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잃은 천재>
한국이 낳은 두 번 째의 유화가 김관호 씨의 명성을 내가 의식하기는 동경미술학교에 입학한 뒤였다. 1학년「데상」을 가르치는「나가하라」교수는 나에게 김관호를 아느냐고 물으면서『3학년 때까지도 잘하는 줄 몰랐는데 갑자기 늘어 두각을 나타내더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를 직접 대하게 된 것은 10년 뒤의 일이다.
1928년 가을「파리」에서 귀국해 봉산고향집에 머물러 있는데 하루는 평양에서 왔다는 20세 남짓한 젊은이 셋이 기별 없이 찾아왔다. 까닭인즉 평양에「삭 성회」라는 서양화동인연구소가 있는데 나를 지도선생으로 모시러왔다고 무턱대고 졸라댔다. 물론 초빙 료가 없음은 말할 나위가 없지만 선생이나 연구생이, 피차 의욕과 열의로써 뜻만 맞으면 다 되던 시절이다. 나는 반년동안 평양에 가 있었다. 연구생은 2O여명. 지금 한국에는 현역화가로 남아있는 사람이 없지만 그때 김관호 씨의 아들이 가장 촉망되는 학생이었다. 필자가 부전자전이었나 보다. 그런데 그는 1935년께 서울에 와 있다가 자살해 버렸다.
삭 성회는 김관호 씨가 만든 것인지 혹은 그의 영향으로 생긴 것인지 분명치 않으나, 어쨌든 그는 연구소에 종종 들렀기 때문에 비로소 만나게 된 것이다. 그는 그때 화필을 던져버리고 목재상을 했다. 그림얘기만 나오면『난 붓대를 놓은 지가 오래돼서…』하고 단서를 붙이는 게 상례였다.
그는 평양부호의 가정에 태어나 서울에서 중학을 마치었고, 처음에 공업을 배우려고 했는데 숙부가 허락하지 않아 도리어 그림공부를 하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동경유학에서 돌아오자 그는 평양에서 대대적인 갈채를 받으면서 개인전을 열었다. 출품된 50점의 작품은 대개 고장인근 풍경화들인데 평양의 명사들이 사가고 때로 주문도 더러 있었다. 이어 그는 모교로부터 모란 대 풍경을 그려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그것은 일본의 문관일동이 황실에 바치기 위해 일제의 영토과시(일본·한국·만주·대만·「사할린」포함) 풍경화를 제작하는 일련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그가 1920년대에 얼마나 작품 제작을 했을 지는 의문이다. 졸업하자 곧 평양에 내려가 있었기 때문에 의욕도 없고 자극도 받을 수 없으리라. 고작해야 초상화. 시류가 유화로서의 풍경화는 적은 때이고 수요도 별로 없기 때문에 인물을 주로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남의 초상화만 그린다는 것은 그 자신 내키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는 체격이 좋고 풍채가 의젓했다. 젊어서는 귀공자「타입」이었겠으나 내가 만났을 때는 호걸다운 데가 있었다. 원래 애주가여서 술을 끊었다 면서도 가끔 요릿집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 뒤에도 더는 그의 신작을 볼 수가 없었다. 말하자면 사회의 촉망을 받은 김 화백은 당시 우리 나라의 사회적 여건으로 말미암아 빛을 반짝하다가 그만 사그라진 천재이다. 그리고 해방 이후에는 남북분단으로 소식을 알 수 없다.
김 화백과 함께 얘기돼야할 작가는 한국인으로 세 번째의 양화가 유방 김찬영 씨이다. 역시 평양갑부의 아들로 처음엔 명치대학법과에 입학했으나 천성이 안 맞아 미술학교로 옮겨 양화를 배운 사람이다. 그는 내가 도일하기보다 1년 앞서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했고, 귀국 후에는 화단활동을 안 했던 탓으로 그리 접촉이 없었다. 유방은 요즘 미국에 가 있는 양화가 김병기씨의 부친. 그의 미술에 대한 뜻은 아들에게 물려주고 만 셈이다.
그 대신 그는 문학에 재능과 관심이 많아 동경과 서울에서 발행된 잡지에 문예물과 평론을 기고하고 있었다. 1915년께 에는「학지광」에 기고가 노릇을 하고 20년대 초부터는 새로이 건축에 관심을 보인다. 건축은 그때 더욱 미개척 분야이므로 한국인으로서는 이렇다할 건축가가 없었다. 유방은 건축을 전공하지는 않았으므로 신식「빌딩」을 운운할 처지가 못된다. 하지만 그는 우리의 주택과 생활 구조에 대하여 적잖은 글을 발표했다.
그는 뒤에 골동에 관계하는 것으로써 미술에 대한 젊어서의 소망을 달래었다. <계속>계속>빛>
(241)<제자는 필자>|<제17화>양화초기(5)|이종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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