을 수락한 북괴가 계속 무장공비를 침투시켜 우리 국가사회를 파괴하기 위한 도발을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따라서 만약에 우리국민이 적십자사를 통한 남북대화에 너무 큰 기대를 거는 나머지, 마음이 들뜨기 시작한다면 북괴는 바로 이 간극을 이용하여 대한민국을 내부적으로 파괴하고 전복하기 위한 침략행위를 대대적으로 전개하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현명한 국민은 25년이란 장구한 세월에 걸쳐 지속돼온 남북간의 적대적 대립이 다소라도 완화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일이 걸린다는 것을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대한적십자사 측도 이러한 전망 아래서 끈질긴 인내를 보여주리라 믿거니와, 국민들도 침착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이 회담의 진전을 주시해야 할 것이다. 모든 국민은 긴장해소, 평화공존 등을 지향하려는 우리의 꿈과 실지로 조성되고 있는 가혹한 현실을 혼동, 착각해 가지고 경거망동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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