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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코리아를 보는 삐딱한 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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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윤창희
경제부문 기자

작은 외자유치도 한줄기 ‘빛’으로 다가오던 시절이 있었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 풍전등화(風前燈火)의 국가에 투자하는 외국인에게 국민은 환영의 박수를 보냈다. 곳곳에서 투자 소식이 들렸다. 통화가치가 폭락한 한국은 그들에겐 좋은 투자 기회였고, 그 덕에 우리도 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 윈윈 게임이었다. 당시 산업부 초년병이던 기자에게 “1억 달러 이상 외자유치면 무조건 주요 기사로 쓰라”는 데스크 지시가 내려왔던 기억도 난다. 지금 기준으론 큰 기사가 안 되는 사안이었다.

 벼락처럼 와 44일째 이어지고 있는 이번 바이(buy)코리아를 우리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두 가지 유형이 많은 것 같다. 우선 ‘우쭐형’. 이렇게 튼튼한 펀더멘털을 가진 한국에 왜 이제야 왔느냐는 시각이다. 경제 관료를 만나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넉넉한 외환보유액, 낮은 단기외채비율, 안정적인 경상수지 흑자….

 더 많은 건 ‘삐딱형’이다. ‘외인들만의 잔치’라느니 ‘개인들은 소외’됐다는 식으로 바이코리아를 본다. 한국시장이나 개인투자자를 이용해 한몫 챙기려는 외인들의 음험한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의심이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허튼짓으로 시장을 교란했던 몇몇 사례가 떠오른다. 과거 바이코리아에 뒤늦게 편승했다가 상투를 잡은 개인투자자들의 교훈도 잊어선 안 된다. 이번 바이코리아도 도대체 왜, 누가 주도하는지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경계심을 가질 필요는 있다.

 그렇다 해도 이 대목에서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게 있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반(反) 외자정서다. 주식시장만 해도 그렇다. 주식시장은 누가 이익을 보면 반대편이 손해를 보는 구조가 아니다. 제로섬 게임인 파생시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외인들이 한국 주식을 쓸어 담는 동안 코스피지수는 2050을 넘었고 국내 투자가들은 ‘흐뭇하게’ 주식을 팔아 마음 고생을 끝냈을 것이다.

 금융 부문보다 반외자 정서가 더 심각한 건 실물 분야다. 외국 기업인들을 만나보면 한국에서 기업하기 어려운 점으로 세금이나 인프라가 아닌 반외국 정서를 꼽고 있다. 월등한 지식과 자본으로 한국을 등쳐 먹고 나갈 것이라는 묘한 피해의식이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진보 성향의 노무현 전 대통령조차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려면 반외자 정서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한 적이 있다.

 최근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외자유치에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영국은 이슬람 자금 유치를 위해 서방국가에선 처음으로 수쿠크(이슬람채권)를 발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는? 외국인들의 직접투자(FDI)가 올 들어 10% 이상 줄었다. 굵직한 외국인 투자가 이뤄진다는 뉴스는 본 기억조차 가물하다. 이런 외국인 투자 부진이 구조적인 것인지, 혹시나 외국 자본에 대한 편견 때문은 아닌지 한번쯤 짚어볼 일이다. 15년 전 작은 외자유치 소식에도 박수를 쳤던 그때의 마음으로 말이다.

윤창희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