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분규의 폭력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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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진 상사 「파월 기술자 미 지불 임금 청산투쟁위원회」회원 2백여명은 15일 대낮 서울한복판에 있는 KAL 「빌딩」으로 몰려가 체불 노임 1백49억원을 지불하라고 요구하면서 난동을 벌이다가 5백여 경찰관과 대치 끝에 5시간만에 해산된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그들은 지난 66년부터 월남에 파견되어 「퀴논」지구에서 기술자로 일하다 귀국했는데, 한진 상사 측이 체불하고 있는 노임이 원화로 환산하여 1인당 3백73만여원 꼴로서 결국 4천여명 분의 청구액은 도합 1백49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체불노임의 내용을 보면, 자신들이 일한 21개월간의 누적된 통상임금 미불금을 비롯하여 연장수당·야간수당·주휴수당·월휴수당·연휴수당 등 중에서 근일부를 받지 못한 것을 합산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투쟁위원회」측의 주장에 대해 「한진 상사」대변인은 『한진으로서는 쌍방간의 계약대로 모든 조건을 이행했고 법정 임금대로 모든 지불을 끝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제기한 민사소송에서도 피고 측 승소판결이 내려져, 이 이상 체불 노임 운운이란 말은 하지 못하게 되자 폭력으로 난동을 부린 것』이라는 취지의 해명을 하고 있다. 이처럼 파월 기술자 측과 회사측의 주장은 서로 근본적으로 어긋나고 있기 때문에 제삼자로서는 과연 그 어느 쪽의 주장이 옳은 것인가에 관해 경솔하게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것이 실정이다.
다만 우리로서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것은 납세액으로 보아 한국 제1위를 차자하는 대 재벌산하기업체에서 극한적인 노사투쟁이 폭발적으로 일어나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다수의 외국인까지 출입하고 있는 KAL 「빌딩」이 일종의 무법 천지화 함으로써 선장의 제삼자들이나 많은 시민들이 적지 않은 손해를 입었고, 또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국내외에 걸쳐 좋지 않은 심리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노사분쟁이 이처럼 피고용자 측이 극한~ 인 실력 투쟁으로까지 「에스컬레이트」하게된 그동안의 경위에 대해서 잘 아는바 없다. 그러나 아마도 피고용자 측은 받아야하겠다고 주장하는 체불 노임을 받기 위해 끈덕진 절충을 거듭하고 법적 구제까지 요구했는데, 그것이 절망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직접 폭력에 호소하게 된 것이 아닌가고 추측된다. 법규 외 형식 논리적인 적용이나 해석, 흑은 법에 의한 사회질서의 동결이 반드시 사회정의 구현의 요구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법원이 노사관계 소송을 공정히 다루었다 하더라도 패소로 말미암아 손해를 본측이 폭력에 의한 구제운동을 벌인다는 것은 선진 사회에서도 가끔 생겨나는 현장이다.
이런 각도에서 우리는 그 경위야 어찌됐든 피고용자 측의 실력행사가 폭력·난동으로까지 변모한 것을 크게 유감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또 한편 법이나 법의 운동에 혹은 사회정의의 요구에 부합되지 않은 점이 없었던가 하는데 대해서도 일말의 의문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한진」사건은 이미 법적으로는 승패가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피고용자 측이 극한 투쟁을 벌였던 것이니 앞으로 남은 것은 정치적인 수습을 모색하는 길뿐이다.
이 사건이 터지자 마자 노동포장은 이 사건이 노동청소관 밖이라고 재빠르게 해명하여 세인의 빈축을 샀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설령 노동청이 적극 개입할 의사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정치풍토로 보아서, 이 관청이 그토록 어려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우리는 이 문제가 내포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성에 비추어 국회가 「특별소위」를 구성해 가지고 이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고, 시비곡직을 가려낸 후 노사쌍방에 대해서 원만한 타협을 짓도록 권고해 주는 것이 아마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닌가고 생각한다.
한국경제는 내외의 여건 변동으로 지금 중대한 시련기에 들어섰다. 이런 시기일수록 노사의 협조가 있어 난국의 극복을 시도해 나아가야 하는데 이번 「한진」사건처럼 노사의 대립이 원시적으로 폭발하여 사회불안의 씨를 뿌린다는 것은 국가적 견지에서 슬프고 심히 우려할 만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격동기를 뚫고 나가는데 있어 노사쌍방은 저마다 힘에 겨운 애로를 뚫고, 이를 효과적으로 극복해 나아갈 방안을 함께 찾아야 한다는 것은 구차스러운 선명을 필요치 않는다.
그러나 그 애로를 뚫고 나가는데 있어서 이방이 타방의 위산이나 생존권을 침해하거나 혹은 공공의 안녕 질서를 파괴하는 이기적이고 원시적인 폭력 행동을 취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자본제하의 자유 경쟁이 무자비한 약육강식 현상을 결과하는 것도 단호히 반대하지만, 생존권을 충족키 위한 투쟁이 우리 사회를 무정부상태로 몰고 가는 것도 엄중 배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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